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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통해 본 광주 5•18 민주화운동

동화 <손바닥에 쓴 글씨>

by 루비

손바닥에 쓴 글씨 - 김옥 -

<문학을 통해 본 역사>

1. 들어가는 말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 한 사람의 권력욕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오랜 세월 지워지지 않는 고통을 겪은 이야기. 용감히 싸운 시민군들, 그들을 진압한 계엄군, 두려움에 벌벌 떨며 숨죽여있던 광주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다.

영화 속 마지막 대사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우리를 잊지 마세요.”

2. 본론

<내용적인 면>

‘손바닥에 쓴 글씨’는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한편의 짧은 동화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옥 작가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 해왔으며 많은 동화를 써온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다소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결코 밝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따뜻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옛 사람들이 간직했던 아픔, 고통의 기억들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로 태어난 세대들은 그 때 어떤 끔찍한 일들이 있었는지 잘 모를뿐더러 역사교과서에서조차 과거의 잘못된 만행들, 고위층의 부정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 덮어버리려고만 한다. 우리가 알려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이런 부정부패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자취를 감출 것이고 그러한 시간의 뒤안길에서 가해자들은 그저 웃으면서 바라볼 뿐이다. 정작 그 사건을 지휘한 자는 수많은 광주시민을 죽이고도 엄청난 부와 권력이라는 미명아래 감옥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석방되어 수많은 경호원들을 두고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우리 사회가 올바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점차 잊히는 광주민주화운동이었지만, 그 때 그 일을 겪은 당사자들에게는 그들뿐만이 아니라 가족에게 대물림되어 한 가정이 파탄되고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 끊을 수 없는 아픔의 긴 연속이다. 비록 사회 흐름은 권력자의 두려움 앞에 과거를 숨기고 드러내기를 꺼려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과거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를 청산하는 일이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비록 한편의 짧은 동화이지만, 어린 아이들이 짧은 글을 통해서 그 시대 사람들이 겪어야만 했던, 지금도 계속되어 온 아픔을 이해하고 느끼게 해준다는 면에서 교육적인 효과도 크다고 본다.

이 이야기는 섬마을에 살고 있는 한 여인, 상수엄마에 관한 글이다. 상수의 엄마 · 아빠와 여동생은 오순도순 살아가지만, 가끔씩 발작을 일으키는 어머니 때문에 알게 모르게 서로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상수엄마는 집 밖을 나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마치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를 가지고 장난을 치듯이. 처음에는 물심양면으로 보살펴주던 남편도 그런 아내 때문에 결국에는 지쳤는지 딸만 데리고 육지로 떠난다. 남은 건 상수와 상수엄마뿐. 상수엄마는 남편과 딸을 떠나보낸 후, 아들을 위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보려 하지만 남모를 그녀의 상처는 얼마나 깊은 것이었기에 쉽사리 그 어두운 운명의 굴레 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리고 그 상처란 것은 집안에 숨겨있던 꽃씨를 상수가 발견하면서 밝혀지게 된다. 그것은 광주민주화운동 때 상수엄마가 쌍둥이오빠를 잃었던 것, 그 오빠는 동생인 상수엄마의 은반지를 사러 가기 위해 시내에 가다 참변을 당했던 것, 그리고 그런 계속된 아픔은 또 다른 아픔을 낳아서 상수엄마가 실수로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하는 것까지 비극은 계속해서 또 다른 비극을 낳고 말았다.

부유하진 않지만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누리던 한 가정이 5 · 18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깨지고 해체되어 그것이 대를 잇는 아픔으로 남는 것을 보면서 과연 그것을 누가 치유해줄 것인가, 그 어떤 것으로 보상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면 그 화를 억누를 길이 없다. 그런 일들만 없었다면, 상수엄마의 오빠는 그렇게 무자비한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신이 목표하던 대학에 가며 상수엄마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그 사건이, 그들이 행복으로 가는 길목을 막아선 것이다.

오랫동안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던 끝없는 회한과 고통의 시간들을 아들에게 털어놓는 것은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 그들이 겪은 아픔이 결코 그들만의 것이 아니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할 아픔이라는 것. 그저 지난일이라고 무관심하게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며 치유해나가야 한다는 것. 작가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상수는 상수엄마가 고이 간직해왔던 꽃씨를 하늘로 날려 보낸다.

"멀리 멀리 가서 활짝 피어라. 우리 어머니의 슬픔을 모두 가지고 가거라."

상수엄마가 오빠를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쌍둥이 오빠가 살아있을 적 정성스레 가꾸었던 꽃밭의 씨앗.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눈물로 담아왔던 지난날들을, 하늘에 꽃씨를 날려 보내는 행위를 통해 새롭게 세상과 마주하길 기대하는 것이다. 더 이상 숨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과거 속에서 떠나지 못했던 엄마가 자신의 삶을 새롭게 다시 살고자 하는 소망의 한 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작가가 바라는 희생자들의 모습일 것이다. 죄책감을 벗어던지고 이제는 자신의 삶을 사는 것. 상수엄마의 아버지가 상수엄마를 떠나기 전 했던 그 말.

“너는 너의 삶을 살거라.”

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상수엄마는 5 · 18광주민주화운동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지속되는 아픔을 겪는 인물로 나온다.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대한 어둠에 이끌리듯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는 한 여인. 자신이 갖고 싶던 은반지를 위해서 오빠 손에 한 자 한 자 ‘숙희은반지’라고 글씨를 새기던 그 시절의 순수한 소녀는 온데간데없고, 피와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지난날의 흐름 속에 애처로이 죄책감을 안고 사는 가녀린 여인만이 남았을 뿐이다.

