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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영혼, 넬로와 파트라슈

화가를 꿈꾸던 소년과 개의 우정, <플란다스의 개>를 읽고

by 루비


※ 이 글에는 작품의 주요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참고해 주세요.



어릴 적 TV 애니메이션으로 봤던 <플란다스의 개>를 원작 동화로 읽었다. 애니메이션을 재밌게 봤던 기억을 떠올려 더모던 출판사의 TV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감성클래식, <플란다스의 개>로 읽어보았다. 맑고 순수한 소년인 네로와 여자친구 아로아가 원작 동화에서는, 배경인 벨기에의 발음을 살려서 네로는 ‘넬로’로, 아로아는 ‘알루아’로 번역되었다.


이 동화는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넬로와 그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부잣집 딸 알루아와 버려진 개, 파트라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넬로는 두 살 때 부모를 여의고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가 보살펴주었지만, 곧 할아버지는 몸이 쇠약해져 하늘나라로 떠나고 만다. 그런 넬로는, 좋아하는 알루아를 그림으로 그린 것을 보고 화가 난 알루아의 아버지, 코제 씨에 의해 누명을 쓰고 마을에서 완전히 배척당하고 만다. 코제 씨는 가난한 화가를 꿈꾸는 넬로와 자신의 딸이 가까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그런 일을 벌였다.


정말 가슴 아픈 것은 마을 사람들은 넬로가 그런 남자아이가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제일가는 부잣집에 힘 있는 코제 씨의 한마디로 모두가 동조하고 일거리도 주지 않고 넬로를 모두가 외면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보면, 한국이 자살률 1위의 척박한 경쟁사회로 사람들의 인정이 메말랐다지만,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은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본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기에 넬로처럼 착하고 순수한 마음이 더욱 빛이 나고 귀한 것 같다.


우리는 동화를 읽으면서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나쁜 사람들을 보면서 그렇게 살지 말자고 다짐도 하지만, 앎과 실천의 영역은 전혀 다르다. 말로는 휘황찬란하게 언변을 뽐내도 행동은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별로 신뢰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가시 돋치게 말해도 그 사람의 행동이 따스하다면 사실은 그게 더 진심이 아닐까? 심리학에서 사람의 마음에 공감은 해주되 나쁜 행동에는 단호해지라는 게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결국 코제 씨는 잃어버린 전 재산을 넬로가 찾아주면서 자신의 매정함을 반성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이미 넬로와 파트라슈의 몸은 차갑게 굳은 직후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딸, 알루아가 아무리 다시 눈을 떠라고 외쳐도 넬로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하늘나라로 간 뒤였다. 게다가 자신의 작품이 떨어져서 희망의 끈까지 잃어버렸던 넬로였는데, 유명한 화가가 찾아와서는 넬로의 작품이 1등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저명한 집안의 아들 작품이 1등이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벌어지는 곳 같다.


이 동화는 분량이 짧아서 1시간 반 정도면 천천히 다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짧은 이야기 속에 한 소년의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 파트라슈라는 개의 충성심,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 마을 사람들의 인색함과 진심 어린 참회의 눈물까지...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서 실로 슬프고도 아름다우며 감동적이다.

내가 이 동화를 읽은 건, 넬로처럼 그림에 재능이 있고 그림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내 동생이 그리워서였다. 그림쟁이는 가난하다며 돈이 안된다며 부잣집 자제들만 한다는 압박 속에서 비록 재능을 꽃피우진 못했지만, 넬로처럼 언젠가는 꼭 세상이 알아봐 주리라고 믿는다. 그가 남긴 애니메이션과 웹소설, 그리고 작업일지 하나하나 모두 우리 가족에게는 소중한 유작이자 추억이며 보물이다. 천사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간 넬로와 파트라슈처럼 내 동생도 지금쯤 천국에서 환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Descent from the cross, 1612~1614)를 보고 있는 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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