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과 목적의 배반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지성으로 평가받는 앙드레 지드의 대표작을 하나만 꼽는다면, 단연 ⌜좁은 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롬과 그의 사촌 누이 알리사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사랑과 신앙 사이에서의 갈등과 그로부터 도출되는 역설을 중심에 놓고 전개됩니다.
작품의 제목 『좁은 문』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7장 13–14절을 인용한 것으로, 작품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상징이자 모티프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좁은 문’이란 진정한 신앙과 그에 따른 삶의 실천이 대단히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심지어는 자신을 부정하는 삶을 살기를 하나님은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앙드레 지드는 비극적인 사랑으로 귀결되는 역설을 이끌어냅니다.
『좁은 문』의 역설은 목적과 수단이 서로를 배반하는 구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수단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경배라는 목적과 충돌하고, 반대로 그 목적은 사랑이라는 수단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제롬과 알리사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알리사는 제롬을 향한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앞서게 될까 불안하고 두려웠기 때문에 그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었습니다.
그 문은 서로를 껴안은 채로는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문이었습니다. 그 구원의 문, 영원한 생명의 문을 만든 신은 언제나 자신이 피조물로부터 가장 크고 맹목적인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질투의 신, 애정결핍의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영원한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서로를 포기했다고 해도, 그러한 구원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기쁨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잔혹한 신을 찬미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결국, 그 좁은 문은 처음부터 결코 열릴 수 없는 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은 ‘좁은 문’이라기보다는, '넓은 철창살'이 아니었을까요?
우리 삶은 마치 감옥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행복이 눈앞에 있음을 느낍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처럼도 보입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언제나 갈망될 뿐, 성취되지 않습니다.
좁은 창살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스며들고, 감긴 눈을 간질이며 우리를 깨우지만, 우리는 그것을 움켜쥘 수도, 그 좁은 햇살 속으로 온몸을 던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깨어나서 갈망하고, 애원하고, 슬퍼하고, 사랑을 고백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대상은—
목적과 수단을 이간질시켜 서로를 배반하게 만든 신이 아니라,
우리가 대화할 수 있고 애무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연인을 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