바다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옵니다. 끊임없이 바닷가 절벽을 쓰다듬는 파도 소리에 상수는 귀가 젖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바다를 건너온 바람은 매번 집 뒤 소나무 숲을 넘지 못하고 엎드려 웁니다. 상수는 그 바람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다가 그만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때의 일들을 그저 무덤덤히 흘려보낸다.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해보지만, 점차 나 아닌 다른 사람 일에 무관심해지게 되고 서서히 기억 속에서 지워가는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상수아빠와 그의 주변 아주머니들이 바로 그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어느 누구하나 상수엄마의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발작의 이면에 숨어있는 슬픔, 아픔들을 알려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덮어놓다가 어느 순간 지워지기를 바라면서 그러면 모든 것이 편해지겠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고통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 것이었다면 상수엄마가 그토록 오랜 시간 힘들어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5월이 오는 것을 온몸으로 감지할 수 있었을까.

상수엄마를 손가락질하고 떠나버리던 사람과는 달리 상수는 끝까지 어머니와 함께 했다. 상수엄마의 고통을 모른 척 회피하지 않았고, 꽃씨와 관련된 사연을 알게 되며 그 고통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인물이 바로 상수이다. 지난날들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뻥 뚫린 것처럼 허물어진 가슴 한 켠을 함께 채워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도 말했듯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점이다. 그들이 그저 가슴속에 간직해둔, 차마 어느 누구에게도 끄집어 말하지 못했던 억울한 사연을 알아주는 것,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듯이 모른 척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겪어야했던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영화 속 마지막 대사 “우리를 잊지 마세요.”는 바로 이 이야기와 상통하는 것이다.

<표현적인 면>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깊이 있는 문체, 적절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비유와 묘사적 심상을 통해서 문장 하나하나가 시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방법을 통해서 작품배경의 분위기, 주인공의 내면심리 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상수네 집은 바닥을 향해 더 깊이 가라앉아 버립니다.
마치 뒤집어진 채 바다 밑으로 끌려 들어가는 배처럼

잘려 나간 손톱 같은 초승달이 뜬 밤이었어.


그리고 극적인 설정을 통해서 이야기의 비극을 더욱더 심화시키고 있다.

치마 가득 쓸모없는 꼬막 껍질을 잔뜩 담아 오기도 하고, 잔돌을 가득 주워 오기도 합니다. "봄이면 꽃밭을 만들거야." 하면서요.
우리 생일이 있던 오월이면 집안 가득 피어난 꽃들로 더 아름답곤 했지. 거의 대부분이 오빠가 가꾼 꽃들이었어. "내년 봄에는 너랑 함께 심어보자."

오월이 생일이었던 쌍둥이 남매. 5 · 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 봄에는 함께 꽃을 심기로 했었던 상황설정으로 그들의 슬픔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 그래서 상수엄마는 정신이 나갈 때면 꽃밭을 만들겠다고 떼를 썼던 것이다.

개인과 사회 · 국가와의 갈등을 오랜 세월 가슴속에 씻을 수 없는 아픔과 고통으로 담아온 한 여인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의 심도가 점차 고조되다가 다시금 아들과 고통을 나누면서 휴머니즘적인 결말로 승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운 주제들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적절히 풀어놓았던 점이 돋보인다.

<작품의 의의>

우리의 지나간 역사들, 그 무거운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직접적으로 다 들려주기에는 그 사건들이 너무나 처참하고 비극적이다. 우리가 지난 세월동안 가지고 왔던 분노와 아픔, 슬픔들을 동화라는 매개체를 가지고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내면서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했던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잘 묻어나오고 있다. 이 짧은 동화에 모든 내용이 다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하나의 사연을 통해 아이들이 그저 과거의 문제라고 치부하지 않고 역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교과서에 몇 줄 쓰여 있는 문장으로 그 때의 일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아이들에게 그것은 그저 외워야할 하나의 단편적인 사실에 지날 뿐이지 그것에서 어떤 감동, 전율도 느끼기 힘들 것이다. 단군시대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역사교과서의 분량에서 본다면 비교적 최근의 일인,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근현대사의 일이 교과서에서 그렇게 비중이 작다는 것은 역사교육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거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하나의 교육 자료로서 훌륭한 문학적·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 편의 이야기로 그 당시 민주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어야 했던 사람들의 아픔을 작가는 함께 공감하며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그것을 계기로 문학에 다 드러나지 않았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이면들을 스스로 알아가기를 바란다.

3. 마치는 말

이 동화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몇몇 있었다. 상수엄마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대의 아픔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그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는 나와 있지 않다. 이것은 일부러 회피했다기보다는 이 책의 주 대상독자인 아동의 입장에서 그려내기에 그랬던 것 같다. 아이들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물음표를 띄울 수 있게 한 것까지 만해도 큰 효용적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또한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드러나는 애절하면서도 우울한 분위기가 다소 아쉬웠다.

'손바닥에 쓴 글씨'는 아동문학이 단순히 어린이만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는 것, 겉으로 보기에 짧고 쉬운 내용일지라도 그 안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많은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깨우침을 줄 것이다.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거나 상업적 인기에 염두하고 쓰인 것이 아니라 시대를 반영하고 아이들이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문학이 우리주변에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안에는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가 분명하며 나약한 한 인간을 대하는 휴머니즘적인 시각이 잘 녹아있다. 이러한 작가관이 작품 안에서 밀도 있게 녹아들면서 아름다운 하나의 문학으로 형상화 된 것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작품을 통해서 비록 자신은 겪어보지 못했을지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상처받았던 영혼들의 기쁨과 슬픔, 아픔에 하나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지나간 시간들을 헤아려보는 힘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 아동문학교육 수업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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