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선택

나에게 영감을 준 푼크툼에 대한 글쓰기

by 루비


롤랑 바르트는 사진을 설명할 때 스투디움과 푼크툼의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스투디움은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것이고(이를 테면 사진관 앞에 가족사진 같은 것) 푼크툼은 뭔가 가슴을 찌르는 듯한 것, 독자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시리아의 난민 사진 같은 것-어린아이의 죽음)을 말한다. /정여울 작가, EBS 클래스 e 정여울의 나의 첫 번째 에세이 쓰기 중

아프리카의 코끼리.png


나에게 푼크툼을 일으켰던 사진이나 그림이 어떤 게 있었나 떠올려보았다. 제일 먼저 떠오른 사진은 ‘퓰리처상 사진전’에서 본 케빈 카터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라는 그림이지만, 그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여러 번 썼었기 때문에 오늘은 다른 그림을 소개하고 싶다. 다음으로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샤를 드 투른느민의 <아프리카의 코끼리>가 기억에 남는다. 노을 진 강가에 모여있는 수많은 코끼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건 어쩌면 평화롭고 행복한 삶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었다. 예전에 같이 스터디를 했던 언니는 자신의 친구가 대기업을 그만두고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너무나 행복해서 쭉 눌러살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봤던 다른 초상화나 풍경화 못지않게 나에겐 이 그림이 아름다운 지구에 대한 소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림을 그린 화가, 샤를 드 투른느민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지만 아마도 여행을 가서 본 풍경을 그린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음악으로는 크로아티아의 음악가인 막심 므라비차의 Croatian Rhapsody가 마음에 강렬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 곡은 1991년 크로아티아에서 일어난 독립전쟁 속에서 작곡된 곡이라고 한다. 매일 포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빗발치던 곳에서 막심은 전쟁의 두려움과 슬픔을 음악으로 표현해 낸 것이다. 강렬한 도입부로 시작하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이러한 곡이 실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발칸반도는 전쟁이나 분쟁이 일어날 위험이 높아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는데 이러한 아픔과 위기 속에서 음악으로 이겨낸 음악가 막심에 대한 존경심이 든다.

https://youtu.be/AYk4Gk3NaVw?si=3kYz4NnpNarIT1YN


정여울 작가는 슬픔은 글쓰기의 좋은 재료가 되며 그를 통해 독자와 작가가 교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도 살면서 많은 슬픔과 아픔을 겪었다. 글로 써본 적도 있지만, 나는 좀 더 행복하고 희망적인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이나 음악에는 슬픔이나 불행, 고난을 담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도 그렇고 하다못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제인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많은 위기와 오해를 극복한 이야기다. 운명에 맞서는 이야기인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그러하다. 비록 돌아오는 길에는 잡은 청새치를 상어에게 모두 뜯기지만 말이다.


그러니깐 <아프리카의 코끼리> 그림처럼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하고, <크로아티안 랩소디>라는 곡처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꿈꾸기도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우리의 삶이 슬픔과 아픔,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더라도 계속해서 전진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상투적인 스투디움을 담고 있는 가족사진 같은 사진은 어느 한순간만을 포착해 내지만, 푼크툼처럼 마음의 폐부를 찌르는 강렬한 사진은 우리의 내면을 꿈틀거리게 한다. 우리의 인생을 그런 푼크툼 같은 사진의 일상으로 채워가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