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판정검사와 복무기관 신청 결과

공직에서 공익으로(3)

by 우원서

국가에 종속된 개인으로서 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 잊고 싶은 흑역사처럼 불현듯 떠오르며 현실세계에 항상 실재하는 그 이름.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모두가 한 번씩 거쳐갈 수밖에 없는 고민. 전쟁과 국가안보, 그리고 군 복무.



이런 주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가 있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W는 약간 주춤하며 쭈뼛거릴 수밖에 없다. 그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W는 몸 건강한 주변 친구들이 당당하게 현역 복무 후 전역하는 모습에서 자격지심을 느끼면서도,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되어 운이 좋다 생각하는 양가감정을 지니고 있다.



사회복무요원은 법률상 군인이 아닐뿐더러, 한 달이 되지 않는 훈련소 과정을 제외하면 군부대 근처에 갈 일도 없다. 보통 사람처럼 사회에서 출퇴근하고 주말에는 집에서 발 뻗고 쉬는 모습을 보면 현역 복무자 입장에서 아니꼬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병역판정검사에서 현역 복무로 판정되는 1~3급의 비율이 90퍼센트에 달하는 상황에서 4급 이하의 판정을 받는 것이 무조건 기쁜 일만은 아니다. 국가공인 하위 10퍼센트 이하의 복무 부적격자라고나 할까.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이상, 사회복무요원으로까지 판정된 사람은 신체나 정신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다.



W가 병역판정결과지를 부모님에게 보여준 날, 그의 어머니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 이렇게 문제가 많노? 내가 잘못 낳았구나.” 결과지에는 4급 사유가 된 주된 질병 이외에도 3급 판정을 받은 몇몇 신체적 결함이 쓰여있었다. W는 어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어머니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상황이 너무나도 불합리하다고 느껴졌다. 지금껏 불편해도 별생각 없이 살아왔건만. 결과지를 보여주기 전까지만 해도 4급 판정을 받았음에 철없이 기뻐했건만. 그는 갑자기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나라와 사회에서 인정한 불구가 된 기분이었다.



W의 복무지 신청 결과 발표날. 복잡한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병무청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복무지 신청을 한지 꼭 일주일 만이다.

'나라의 행정시스템에도 사기업이 개입하는구나.' 새삼스럽게 생각하며 메시지를 열었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는 합격. 1명 선발하는 복무지에 W를 포함한 2명이 신청했는데, 그가 운 좋게 합격한 것이다. 선발되지 못한 1명은 1년 후가 되어서야 다시 신청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도 선발되어 복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W는 복무지 신청에 성공하여 기뻐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이 조금 어이가 없다. 군 복무를 하게 되었음에 좋아라 하다니. 도살장에 끌려간 돼지가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기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도 어차피 도살장에서 생을 마무리할 운명이라면, 최소한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아는 것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W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많은 것이 불확실하게 느껴졌는데, 이제 앞으로의 계획에 조금은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계속해서 휴직의 구체적 일정에 대해 묻던 인사팀에 복무 사실을 먼저 알리고, 부모님에게도 전화를 걸어 말씀드렸다. 친구들에게 말하기에는 역시 조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W보다 사회복무를 일찍 마친 친구 한 명에게만 우선 알려두기로 했다.


복무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남짓. 그동안 이런저런 준비를 하려면 생각보다 꽤나 바쁘다. 이사도 해야 하고, 군 적금도 들어야 한다. 미뤄둔 업무도 마쳐 놓고, 업무 인수인계도 준비해야 한다. 총무과에서 휴직 일수와 복무일수를 정확히 일치시켜 놓은 바람에 개인 연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여유 시간이 많지 않다.

우선 가장 중요한 이사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이전까지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본가로 돌아가는 것이 여러 모로 좋겠으나 아무래도 복무지와 지나치게 멀어질 것 같았다. 복무지와 가까운 곳을 찾거나, 교통편이 좋은 곳 근처로 이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시설, 도대체 위치가 어디인가. 지도 사이트마다 위치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나는 국정원에라도 근무하게 되는 걸까?’ W는 생각했다. 아직 복무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무언가 삐걱댄다. 결국 그는 직접 기관에 전화하여 위치를 물어보기로 한다. 그와 의뭉스러운 복무기관이 대면하는 첫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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