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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조각 산문

200일의 썸머

by 조식

그동안 살아온 삶으로 누군가에게 확신을 준다는 게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 알지 못했다. 내 삶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순진함 때문이었을까. 내가 지금 서있는 곳보다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확신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열심히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너와 함께 그 방향으로 잘 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애초에 네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내 방향이 다를 줄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너는 내 손을 놓았다. 우린 이제 각자 걸어가야 한다.


함께 길을 걷다가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은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다시 뒤돌아보게 한다. 지금껏 걸어온 길에 돌부리가 많아 힘들었을까? 아니면 지치지 않게 조금 너의 보폭에 맞춰서 걸었어야 했나? 느리게 걷는 너에게 난 내 속도만 요구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이런 생각들에 갇혀 그곳에서 가만히 서 있다 보면 어느새 또 뒤처진 나를 본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도 꾸준히 걷는구나. 이럴 때는 그냥 주저앉아 울고만 싶다.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이럴 때면 늘 삶이 지겨워진다. 주어진 삶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지겨운 의무처럼 느껴진다. 바위를 언덕 위까지 굴려 올라가야 하는 이 형벌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이 상실감과 슬픔은 대체 몇 번이나 느껴야 그 굴레에서 벗아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삶은 지독하게도 나를 그 슬픔의 구렁텅이로 내몬다. 사는 건 매일 이별하는 것이다. 누군가 불렀던 그 노랫말이 더 구슬프게 느껴진다.


내가 바란 건 그저 사소한 행복이었다. 그냥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어쩌다 한번 너를 내 차에 태워 호수 근처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그런 행복. 이 행복도 나에게는 사치였을까. 이런 작은 삶의 순간 까지도 가질 수 없는 것이 나였다. 나는 나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또 한 번의 이별을 한다. 앞으로 몇 번의 이별이 더 남았을까. 이런 순간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그냥 멍하니 뒤만 바라보고 있으면 언젠가 또 마주칠 누군가가 내가 걸어온 내 삶에 확신을 갖지 못할 것이다. 다시 또 일어나 걸어야지. 그래도 지금은 잠깐 주저앉아있고 싶다. 잠시라도 지친 내 마음을 쉬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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