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서 공익으로(2)
심장이 미칠 듯이 두근댄다. W는 오랜만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채 3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분에 맞지 않는 일들을 겪고 마음이 무뎌진 탓이리라.
그나마 그가 육체와 정신의 고동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위장에 쑤셔 넣거나,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과 몸을 맞대거나, 게임에 빠져 다른 모든 일들을 잊어버리는 순간뿐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번처럼 국가로부터 징집되어 복무지 선택을 해야 하거나.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사회복무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 간략히 설명해 둔다.
‘사회복무’란 대체복무 중의 하나로,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군대가 아닌 ‘사회’에서 복지, 행정, 교육, 보건 등의 분야에서 복무하는 제도이다. 병역판정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게 되면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정되고, 1~3급 판정을 받은 현역과 달리 법률상 군인 신분이 아니며, 복무기간도 3개월 정도 더 길다. 과거의 ‘공익’이나 ‘방위’를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사회복무요원은 W와 같이 온라인 신청화면에서 근무지를 본인이 선택하여 복무한다. 물론 말이 본인 선택이지, 실질적으로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곳에서 복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복무지에 비해 신청자가 많아 인원 배정에 있어 적체가 심하고, 특정 복무지에 신청자가 몰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복무기관에 따라 업무의 종류와 난이도가 천차만별인 탓이 크다. 복지시설에서 취약계층을 상대할 수도 있고, 행정복지센터에서 민원인을 상대할 수도 있다. 소방서나 산림청에 배정되어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거나, 구청 건물 안에서 간단한 서류 작업만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W는 지금 복무지를 가릴 때가 아니다. 이번 신청에는 반드시 선정되어 복무를 시작해야 한다.
공무원 사회에서 군 복무를 마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진 순위에서 밀리는 것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직원들로부터 곧 떠날 사람 취급받는 일도 질렸다.
어쩌면 남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받은 시선이 낙인이 되어 W 또한 정말로 떠나버리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W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복무지 신청기간 마지막 날. 그는 상기된 얼굴로 모니터 앞에 앉아 신청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경쟁률이 높은 곳을 다 거르고 보니 남은 선택지가 얼마 없다. ‘OO종합복지센터’, ‘OO노인복지관’ 등 복지시설 몇 군데가 눈에 띈다. 이름을 봐도 어떤 곳인지조차 알 수 없는 곳도 있다. ‘한사랑센터’, ‘파랑새의집’ 같은 미묘한 센스의 이름들.
W는 편견이 앞선다. ‘공공의 이익을 도모해야 할 기관이나 시설이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이름을 하고 있다니 뭔가 뒤가 구린 게 분명해. 복지시설이라고 적힌 곳 중에서 출퇴근하기 가까운 곳이나 찾아보자.'
그런데 신청 마감 시간 30분 전이 되자, W가 신청하려고 했던 기관들에 경쟁자 몇 명이 붙는다. 1분 1초의 경각을 다투는 눈치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 떨어지면 1년 뒤에 다시 신청해야 한다! W는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낀다. 손발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다. 마감 10분 전, 다른 기관들은 모두 경쟁자가 많이 차 있고, 뭔지 모를 시설만이 모니터 화면에서 적은 수의 경쟁률을 표시하고 있다.
결국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은 무얼 하는 장소인지 이름만 봐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한 시설. 심지어 인터넷에 검색해 보아도 위치만 표시될 뿐, 이외의 어떠한 정보도 찾아볼 수 없다. W가 복무일 첫날이 되어서야 자신의 복무지가 노숙인복지시설임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 지금은 일주일 뒤에 나오는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엔 없다.
’ 공직에서 공익으로‘ 는 사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지만, 글에 등장하는 인명, 지명, 단체명,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가 아닌 허구입니다. 만약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