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치고 올라갈 준비 - 산 넘어 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이민 오면 애를 보면서 영어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고. 첨에는 너무 멘붕이라 집에서 부끄러움을 이겨내 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하며 원시적으로 그냥 무식하게 공부한 거였지. 그런데 조금씩 아는 것도 늘어나고 그럼 한 번씩 써보고 싶어 지잖아 진짜 원어민이 하는 말도 한번 듣고 싶고. 본인이 레벨이 아주 초급은 아니라면 추천하는 거. 뉴질랜드에는 동네마다 애기들 프로그램 무료 혹은 1~2불 정도 내고 들어가서 아줌마들과 커피 마시고 애들 댄스 하게 율동 가르쳐주고 스토리 텔링 하고 그런 게 있거든. 동네 도서관에서 하는 게 가장 좋았는데 거기 꼭 데려가서 나도 스토리텔링 듣고 다른 엄마들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것도 듣고 운 좋으면 착한 아기엄마 중에 말 시키는 엄마도 있고 그럼 더듬더듬 나도 얘기하고 ㅎㅎ 남편이 초반에 데려가서 싫어했던 그 무료 영어 가르쳐주는 곳은 꼭 참여하고. 멀티컬쳐럴 센터 혹은 영어무료 가르쳐주는 프로그램 있는 학원.
미드받아쓰기 뭐 이런 거 다 좋았지 그런데 나는 아이엘츠 아카데믹 시험을 봐야 했단 말이지? 그래서 또 다른 거 시도해 본 거 Ted강의를 보고 듣고만 써보고 자막 보고 맞춰보고 들리는지 계속 들어보고 한글 자막으로도 나오는 거는 뜻도 한 번씩 생각해 보고 이렇게 강의 한 십분 정도 되는 강의 중 흥미 있는 거로 해봤지.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자고 있던 내 브레인의 언어영역을 깨우려고 별의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아. 진짜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이 나라에서 갑자기 귀로도 못 듣고 입빵 긋도 못하고 누가 뭐라고 해도 알아듣지를 못해서 화조차 안나는 이 상황을 정말 벗어나고 싶더라고. 내가 이런 상황을 맞으려고 나 스스로 이곳에 오려고 그렇게 애썼다는 게 참 슬프지만 이겨내야만 하는 현실이었어. 내가 애쓰지 않으면 난 그냥 남편에게 짐이 될 것만 같았고 내 아이도 커서 날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자격지심이 내 머릿속에 꽉 차고 있었지.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했어.
미드도 테드 강의도 좋았어 그러나 가장 좋은 거 아이엘츠 리스닝 기출문제. 일단 시험 보는 것처럼 처음에 테스트를 해, 두 번 세 번 테스트만 해봐. 그리고 스크립트를 보고 확인하며 소리 내서 읽고 다시 들어봐.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꼭 클리어하고 넘어가기. 그 단어영영사전으로 찾아보고 동의어 반대되는 단어 이런 거도 다 훑어. 그 영영 사전에 설명에 나오는 단어도 모르는 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럼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단어를 찾아 읽고 또 알아보고 그러면 리스닝 기출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하루종일 공부할 수도 있어. 그러다가 좀 더 도움 될만한 팁은 리스닝 스크립트를 보고 그걸 이용해서 내가 말해보는 거야. 진짜 여기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거든. 아이엘츠 리스닝은 여기 원어민들 중에 말 천천히 하는 사람 정도의 스피드라서 스피드도 나쁘지 않고. 스피킹에도 응용이 가능해서 아이엘츠 시험을 보지 않는 사람에게도 영어공부하기 정말 좋은 자료야.
