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론 뮤익> 전시 리뷰
나에게는 부캐가 있다. 씩씩하고 긍정적이며 밝고 명랑하며 친절한. 그녀는 ‘디팜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디팜’이라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고객님들께 알리는 소식통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디팜은 남편과 내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다. 농식품 사업자들의 브랜딩 디자인과 패키지 제작 고민을 해결해 드리고, 한편으론 과일 포장에 스티로폼이 쓰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친환경 과일 박스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회사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게 좋겠어’라고 말한 건 2021년 즈음이었다. 사업 초창기였던 2014년 즈음, 우리나라 농업 시장에서는 5060이 ‘젊은 편’으로 인식되곤 했다. 그땐 이들이 우리의 메인 타깃이었기 때문에 나 또한 페이스북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어르신들과 온라인 라포를 쌓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청년농부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하나같이 인스타에서 활동을 하더라. 그래서 만들었다. 회사 인스타를.
초창기는 여느 B2B 업체와 비슷했다. 우리가 작업한 결과물들을 올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서술하며 누가 봐도 광고인 것 같은 콘텐츠로 피드를 채웠는데, 매번 고만고만한 반응이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를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인스타 특성상 ‘사람’이 나오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얼굴을 까고 우리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 만들어진 부캐가 바로 ‘디팜댁’이었다.
대표인 남편과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이 점을 살려 친근하게 어필해 보자고 만든 이름이었다. 즉시 반응이 나타났다. 우리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드러내니 그 과정에서 진정성을 느끼셨는지 한두 분씩 우리를 찾아오기 시작하셨고, 어느 날부터는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를 통해 유입되는 고객보다 인스타로 유입되는 고객님들이 월등히 많아지기 시작했다.
팔로어가 2000명 정도 될 때까지는 나도 큰 스트레스나 압박을 받지 않았다. 어차피 없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면 됐으니까.
하지만 팔로어가 3000명을 넘고, 업계 행사에 갔을 때 “어, 디팜댁 아니세요? 저 인스타 넘 잘 보고 있어요!”하는 말을 한두 번씩 듣기 시작했다. 덕분에 회사는 점점 성장했지만, 성장한 만큼 내가 다 책임질 수 없는 일들, 심지어 내가 알지 못했던 일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인스타에 뭔가를 올리는 게 무섭고 답답하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된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스타를 관둘 수는 없었다. 내가 회사의 얼굴이니까, 나를 도구삼아 올리는 콘텐츠의 도달률이 훨씬 높게 나오니까. 고객님들이 더 오래 기억하니까. 기억하고 다시 찾아오니까. 매출을 높여야 하니까.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니까. 나 대신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디팜댁은 언제나 즐겁고, 에너지 넘치고, 친절했다.
론 뮤익 전시의 입구에 들어서면 가만히 눈을 감고 잠든 것만 같은 작가의 거대한 자화상 조각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첫 작품부터 상당히 당혹스럽다. 거대한 얼굴도 얼굴인데, 디테일에 소름이 오도도 돋는다. 수염이나 주름, 모공은 말할 것도 없고 코 옆에 울긋불긋한 혈색까지 그대로 재현해 놓은 걸 보고 있자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하지만 더 큰 놀라움은 따로 있다.
작품의 뒤로 돌아가면 나타나는 텅 비어 있는 공간. 마치 당신이 봤던 건 얼굴이 아니라 그냥 마스크였을 뿐이야. 말하는 듯한 느낌. 처음엔 '이게 뭐야?!'하다가 자꾸만 그 빈 공간을 지켜보고 있자면 공허함과 피로감이 느껴진다. 하루 온종일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오늘도 변함없는 야근에 지옥철 속에서 낑낑대다 녹초가 되어 침대에 쓰러져 자기 바쁜 현대인들. 누군가의 얼굴이 그 위로 겹쳐진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주어진 일들에 허덕이다 점점 자아를 잃어가는. 저 텅 비어 있는 공간엔 원래 어떤 게 있었던 걸까 고민하게 한다.
다음 작품으로 발길을 옮겨 간다.
자기 몸보다 두 배는 더 큰 나뭇가지 더미를 안고 낑낑대고 있는 산발된 머리의 나체 여인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체형에 흠칫 놀라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본다.
아, 내가 잘못 봤다. 이 여인은 낑낑대고 있지 않다. 어떻게든 이 나뭇가지들을 목표한 공간에 가져다 두리라는 의지가 얼굴 전면에 드러난다. 앙 다문 입술과 탄력적으로 꺾인 허리,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한껏 휜 눈썹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걸 본 나는 똑같이 눈썹을 휙 구부렸다. 왈칵 눈물이 맺혔다.
요상한 일이다.
