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를 읽고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는 <행복한 왕자>를 제외하고는 이번에 생전 처음 읽어보았다.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는 익히 알고 있던지라 그의 빛나는 수작인 이 동화들을 읽어보며 가히 천재적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현실 세계를 꿰뚫는 정교한 이야기 솜씨와 교훈을 주면서도 마냥 희망만은 낙관하지 않는 유미주의와 현실주의를 오가는 그의 동화들. 세련되면서도 아름답고 불안하면서도 기품 있다. 그의 작품은 가히 예술이다. 나도 이런 동화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연 충격적인 작품은 <나이팅게일과 장미>다. 일견 사랑을 위한 희생이 숭고함과 엄숙함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나이킹게일의 처참한 주검 앞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도 목숨까지 저버리며 바친 붉은 장미꽃으로 대변되는 사랑은 끝내 값비싼 보석 앞에 무참히 짓밟힌다. 이 이야기가 쓰인 1888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숭고한 사랑에 대한 찬양은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며 속물적인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로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헌신적인 친구>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나는 이야기 속 한스인가? 밀러인가? 란 생각을 해보았다. 한스는 마냥 순진무구하고 성실하고 남을 쉽게 믿는 성격이다. 밀러는 그러한 한스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착취하고 이용하기만 할 뿐 진정으로 그를 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모든 게 한스를 위한 거라고 휘황찬란한 말로 포장할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한스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가? 밀러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지극히 다른 사람을 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한스 같은 삶을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한 한스가 작품 속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건 오스카 와일드의 비극적 인생관을 엿보게 한다.
<공주님의 생일>이란 작품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과 아픔이 짙게 그려졌다. 추한 몰골로 공주와 궁정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고 욕보이는 가난한 숯장수의 아들, 난쟁이. 얼마나 몰골이 흉측하면 그의 아버지마저 자식을 버린다. 그는 숲 속에서 살아 한 번도 자신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공주의 놀림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 착각하며 행복으로 들뜬다. 하지만 궁전에 들어서 생전 처음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끔찍한 몰골에 충격을 받고 심장이 터져버려 죽는다. 그 와중에도 공주는 조금의 인정도 아량도 없이 다음부터는 자신을 보러 올 때는 심장을 놓고 오라며 차갑게 냉소할 뿐이다. 맑고 순수한 정신을 갖고 있어도 외형적 기형으로 인해 세상의 경멸을 받는 난쟁이는 냉혹한 사회의 차가움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나는 뭔가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지는 않을까하고 읽어 내려갔지만 결국 그의 죽음을 통한 결말을 통해 다시 한 번 작가의 비관주의에 나 또한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사람들의 찬양과 경멸.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중 <행복한 왕자> 다음으로 좋았던 건 <어린 왕>이다. 자신이 가난한 염소지기의 아들인줄로만 알았던 소년이 자신을 버린 왕(소년을 낳아준 어머니의 아버지, 소년의 어머니는 공주였을 때 미천한 신분의 남자를 만나 소년을 낳고 죽었다)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왕 위에 올랐지만 세상의 고난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모든 보석과 화려함을 벗어던지고자 하자 신하들이 여러 차례 회유와 설득을 하고 심지어 목숨마저 위협하지만 꿋꿋이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기적을 일으킨다는 이야기이다. 오스카와일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세상에 대한 비판과 진정한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는 전체적으로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다. 그 비극 속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건져낸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 속에서도 슬프고도 아름다운 조각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생전 유미주의자며 예술을 찬양했다고 한다. 아마 시련과 고난이 가득한 생의 슬픔 속에서도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보며 인생의 시름을 잊고자 했던 것 같다. 삶을 살다보면 꽃길만 걸을 수 없다. 진흙길도 있고 자갈밭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안에서 인생의 환희를 창조할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