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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인철 Jan 14. 2024

나의 몽테뉴 성(城) in 원주

나에게 글쓰기란?

글쓰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것은 몽테뉴 성이다. 몽테뉴는 에세이라는 문학장르의 시조인 16세기 프랑스 사람으로, 사회적 성공을 뒤로하고 37살의 이른 나이에 자기의 영지인 몽테뉴 성에 은거(隱居)하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분이 쓴 '수상록', 또는 '에세'를 인용한 글을 이곳저곳에서 부분 부분 마주치다가 최근에 번역된 책의 전문을 읽고 있다. 무엇 무엇에 대하여라는 타이틀이 대부분인 그 글은 에세이의 원조가 되었는데, 읽으면서 참 희한한 글을 쓰셨네 라는 생각이 들다가 어쨌든 무엇 무엇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그 과정이 꽤 의미가 있겠구나, 그 일로 남은 평생을 칩거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마음으로 동조하기도 한다.


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칩거해서 글을 쓰는 낭만적인 이미지가 내가 글을 쓰는 나이브한 이유이다. 몽테뉴에서 영감을 받아 무리를 해서 이년 전에 원주에 이 층집 전원주택을 장만했다. 나 혼자 몽테뉴 성이라고 부르는 원주의 전원주택은 일, 이층 모두 두 개의 벽면에 큰 창이 내어져 있다. 이층의 베란다에서 보면 멀리 백운산의 용수골 계곡이 산을 겹겹이 돌아 나오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앞의 얕은 언덕에는 추사의 세한도에 나올 듯한 날렵한 모습의 키 큰 소나무 세 그루가 매력적으로 서 있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이층에서 보는 그 풍경에 반해서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가격을 협상해서 조금 더 깎았어도 되는데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지금도 그 풍경은 너무 좋다.


몽테뉴가 칩거한 성의 탑을 서재로 꾸몄듯이 나도 이층을 서재로 꾸몄다. 책상은 칠을 안 한 편백나무 원목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가만히 맡으면 나무향이 살짝 난다. 의자는 우리 집에서 가장 좋은 가죽의자로 엉덩이와 허리를 든든하고 편하게 받쳐준다. 검은 스틸로 기둥을 세우고 두툼한 나무 선반으로 짠 책장도 벽 한 면을 장식하고 있다. 입주 이후 구매한 책만 꽂아 놓겠다는 의도대로 많은 책장 공간이 아직도 많이 비워져 있다. 책상 앞의 풍경은 마을을 향하고 있다. 가끔 멀리 떨어진 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하고 늦은 밤에 비치는 불빛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이층 방에서 책을 읽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 글도 뚝딱뚝딱 서울에서 보다 훨씬 잘 써졌는데 채 일 년도 안 되어 한계에 부딪혔다. 소재도 진부하고 글 솜씨도 없고 얕은 사색과 극복하지 못한 콤플렉스를 마주하고 있다. 명필이 붓을 가리지 않듯이 환경을 정비한다고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가 서울 생활의 유희와 관계망을 하나도 끊지 못하고 전원주택은 바비큐장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남들은 화려한 인생 2막이라고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찜찜하다. 학교 다닐 때 오랜만에 공부한다고 책상을 정리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고 막상 공부하려면 졸린 거와 같은 거다.


오히려 이 집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보다는 TV를 보기에 더욱 좋다. 해가 지면 주변의 산들은 원시의 어두움 그 자체로 변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간소한 살림이지만 TV는 기본이라 일층의 대리석 타일 거실 벽에 새로 장만한 TV를 걸어 놓았다. TV 반대편엔 손님들 오면 편히 주무시고 가시라고 탄탄한 소파베드를 장만했다. 그런데 소파베드를 펼쳐 놓고 누워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며 TV를 보는 것이 꿀 맛이다. 허리가 아프면 옆에 있는 회전의자나 식탁의자에 앉아서 본다. 집중이 잘되어서 밤만 되면 서울에서는 잘 보지 않았던 드라마를 폭풍 시청하기 일쑤다. 특히 ‘나의 아저씨’는 너무 재밌어서 거의 밤을 새우면서 보았다. 잊을 수 없는 멋진 드라마였다. 그 이후 나의 아저씨 작가인 박해영 씨의 드라마를 다 섭렵했다. 넷플릭스의 드라마와 영화도 꽤나 많이 시청한다. 부끄럽게도 글쓰기 맛집을 장만해 놓고 TV맛집으로 활용한다. 


그래도 몽테뉴가 에세를  출간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 십 년에 걸쳐서 수정 보완했다는 것에 아직은 희망을 갖는다. 관심 있는 무엇 무엇에 대해 틈 나는 대로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그 생각을 구체화하는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나를 성숙시키고 있음을 안다. 가끔은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또렷해지는 때가 있다. 마치 퍼즐이 맞추어지는 것처럼 복잡했던 생각의 조각이 맞추어진다. 마음속으로 빙고를 외치기도 한다. 빠르게 쓰고 나중에 다시 읽어도 너무 좋을 때 말이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면 내 인생의 조그만 단면이라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 그때의 생각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하면서 웃음 지을 그런 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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