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cDyadF3Zc6g?si=hZAxLZtMLvgYocUr
새들도 자러 가고, 가로등 불빛도 하나둘 꺼진 밤, 밤하늘에는 별빛 부서지는 소리만 찰랑거리며 들려왔어요. 부엉이가 창밖으로 노란 눈빛을 반짝이며 빛낼 때 아가는 막 잠들기 위해 엄마의 품에 안겨 누워 있었어요. 그런데 아가는 잠이 들기 전, 낮에 들었던 음악이 계속 떠올랐어요. 슈베르트의 <마왕>. 아빠와 아이가 말을 타고 달그락달그락 달리고 마왕이 계속 쫓아온다는 이야기. 낮에는 긴장감 넘치는 음악에 콩닥콩닥한 심장을 부여잡고 들었는데, 밤이 되니 온몸이 덜덜덜 떨려오기 시작했어요. 자그마한 손을 꽉 쥔 채 온몸에 땀이 흘렀어요. 이대로 잠이 들기는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엄마가 새근새근 풀벌레 소리가 호록호록 들리는 브람스의 자장가를 들려주었어요. 계속해서 안아주고 진정시켜 주어도 자꾸만 마왕이 쫓아올 것만 같았어요. 그렇게 아가는 말똥말똥한 눈망울을 동그랗게 뜬 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어요. 어느새 밤은 어둑어둑해졌어요.
https://youtu.be/OzhsoSo-4dU?si=RB5Fziq428AL1wzn
“엄마, 잠이 안 와요. 아까 마왕 이야기가 생각나서 무서워요.”
그 순간 창밖에서는 갑자기 우르르 쾅 천둥과 번개가 번쩍이고 빗소리가 후두둑 후두둑 들려왔어요.
“아가, 엄마가 그러면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이야기 해줄게.”
“어떤 이야기요?”
“사실은 마왕이 아이를 잡아가려고 쫓아오는 게 아니었단다.”
“그럼요?”
“마왕은 친구가 필요했어.”
“네? 너무 무서워요. 친구라니요.”
“마왕은 원래 북쪽 마을에 사는 착한 천사였단다.”
“그런데요?”
“그런데 어느 날 수프를 끓이다가 난롯가에서 불이 나서 재를 뒤집어썼는데, 그때 막 놀러 온 짓궂은 아이가 ‘마왕이야. 마왕이야.’하고 놀린 거야. 그러고는 소문을 퍼뜨렸지.”
“그때부터 무서운 마왕이란 억울한 오해를 당해야 했어.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려고 아버지와 아이를 따라간 거야.”
아가는 점점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어요.
“그럼, 마왕을 도와주어야겠네요.”
“그럼.”
“마왕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어요?”
“그건,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으면 돼. 중요한 건, 마음으로 보는 거거든.”
그때 막 별똥별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쏟아져 내리며 반짝이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 순간만큼은 천둥과 번개도 힘을 쓰지 못했어요.
“마음으로요?”
거실에 있던 고양이가 엄마와 아가 옆으로 다가와서 엄마의 손을 핥았어요.
“우리 고양이 치치도 겁먹을 땐 발톱을 드러내잖아.”
“네.”
"하지만 네가 부드럽게 기다려주고, 천천히 쓰다듬어주면 조금씩 긴장을 풀고 곁에 다가오지? 마왕도 그런 걸지도 몰라. 겁이 나고 억울해서 더 무섭게 보였던 걸지도 몰라.”
“네.”
“그거야. 귀여운 고양이 바라보듯이 사람도 그렇게 바라봐 줘야 해.”
“하지만 진짜로 나쁜 악당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그럼 위험하지.”
“그럼 어떡해요? 나쁜 악당이 나를 해치면요?”
“그래서 지혜가 필요해.”
“지혜요? 누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처음부터 알아보기 쉽지는 않아. 뒤늦게 당하고 나서야 나쁜 사람이었구나! 마음을 졸이는 경우가 더 많지.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피하고 집안에만 있어야 할까?”
“아니요. 나가서 놀 수도 있어야 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듯이요.”
“그렇지. 그렇기에 지혜가 필요해. 혹시라도 위험한 일에 처했을 때 용기를 내어 재빨리 빠져나오는 힘.”
“아….”
“우리 아가는 만약 친구가 때리면 어떻게 할 거야?”
“하지 말라고 하고 주위 어른들에게 말할 거예요.”
“그리고 만약 낯선 사람이 데려가려고 하면?”
“도와주세요. 외치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할 거예요.”
“그렇지. 그런 게 필요해. 엄마가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게.”
엄마의 차분한 목소리가 아가한테는 자장가처럼 포근하고 달콤하게 들렸어요. 엄마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옛날 옛적, 숲속 마을에 동물 친구들이 살았단다. 토끼, 호랑이, 곰, 개구리, 두꺼비, 말, 여우 친구가 살고 있었어. 토끼는 귀를 쫑긋 세우며 다른 동물의 말에 귀를 잘 기울였고, 호랑이는 우렁찬 목소리로 나쁜 행동을 하는 동물 친구들을 혼내주었어. 곰은 달콤한 꿀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길 좋아했고, 개구리는 폴짝폴짝 뛰면서 재주부리기 좋아했어. 두꺼비는 그런 개구리를 좋아하며 따라다녔고, 말은 이히잉이히잉 소리를 내며 힘차게 달리기를 좋아했어. 여우 친구는 영리해서 꾀를 잘 내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개구리와 두꺼비가 싸우는 일이 일어났어. 개구리가 두꺼비에게 나 좀 그만 따라 해. 나 좀 괴롭히지 말라고. 라고, 소리쳤어. 이 소리를 들은 토끼가 동물 친구들을 숲속 중앙에 모았어. 동물 친구들은 회의를 열었지. 호랑이는 재판하기 시작했어. 개구리와 두꺼비는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지.