요 근래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아마 전시회를 보러 간 전날까지도 일 때문에 오빠와 이런저런 말다툼이 있었고, 신상품 출시 때문에 주말 출근에, 어떻게든 연차를 써보겠다고 한 주 내내 11시까지 일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마음의 여유도, 체력도 고갈되니 작은 자극 하나에도 감정이 요동쳤다. 어떻게든 나뭇가지를 옮겨보겠다는 이 여자의 앙 다문 입술과 한껏 휜 허리가 너무 슬펐다. 매 순간 애쓰며 사는 나 같아서.
친구들에게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얼른 자리를 옮겨 다른 작품들을 보기 시작했다. 인스타에서 봤던 거대한 침대 조각상(?)도 보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뭇가지 여인 다음의 작품들도 하나같이 다 좋았다. 정말 어떤 작품도 빠짐없이 다 두 눈에 담고 싶을 정도로 완벽한 시간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앞서 말한 두 점의 작품과 함께 '치킨맨'이라고 불리던 작품이었다.
테이블 위에 난데없이 닭 한마디가 당당히 서 있다.
맞은편에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듬성듬성 두피가 보이는 추레한 외형의 노인이 테이블 위에 단단히 주먹을 고정하고 닭을 마주하고 있다. 눈싸움을 하는 건가? 아니다. 마치 여기서 뛰어 나가야 할까, 아니면 저 닭을 잡기 위해 앞으로 튀어나갈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온몸에 긴장이 가득 찼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실감 나게 묘사된 노인의 나체가 놀라운 것도 잠시, 이 둘 사이를 채우는 팽팽한 긴장감에 시선을 꽂힌다. 대체 무슨 상황이지?
너무 뜬금없는 조합에 얼떨떨해하고 있으니 함께 전시를 보러 갔던 친구가 '사실 닭은 허상인 거 아닐까? 저런 차림으로 테이블 위에서 닭을 마주할 일이 없잖아, 사실'이라고 말했다. 나 또한 공감. 노인은 본인이 만들어낸 환상을 마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닭'으로 표상되긴 했지만 어쩌면 그건 일평생 동안 쫓아온 그이의 집착, 욕망, 헛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온몸의 거죽이 늘어지고, 검버섯이 피어오르고, 팽팽했던 모발이 듬성듬성 노인의 그것으로 바뀌는 시간 동안 그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쫓아왔고, 결국 그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오기인지 치기인지 모를 것들로, 아직도 그는 테이블을 마주하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잡지 못할 환상과 팽팽히 대결하며.
그를 보고 있으니 모든 게 공허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론 뮤익의 작품 대부분이 쓸쓸했다. 인간의 취약성과 불완전함을 너무 날것으로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싸해 보이는 모습을 한 꺼풀 벗겨내면 결국 사람 사는 거 다 이런 모양새 아니겠냐'라고. 그리고 그동안 디팜댁이라는 캐릭터, 팀장, 대표라는 직함 뒤에 애써 밀치고 감쳐둔 또 다른 내 감정이 슬그머니 머리를 치켜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후회, 자기혐오, 죄책감, 우울 등이었다.
피하고 싶었던 걸 마주하면 오히려 정신은 더 맑아지곤 한다. 결국 일을 마치고 개운해졌다는 느낌. 괜찮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이게 삶이야. 론 뮤익의 작품을 통해 내가 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 원래 이토록 공허하고 쓸쓸한 게 인생이라고.
나라는 사람과 디팜댁이라는 부캐가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는 여전히 미궁이지만, 론 뮤익 전시를 보고 나오니 머릿속이 조금은 개운해졌다. 작품은 스산했고, 나는 슬펐고, 그럼에도 즐거웠다. 그냥 밝고 명랑한 이미지를 쥐어 짜내느라 감추고 또 감췄던 내 못난 감정과 불완전함을 슬쩍 마주하고 온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꾸며내며 받았던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척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알고 사랑해 주는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였던 시간이라 더 그런 해방감이 느껴졌던 하루. 때론 숨기고 있던 내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봐야지. 다짐!
# 개인적으로 작품도 작품이지만, 전시의 마지막. 그의 작업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이 전시의 압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흙덩어리에 불과한 찰흙 덩어리와 마주 앉아 얼굴을 만들고, 몸을 만들고, 석고를 뜨고, 머리카락을 심고, 혈색을 더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마치 구도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예술가의 일상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영화 촬영에 쓰이는 인형탈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떤 영화 속에서는 본인이 직접 인형탈 속에 들어가 연기를 하기도 했다고. 상업 예술이 커리어의 시작이었다니.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전시를 보고 난 뒤 론 뮤익에게 푹 빠져서 그에 대해 스터디를 해보니, 처음 순수 미술계에 입문(?)했을 때 찰스 사치의 눈에 든 작품이 <데드맨>. 그야말로 죽은 아버지를 그대로 조각으로 만들어둔 작품이었는데, 죽기 전에 이 작품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어디서 상설 전시를 하는 건 아니라, 언젠가 기회가 되면 볼 일이 있겠지! 싶은 생각으로 일단은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이번 한국에서의 론 뮤익 전시가 이토록 열광적이었으니, 어디서 대규모 회고전 같은 걸 좀 열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