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레틱⌟ 리뷰
✽영화 ⌜헤레틱⌟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인 1조로 전도를 하러 다니는 모르몬교 신도들인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그날 마지막으로 전도할 집에 도착합니다. 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한 것은 리드(휴 그랜트)입니다. 하루종일 반스와 팩스턴을 무시하던 사람들과 다르게 리드 씨는 대단히 젠틀합니다. 문전에서 비바람을 맞고 있는 그들에게 집 안으로 들어와 얘기를 나눌 것을 권유하죠.
반스와 팩스턴이 집 안에 들어오고 현관문이 닫히자 리드 씨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는 순진한 호기심을 가장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모르몬교의 허점을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모르몬교의 창시자 조셉 스미스의 개인적 욕망에서 연유한 것이 분명한 '일부다처제' 교리에 대한 질문을 비롯해서 말이죠.
리드 씨의 적대감이 점점 분명해지자 겁에 질린 반스와 팩스턴은 집에서 도망치려 합니다. 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열리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꼼짝없이 리드 씨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적의를 숨기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리드 씨와 두 신도들의 게임이 시작됩니다.
▪︎'믿음'과 '믿음에 대한 믿음'
영화는 반스와 팩스턴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그들의 화제는 다소 생뚱맞게도 매그넘 콘돔의 사이즈는 일반 콘돔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음경 크기가 큰 남성을 위해 만들어져서 일반 콘돔보다 사이즈가 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그저 마케팅 전략일 뿐이라는 거죠. 매그넘 콘돔을 구매한 남성들이 자신들의 음경이 크다고 생각함으로써 자신감을 갖도록 말입니다.
앞선 장면 속의 매그넘 콘돔은 종교를 상징하는 은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상은 거짓과 허구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의 믿음을 만나면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이러한 맥락은 ‘믿음’과 ‘믿음에 대한 믿음’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나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것이고,
'믿음에 대한 믿음'은 “나는 하나님이 정말 존재한다고 믿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태도입니다.
영화 『헤레틱』은 이 중 후자의 입장을 취하는 영화입니다. 감독은 리드 씨의 입을 빌려서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는 동시에, 팩스턴의 입을 빌려서 "그럼에도 나는 신에 대한 믿음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이러한 시각은 영화의 절정에서도 드러납니다. 리드 씨의 칼에 찔리기 직전, 팩스턴은 기도의 효력을 입증하기 위해 진행된 한 유명한 실험에 대해 언급합니다.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쪽을 위해서만 기도를 했지만, 그 결과 기도는 아무런 효력도 없다는 게 명확히 드러났던 실험이었죠.
하지만 그 직후 팩스턴이 덧붙인 대사에서 영화의 핵심 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무런 효력이 없더라도,
적어도 기도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닌 타인을 생각하는 거예요.
▪︎두 가지 기적에 대하여
『헤레틱』에서는 두 가지 기적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기적은 리드 씨가 계획한 선지자의 부활이고, 두 번째 기적은 죽을 위기에 처한 팩스턴의 목숨을 구한 반스의 부활입니다.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 보면, 첫 번째 기적은 리드 씨가 철저히 연출한 가짜 ‘기적’이었음이 드러납니다. 반면, 두 번째 부활은 그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되지 않는, 진짜 초자연적인 기적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스의 부활이 모르몬교, 혹은 특정 종교가 진리임을 증명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것입니다. 오히려 이 장면은 신이 믿음에 응답한 결과라기보다는, ‘믿음에 대한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감독의 시선이 만들어낸 영화적 장치로 보는 편이 훨씬 더 설득력 있습니다.
결국 반스의 부활이라는 기적은 절대자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함이 아니라,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믿음 그 자체가 지닌 윤리적 가치”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모르몬교인가?
이에 대해선 대단히 영악한 설정이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영화에서 반스와 팩스턴의 종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종교가 유대교였든, 가톨릭이었든, 개신교였든, 이슬람이었든 스토리의 진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겁니다. (다만 감독의 삶에 지장이 생겼겠죠.)
영화가 전개될수록 반스와 팩스턴은 특정 종교의 신자라기보다는, 종교라는 개념 자체를 변호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때 '모르몬교'라는 설정은 다분히 전략적입니다.
감독이 반스와 팩스턴을 ‘모르몬교도’로 설정한 이유는,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가능한 한 보편적으로, 왜곡 없이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한 장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이들이 개신교 신자였다면, 많은 개신교 관객들은 반스의 부활을 곧바로 하나님의 기적으로 해석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이 영화는, 인본주의적 가치—배려와 이타심—를 전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메시지로 소비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종교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이야기로 오해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결국 모르몬교라는 비교적 주변적인 종교를 설정함으로써, 관객이 특정 종교 교리에 몰입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 그 자체’와 그 윤리적 효용에 집중하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