개구리: 글쎄, 두꺼비가 나를 따라 하고 자꾸만 헐뜯고 괴롭히는 바람에 살 수가 없어.
두꺼비: 무슨 소리야. 개구리, 너는 우리 모두를 속였잖아.
개구리: 내가 언제?
두꺼비: 개구리가 폴짝폴짝 뛰는 건, 이웃 마을에서 몰래 마법의 약을 먹기 때문이야.
곰과 말은 어리둥절해서 쳐다봤어. 그때 여우가 목소리를 높였지.
여우: 나도 알아. 개구리가 지금까지 우리를 속였어. 개구리는 거짓말쟁이야.
개구리: 아니야. 아니라고. 난 마법의 약을 먹은 적이 없어.
그때 호랑이가 천둥 같은 호통을 쳤어.
호랑이: 여우 말이 맞는 것 같아. 개구리야. 더는 너와 살 수 없어. 우리 숲속 마을에서 나가줘.
개구리는 엉엉 서럽게 울면서 숲속 마을에서 쫓겨났어.
여우와 두꺼비는 개구리를 비웃으면서 내쫓아버렸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숲속 마을은 폐허가 되기 시작했어. 여우와 두꺼비는 계속해서 동물 친구들에게 나쁜 짓을 했거든. 그때야 곰과 호랑이, 말, 토끼는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소용이 없었어. 결국 여우와 두꺼비 빼고 모두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단다. 몇 년 뒤 여우와 두꺼비도 나쁜 짓을 계속하다가 둘이 서로 물어뜯고 죽고 말았어.
이 소식은 개구리의 귀에도 들렸어. 개구리는 숲속 마을을 다시 찾아왔어.
개구리: 나를 쫓아낸 숲속 마을이지만, 그리운 추억이 가득한 곳인데…. 모두 엉망이 되었어. 동물 친구들은 날 모함해서 내쫓았지만, 나는 더욱 늠름하고 강한 개구리가 되어 돌아왔어. 그리고 가족도 생겼어.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준 친구들을 새로 만났거든.
개구리는 또 다른 개구리 친구들을 많이 데려왔어. 그리고 옛 숲속 마을에 아름다운 개구리 마을을 세웠단다. 수많은 알을 낳고 올챙이를 키우며 행복한 숲속 마을을 만들어 갔어. 이야기 끝.”
엄마는 이야기를 마친 후 다정하게 아가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생각이 들어?”
“다른 사람 말이라고 무조건 믿지 말고, 현명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시샘하고 질투하는 것도 좋지 않지.”
“엄마, 그럼, 저 이제 마왕을 무서워하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마왕은 무서운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요.”
“응. 마왕은 계속되는 무시와 거부에 화가 난 걸 수도 있어. 하얀 천사였던 마왕을 나쁜 아이가 마왕으로 몰아간 거야.”
“마음이 아파져 오네요.”
그때 아빠가 들어왔어요.
“여보, 아가야. 얼른 자야지.”
“아빠, 사람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래요. 엄마가 들려준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가 슬펐어요. 그리고 마왕이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하네. 그런데 내일 어린이집에 가려면 일찍 자야 한다.”
“네. 아, 눈이 감겨오네요. 저 이제 자야겠어요. 아함.”
아가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감고 잠이 들었어요. 아가의 얼굴은 하얀 천사가 내려앉은 듯 포근해 보였어요.
엄마는 아가의 곁에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틀어주었어요.
https://youtu.be/TwWpJca9BDk?si=zh1567AI-7-8X6Uo
아가는 꿈속에서 마왕과 구름 위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꿈을 꾸었어요. 얼굴에는 싱글벙글 미소가 번졌어요.
어느새 창밖에는 폭풍우가 멈췄어요. 엄마는 곤히 자는 아가를 침대에 올려두고 스르르 이불을 덮어주었어요. 그리고 살며시 아가방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여보, 우리 아가가 이제 마왕이 무섭지 않다니 기특하네요.”
“세상은 마왕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는 걸 이제 알아갈 거예요.”
“마왕보다 무서운 거, 그게 뭐죠?”
“그건, 강인한 마음,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을 구분할 줄 아는 마음이죠.”
“맞아요. 순하고 순한 우리 아가가, 이 폭풍우 치는 밤처럼 어두운 세상에서도 빛을 밝히는 어린이로 자라났으면 좋겠어요.”
“내 마음도 그래요. 우리 아가는 분명, 슈베르트처럼, 슈만처럼, 세상에 아름다운 선물을 남기는 멋진 어른이 될 거예요.”
“우리도 음악 들으면서 잠자리에 들죠.”
“베토벤 비창 2악장은 어때요?”
https://youtu.be/f5UbjTFUTu0?si=7d7ExKZB8xt-p2dE
“좋아요. 당신과 아가 덕분에 난 참 행복해요.”
“저도요. 굿나잇!”
“굿나잇!”
아가와 엄마, 아빠가 잠자는 작은 집 너머로 무수한 별똥별들이 쏟아져 내렸어요. 캄캄한 밤 속 어두운 세상에서 아가와 엄마, 아빠가 자는 작은 집만큼은 둘러싸인 별들로 환했답니다. 두런두런 별들이 속삭이며 아가와 엄마, 아빠가 사는 작은 집을 축복해 주었어요. 별처럼 환하고 아름다운 집, 폭풍우 치던 캄캄한 밤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집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