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십 대 초반에 너무 많은 상처를 겪었다. 나는 이벤트나 공모전에 응모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 번은 가수 비 콘서트에 당첨이 되어서 잠실 주 경기장에서 공연을 보고 왔다. 이에 대해 이야기하자 학교 선배는 “너 그런데 처음 가본 거 아냐?”라고 무시를 하였다. 또 내가 악기 전공을 플룻에서 피아노로 바꿨다며 학창 시절 피아노를 배웠다고 하자 “너 바이엘 아냐?”조롱을 하였다. 그때 당시엔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자존감에만 생채기가 났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난 철저히 가스라이팅을 당했었던 것 같다. 과에서는 여자 동기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그런 나는 교회 동아리 리더라고 믿고 따랐는데 그곳에서도 철저히 모욕을 당한 것이다. 나는 정말 어디서도 숨 쉴 공간도 찾지 못하고 그렇게 처절히 이십 대를 가스라이팅과 괴롭힘에 상처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다.
그땐 몰랐는데 이제와 멀찍이 바라보니 나의 낮은 자존감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준이 높고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 자신에 대해 인정을 못하고 스스로 지나칠 정도로 겸손하고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들이 주변인들의 깎아내림과 결부되어 나는 움츠러든 인생을 산 것 같다. 한 번은 대학 동기들이 다 같이 점심을 먹으며 서로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는데 나에게는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아서 나는 오랫동안 내가 정말 못생겼다고 자책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십 대 후반까지 연애를 해보지 못했을 때도 “누가 나를 좋아하겠어?”라며 슬픈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면서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오만방자하게 키우진 않더라도 내가 나중에 자녀를 키운다면 꼭 자존감이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아빠는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셨지만 엄마는 지나칠 정도로 나를 엄격하게 키우셨다. 밖에서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내 책임과 내 탓으로 돌려서 너무 외롭고 서글프고 서러웠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고 안개처럼 뿌옇기만 했는데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정여울 작가님은 내성적이고 예민한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자주 주변인들로부터 타박을 당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글쓰기나 예술분야에 있어서는 훌륭한 자질이 된다고 하셔서 많은 위로가 되었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어떻게든 잘 지내고 싶어서 과한 노력을 해왔지만 자주 배척을 당하면서 나는 혼자가 더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정여울 작가님 말씀처럼 이런 나의 아킬레스건을 잘 살려서 글쓰기를 나의 강점으로 만들고 싶다.
최근에 펜팔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글쓰기와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내향인들이라 통하는 게 많은 것 같다. 외국인 친구들이 자신들의 나라나 문화를 소개해주면 신선하면서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독일에 사는 아프리카 친구는 내가 동화를 좋아한다고 하자 독일의 대표 동화작가인 그림 형제의 우표 사이트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또한,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있는 빨간 머리 앤 박물관도 알려주어서 언젠가 여행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가 힘들 때 읽었던 소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외톨이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됐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무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외톨이인 것이다.’ 나는 외향인의 세계보다는 내향인의 세계에서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한때는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밝은 척도 해보고 술을 즐겨보고 싶어도 했지만 나는 소소하게 책을 읽거나 서점을 탐방하거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 그러니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무리하게 어울리려 하기보다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렇다면 아킬레스 건은 더 이상 아킬레스 건이 아니라 나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성장의 씨앗이 되어줄 것이다.
https://youtu.be/hUK1YnrRInE?si=ygYk2L7QpYWpuwT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