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지방공무원의 사회복무 이야기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 중에서
W는 무척이나 심란하다. 내일이면 오늘과 다른 신분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할 일은 마쳐둔 지 오래다. 인수인계서를 다시 한번 훑어본다. 그가 떠나고 빈자리를 대신할 직원 K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아 자꾸만 한 줄, 한 글자가 추가된다. W가 근무하는 행정복지센터는 근처에 법원과 각종 공공기관이 위치해 있어 업무강도와 난도가 지역 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높다. K는 앞자리 민원창구에서 지금도 민원인을 상대하며 "법원 집행문이 있어야 발급 가능합니다."라고 기계적으로 말하고 있다.
공무원 세계에서 '인수인계 기간' 따위는 없다. 정해진 인사이동 시기는 있지만, 발표가 나기 전에는 누가 어디로 이동될지 알 방법이 없다. 발표가 나면 인사이동자는 길게는 2~3일, 짧게는 하루 안에 인수인계를 마치고 다른 부서로 이동해야 한다. 이는 하급 공무원일수록 더욱 심하며, W나 K같은 사람들은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점심시간, 퇴근 후 시간, 휴일을 소모하여 그나마도 제대로 될 리가 없는 인수인계를 몇 년마다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경우는 그래도 낫다. W가 새로운 업무를 인수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떠날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팀장과 동장이 나서서 직원들을 주목시킨다. 앞자리 창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지금도 민원인을 상대하느라 자리에 앉은 채 뒤편을 흘깃거릴 뿐이다. W는 아직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이 어색하다.
간단히 몇 마디를 하고,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작별인사를 건넨다. 나름 긴 시간 동안 함께 일하며 동고동락하여 진심으로 아쉬움을 표하는 직원도 많지만, 남일이라는 듯 시큰둥한 반응 또한 많다. 같이 근무한 시간도, 업무적으로 부딪힐 일도 적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되뇌며, 씁쓸한 마음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한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것도 다른 부서도 아닌 군대로 말이다. 아주 잘못된 마음가짐은 아니다. 2년쯤 뒤에 이 부서에는, W와 친했던 직원은커녕 최근에 인사이동된 직원조차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물론 W가 휴직 상태에서 복귀하더라도 이전과 똑같은 부서로 돌아갈 가능성도 현저히 낮다.
작별인사를 마친 후, 직원 몇 명이 W의 짐을 들어주며 사무실 입구까지 배웅한다. 분명 군 복무를 위해 잠시 휴직하는 것일 뿐인데,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느낌이 든다. 구청에서 행정복지센터로 이동한 지도 이제 겨우 1년이건만. 그는 또다시, 이번에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인사이동된다. 공무원으로서 그동안 겪었던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임용식과 신규교육, 처음으로 만든 정책 보고서, 몇 번의 예/결산 심의회, 마주치고 함께하며 지나쳤던 다양한 사람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반쯤 걷다가, W는 갑자기 이전의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다음 날이 되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굳이 자신이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밝힐 마음은 없다. 뱀이 허물을 벗듯이, 그도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다.
'공직에서 공익으로'는 저의 자전적 이야기를 W라는 가상인물의 이름을 빌려 서술하는 수필입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일하며 느낀 점들과 자신의 변화, 그리고 나름의 성장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현재 저는 복무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인데, 남은 기간 동안 최대한 열심히 작성하여 마지막 복무일에는 그날의 이야기를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