꾸준히 영어 공부를 했지만 내 레벨을 알 방법은 없었어. 뉴질랜드 영주권을 받으려면 배우자의 경우에도 그 당시에는 5점 이상이 있어야 했어. 지금 기준은 잘 몰라. 그거보다 낮으면 돈을 많이 내고 그걸 크레디트 삼아서 영어학원에 다닐 수가 있다는데 그때 몇천 불인 돈이 나에겐 너무 소중했잖아. 그래서 아이엘츠 시험도 그때 비쌌지만 신청을 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아이엘츠 시험을 보았어. 거의 일 년 반동안 아이를 키우며 온통 영어에만 집중하며 기본기를 다졌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너무 떨렸어. 이러다가 5점도 안 나오면 난 도대체 무슨 시간낭비를 하고 있던 건지 감당이 안될 거 같았지. 결과는 리스닝 5.5 리딩 5.5 라이팅 5.0 스피킹 5.0 이 나왔지. 같이 이민온 주변 한인들 중에는 배우자가 점수가 없어서 돈을 그냥 내고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정말 다행이었지. 그렇지만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어.
그날도 애를 재워놓고 남편도 자고 있는데 난 또 슬그머니 책상 쪽으로 와서 보조등을 켰어. 이어폰을 끼고 열심히 또 리스닝 공부를 하고 있어서 애가 우는 걸 못 들은 거야. 한참 울었는지 남편이 갑자기 와서 나한테 애가 우는데 왜 안 오냐고 소리를 치는 거야. 너무 놀래가지고 당황스럽고 정말 서글프더라고. 남편이 원래 조금 토닥이면 자야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딸이 내 손이 없으면 자꾸 밤에 깨고 울어. 난 타이머도 맞추어 놓았는데 테스트를 해봐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다시 가서 애를 달래고 한참 걸려서 재우고 그 사이 공부는 무슨 아무것도 못하지. 너무 답답하더라고 피곤해도 그때밖에 맘 놓고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는데 남편이 애를 좀 잘 재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어. 그런데 남편도 낮에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고 스트레스받을 텐데 자고 있는 거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우리 부부 사이에 위기가 온 걸 느꼈어. 대화도 없어졌지.
남편도 내가 영어공부하는 것을 응원해 주고 최대한 도와주고 싶어 했지만 본인도 힘들었는지 내가 밤에 공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고 애가 자꾸 깨서 내가 없으면 우니까… 난 나대로 그럼 언제 나보고 공부해서 영어 실력을 늘리라는 건지 답답하기만 했지. 어쩜 우리 딸은 내가 없는걸 귀신같이 아는지 밤마다 깨서 매일 통곡을 하셨어. 아무튼 우여곡절을 겪고 남편이 취직이 되어서 시골로 이사 가면서 구멍 숭숭 뚫린 원룸에서 벗어나 그래도 바닥에 카펫이 깔린 오두막집으로 이사하게 되었지. 방도 두 개 있었고. 공부하기도 좋고 조용하고 예쁜 들판이 쫙 보이는 강가 옆 집이었어. 거기에 가서 난 늘 하던 데로 공부했는데 레벨이 이제 조금은 올라갔으니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은데 사람이 안 사는 거야. 너무 시골이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집주인아주머니가 전형적인 시골 수다쟁이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는 내가 대답할 틈도 안 주셔 날씨얘기 했다가 갑자기 자기 강아지 얘기 하다가 이야기를 유추할 틈도 안 주고 주제가 엄청나게 바뀌더라고. 진짜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그 아주머니가 간단한 거 중간에 물어보면 대답 못할까 봐 얼마나 귀 기울여 들었는지… 그 아주머니 가고 나면 진이 빠져가지고 ㅋㅋㅋ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강에 키우던 강아지가 관절이 안 좋아서 수영을 해야 한다고 거의 매일 오시는 거야. 아주 리스닝 공부 제대로 했지 ㅎㅎㅎ 나의 리스닝 점수는 그 아주머니가 다 높여주신 거나 다름없어 지금도 참 감사하네. 지금도 사람들 농담하고 그러는 거 웬만하면 잘 알아듣고 웃고 떠드는 게 그 아줌마 덕인가 봐.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