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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은 이유

by 루비

어린 나이에 성공가도를 달리면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물론 김연아 선수처럼 세계적인 선수로 이름을 날리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다. 파벌 싸움이나 질투심과 같은 정치적인 이유로 일찍 눈에 띄면 소리 소문 없이 매장될 수도 있는 게 한국사회인 것 같다. (뉴스나 인터넷 검색창을 검색해 보시길!)


나 또한 열아홉 살에 대학에 막내로 입학했지만, 많게는 띠동갑 나이 차이 나는 동기들과 살면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현직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스물넷에 새내기 교사였지만 3년 차 선배교사는 이미 사십 대 중후반이었다. 교직 경력은 얼마 차이 나지 않았지만 연륜과 처세술에서는 내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러면서 어린 나이가 꼭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십 대까지만 해도 젊음이란 청춘의 특권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도 사실이었다. 한 살 한 살이 소중하고 스물아홉에는 서른이 되기 전 꼭 유럽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강했다. 하지만 내 소망은 여러 일들로 물거품이 되고 서른에 유럽여행을 떠나게 됐다. 만으로 스물아홉이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나에게 굉장히 크리티컬 한 문제였다. 이십 대를 기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사십 대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은 여자를 나이로 후려치기 십상이지만 그건 철부지 개념 없는 일부남자들의 특징이란 것을 안다. 커뮤니티에서도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여자들은 동갑내기 미혼 여자들을 도마 위에 올리며 처절히 씹히길 기대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사십 대 중반에 첫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 유명강사는 악플러의 댓글을 공개하기도 했다.


가끔 어리고 아기 같던 시절의 사진을 올리고 추억하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의 내 모습이다. 내가 어린 시절 암만 뽀얗고 앳된 얼굴을 자랑한다한들 그건 과거의 모습일 뿐인데 뭐가 그리 중요할까? 나는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사랑스럽고 현재의 나를 아름답게 가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날씬할 때 입었던 원피스가 더는 맞지 않아도, 어린 시절 머리에 꽂았던 왕핀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아도 나이 들어감에 따라 원숙해지고 아름답게 익어가는 현재의 내가 더 좋다.


박완서 작가는 주부 생활을 하다가 마흔에 첫 등단을 해서 한국의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는 대작가가 되었고 소설가 델리아 오언스는 생태학자로 일생을 보내다 그간의 경험을 녹여내 일흔에 출간한 첫 소설, <가제가 노래하는 곳>으로 전 세계적인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었다.


김미경 강사는 한 강의에서 자신의 나이에서 17살을 뺀 나이만큼 살기를 권했다. 점점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수명이 길어지는 시대에 패션도, 일상도 젊게 살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십 대 초반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즐거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처럼,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과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참신함을 뜻한다는 시구처럼...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은 나이 들수록 참 좋다고 하셨다. 나도 굳이 후회하거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이돌 장원영이 이십 대의 앳된 나이에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고 있다고 해서 공감이 갔다. 내가 삼십 대 초반에 읽은 책이 <마흔에 관하여>였기 때문이다. 사인받으러 간 나를 보며 정여울 작가님은 신기해하셨다. 그땐 아직 오지 않은 나이를 미리 겪어보고 내 삼십 대를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까? 다가올 40대, 50대, 60대가 기대가 된다. 김연자의 아모르파티의 노래 가사 한 구절처럼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https://youtu.be/Pbl1g8V04KE?si=cCDghdJT4b2LHq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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