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5. 에 블로그에 작성한 글을 약간 수정해서 올립니다.
2013년, 나의 6학년 첫제자였던 민석이로부터^^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총 5분이 계세요.
첫번째,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 6학년을 2년반 가르쳐본 나로서는, 내가 6학년이었던 2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특히 생활지도면에서) 그 때는 지금처럼 교수학습자료가 많던 시절도 아니었고 주6일제였으며 전담선생님도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었는데.. 어찌되었든, 그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서**선생님께서 우리를 상당히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한창 사춘기시절의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많이 힘들어 하셨을 걸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 가득하다. 선생님께서 1년 간 마니또 활동과 착한 어린이표 활동을 꾸준히 하셔서 기억에 많이 남고 좋았다.
두번째, 중3때 담임선생님, 이**선생님. 지금은 결혼하셨지만 그 당시 삼십대 초반으로 미혼이셨던 선생님. 온화하시고 수업도 잘 하시는 과학선생님이셨다. 아직도 기억나는, 지구에서 달을 바라볼 때 달라지는 모습을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주셨던(난, 지구과학을 제일 좋아했었다). 비평준화지역이었던 우리학교에서 고교진학상담시에 모두가 선망하던 의여고가 아니라 바로 옆학교도 괜찮다고 하시던 말씀에 살짝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실제로 희망이든, 아니면 점수가 모자라서든, 후순위로 밀려 학교 간 학생들은 대부분 후회하였다. 그 당시는 고등학교도 서열을 나누던 시기이니깐. 지금은 평준화가 되어서 가까운 학교로 간다.) 그리고 당시 우리반은 전교 상위권 학생들이 가득한 반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졸업식 날 대표로 상받는 기회를 얻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선생님의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과 달리, 나는, 기대감을 실망감으로 바꾸며 조용히 우리반 자리에서 받아야했다. 아직도 이해안가는 부분인데, 그 때 내가 이해하기로 맘 약하고 여린 우리 선생님이 경력 많으신 선배선생님들한테 밀렸구나 싶었다. 한달에 한번씩 모둠 별로 짝지어서 선생님 집에 방문하기도 했었고, 그 일을 학교문집에 수기로 써주셔서 읽어보기도 했다. 한번은 우리반 일진들의 못된 장난에 울면서 교실을 뛰쳐나가시기도 했었다. 어쨌든, 나에겐 참으로 따스하고 고마운 분이셨다.
세번째, 고1때 담임선생님, 이**선생님. 수학선생님이셨던 전교조 출신의 선생님. 나를 전교조로 이끄신 분(지금은 탈퇴함). 우리 학년이 1학년이던 해는 효순이,미선이사건과 소파협정이 맞물리며 아주 시끄럽던 해였다. 서울 지하철역에 나가면 온통 의여고학생 교복들의 물결(포스터 사진상)로 넘쳐나던 시기였다. 암튼, 꿈에 그리던 경기북부 최고 학교에 입학했다는 기쁨과 한편으론 모든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또다시 등수를 매긴다는 사실에 스트레스가 배가 되었던 것도 사실. 실제로 처음에는 공부를 하나도 안하고 시험친 내 잘못도 있지만 내 등수는 겨우 중간을 모면한 정도였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함께 여름방학을 나고 놀랍게도 2학기 때는 반 3등으로 급상승하였다. 그래서인지 담임 선생님께서 나에게 엄청 잘해주셨다. 그리고, 곧이어 우리는 2학년부터 공부할 문/이과를 나눠야했는데, 바로 윗학년 선배들과 달리 고등학교 제7차교육과정 첫 적용이었던 우리는 탐구영역도 선택해야만 했다. 그 당시 어렸던 나는, 무조건 세계사!(한창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을 끼고 살았던 때)라는 생각으로 한국근현대사를 버리고 세계사를 선택하였는데,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는 근현대사를 버리고 세계사를 선택하냐며 혀를 끌끌 차셨다. 살짝이 기분이 나뻤었는데 선생님이 된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꼭 배우고 익혀야 할 소중한 역사의 한 부분이 선택과 자율 존중이라는 미명하에 배워도 그만, 안배워도 그만인 과목으로 밀려난 현실에 대한 개탄이셨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일본의 지브리애니메이션을 상당히 좋아하셨는데 나도 덕분에 지브리 광팬이 되었다. 남들은 유치하게 볼지 몰라도, 막상 초등학생한테 틀어주면 어려워서 하나도 이해를 못하는게 지브리 애니이다. 자연친화적인 사상과 사회비판적이며 교훈을 남겨주는 것이 딱 담임선생님의 성품과 닮아있다. 아무튼, 어느덧 시간은 흘러흘러 학년이 바뀌어 새 담임선생님이 발표가 났고, 이**선생님께서는 휴직하다 막 복귀한 나의 새 담임선생님, 이**선생님을 마구마구 칭찬해주셨다.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났노라면서.
네번째, 고2때 담임선생님 이**선생님. 중국어를 가르치신 우리 담임선생님. 경기도 파견갔다온 바로 전해에 서울 뮤지컬 동호회에서 우리 선생님이 이끌었던 연극반 풀씨 출신, 학교 선배님도 만나서 함께 했었다. 이** 선생님은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교과목(중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셨고 실제로 실력도 상당하였다. (그 당시 HSK 최고등급 11급은 전국에 4명인데 그 중에 한 명이라고 하심)또한 우리 학교가 첫발령이고 그 전해에 중국유학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우리반을 가르칠 당시 7년차였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반은 전에 없는 분위기로 서로가 서로를 모두 위해주고 친근하고 힘들때 함께 힘이 되어주는 행복한 교실분위기를 만들어나갔고 선생님 또한 이번만큼 예쁜 아이들은 정말 처음이라고 하였다. 그 분위기를 이어서 12월 말에는 강원도 지역 선생님과 만나 결혼식도 올리셨는데 우리는 단체로 지하철을 타고 서울 종로까지 가서 결혼식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좋은 학습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일까, 나는 단 한과목 빼고 전과목 100점(수행평가를 제외한 필기시험에서)을 맞은 적도 있다.(그 단 한과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어ㅠㅠ 정말 죄송했다) 그리고 고3때는 더이상 나의 담임선생님은 아니셨지만, 계속해서 제2외국어(중국어)선생님으로 만날 수 있었다. 역시 전교조 출신이시다.
다섯번째, 고1때 국어선생님이신 정**선생님. 당시 스물다섯이셨던 선생님은 임고를 세번만에 합격하였다고 우리도 막 부러워해주고 우와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1반이었던 나는 스물아홉이신 사회선생님과 친한 5반 담임선생님 정**선생님이 누구보다 예뻐보였고 상냥한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좋아서 그 반 아이들은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우리반 담임선생님도 좋았지만 수학은 상중하로 나누어 이동하기 바빠서 담임선생님 뵐 시간도 별로 없었다) 평소 책 읽는 걸 좋아했던 나는 유난히 언어영역 공부를 좋아하였고, 그리하여 선생님도 더 좋아했던 듯. 젊고 예쁘고 잘 가르쳐주시고. 전곡에서 왔던 친구가 그당시 히트였던 인어아가씨의 아리영을 닮았다며 엄청 따랐던 기억도 난다. 내가 쓰고보니 젊은 선생님은 그 존재자체만으로 학생들한테 인기가 많기도하다. 대화도 잘 통하고.
쓰고보니 중3때 선생님과 국어선생님 빼고는 다 남자선생님이다. (고3때도 남자선생님이셨는데^^;) 암튼,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되돌아보니 생각보다 좋은 선생님들이 참 많으셨다고 느낀다. 모두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여 윈윈하는 교직분위기를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