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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넘은 아이』에 나타난 ‘극복’ 서사와 ‘주체성’

동화 『담을 넘은 아이』분석

by 루비


담을 넘은 아이.jpg


『담을 넘은 아이』에 나타난 ‘극복’ 서사와 ‘주체성’ 연구


<차례>
Ⅰ. 서론 – 동화가 던지는 시대적 메시지
Ⅱ. 본론
1. 서사의 관점에서
1-1. 가난에 대한 차별 극복
1-2. 여성에 대한 차별 극복
2. 조력자의 역할과 푸실이의 주체성
Ⅲ. 결론 – 현실과 문학, 그 사이에서


Ⅰ. 서론 – 동화가 던지는 시대적 메시지


서울대 수시 지원자가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꼽힌 바 있다.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량이 인류를 두 번 먹이고도 남는 양임에도 불구하고, 8억 명이 여전히 굶주린다는 불균형을 시사한다. 또한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심화 속에 인간성은 점점 황폐화되고,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김정민의 동화 『담을 넘은 아이』는 단순한 아동 문학을 넘어, 불평등과 차별을 극복하려는 개인의 서사를 통해 깊은 감동을 전하는 작품이다. 동화는 종종 아이들을 위한 장르로 여겨지지만, 팬데믹 시대와 사회적 구조 속에서 차별과 시련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문학 장르이기도 하다.

본 글에서는 『담을 넘은 아이』를 중심으로, ‘극복’의 서사, ‘주체성’의 형성, 그리고 조력자의 역할과 작품이 지닌 한계와 시사점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Ⅱ. 본론

1. 서사의 관점에서 본 극복의 서사


줄거리
흉년이 깃든 조선시대, 가난한 집 맏딸로 태어난 푸실이는 우연히 『여군자전』이란 책을 줍게 되고 효진 아가씨와의 만남을 계기로 글을 배우면서 점차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가 대감님댁 젖어미로 팔려가듯 떠나게 되고, 푸실이는 위기에 처한 갓난아기 여동생을 구하고자 나선다. 작가가 창작한 가상의 책 속 인물인 ‘여군자(女君子)’는 신분과 처지, 성별과 차별에 부딪혀 나가는 푸실이의 모습을 통해 뭉클하고도 힘 있게 구현된다. 막힌 담 앞에서 주저할 것이 아니라,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도 세상과 마주할 담대한 자세와 힘을 품게 하는 작품이다.

1-1. 가난에 대한 차별 극복


『담을 넘은 아이』의 주인공 푸실이는 가난한 집안의 첫째 딸로, 시대적 흉년과 여성이라는 이중적 차별 속에 놓여 있다. 그녀는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의 냉대 속에서도 글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품고, 주체적으로 현실을 극복해 나간다.

이란, 현은자, 이현정의 『전래동화 그림책에 나타난 가난 모티프의 인성 교육적 함의』 논문에 따르면 가난의 종류는 크게 다음의 6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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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는 ‘제도 혹은 시대적 요인으로 인한 일반적 가난’과 ‘개별적 사고로 인한 가난’이 동시에 나타난다. 푸실이는 시대적 흉년이라는 조건과 하층민 출신이라는 이중적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푸실이가 양반 대감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부분이다. 그녀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닌, 책에서 배운 군자의 덕목을 근거로 논리적인 비판을 제시한다.


“제가 읽은 책에선 단지 덕과 학식이 높다 하여 군자라 부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불쌍하고 약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이가 참 군자라 하였습니다.” (p.139)


푸실이의 이 발언은 단순한 아동의 항변이 아닌, 윤리적 정의에 기반한 비판적 사고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비단 동화적 감동을 넘어, 현실 사회에서도 ‘주체적인 목소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1-2. 여성에 대한 차별 극복


푸실이는 여성이라는 사회적 한계를 넘어선 인물이다. 최문선의 『그림(Grimm) 동화의 여성상 연구 :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중심으로』 논문에서는 여성을 수동적인 여성과 능동적인 여성으로 구분하였는데, 후자는 다시 ‘동등한 여성’, ‘구원적인 여성’, ‘자립적인 여성’으로 나뉜다. 푸실이는 이 세 가지 유형에 모두 부합한다.

동등한 여성: 푸실이는 언문을 배우며 독서를 통해 지적 역량을 키운다. 『여군자전』을 읽고 사유하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한다.

구원적인 여성: 동생 귀손이와 아기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고, 어머니를 찾아가 젖을 구하는 등 가족의 생존을 위해 헌신한다.

자립적인 여성: 단지 학식만이 아닌 도덕적 실천까지 포함하는 ‘여군자’의 이상을 스스로 실현해 나간다.


이처럼 푸실이는 문자 해독 능력이라는 지적 도구를 통해 자기 성찰과 도덕적 판단력을 길러가는 주체적 여성으로 묘사된다.


2. 조력자의 역할과 푸실이의 주체성


작품에서 푸실이의 변화에는 효진 아가씨라는 조력자의 역할이 크지만, 진정한 변화의 원천은 푸실이 내면에 있다. 효진은 푸실이에게 언문 교육을 권하며 길을 제시하지만, 푸실이는 자신의 선택과 노력으로 이를 실현한다. <여군자전>을 통째로 암기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과정은 조력에 의존하지 않는 자생적 주체성의 표상이다.


“계속 읽고 생각하면 답을 찾지 않을까 싶습니다.” (p.72)


그녀는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설정해 나간다. 또한 그녀의 용기는 주변 인물들(선비, 대감, 효진 등)의 태도까지 바꾸어낸다. 즉, 푸실이는 환경의 희생양이 아니라 변화를 이끄는 주체적 인물로 재현된다.


Ⅲ. 결론 – 현실과 문학, 그 사이에서

저자의 말
젖을 빼앗긴 아기가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습니다. 아기는 제게 힘없고 소외된 이들의 고통에 대해, 편 가르기와 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담을 넘은 아이』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중략...
지금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나누고, 어느 동네에 사는지로, 또 나이별로, 온갖 조건으로 편을 나누어 구분 짓습니다. 그러고는 우리 편이 아니면 배척하고 차별하며 싸우기도 합니다. 말은 거칠어지고 혐오를 담은 새로운 말들이 만들어집니다.
신분과 성별로 구분 짓고 차별하던 옛날과 지금의 상황이 제 눈에는 다르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담을 넘은 아이』는 푸실이라는 열두 살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가난과 여성 차별이라는 전통적 억압 구조를 극복하는 서사를 성공적으로 그려낸다. 푸실이는 담을 넘는다는 은유처럼, 자신 앞에 놓인 사회적 장벽을 넘어서며 주체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를 지닌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구조적 장벽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능력주의의 함정은 이제 구조적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을 넘은 아이』는 그 출발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개인의 주체성’은 여전히 변화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 동화가 만약 보다 현대적인 사회 구조 속의 현실까지 반영했다면, 더욱 깊이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단지 한 개인의 성공 서사가 아닌, 공동체적 차원에서 연대와 회복을 가능케 하는 동화, 즉 ‘함께 담을 넘는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푸실이가 외운 『여군자전』의 첫 문장처럼,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해야 할 것이다.


여군자전의 첫 문장, ‘너는 어찌 살 것이냐. 여군자가 물었다.’를 마음속으로 오래오래 되새겨야겠다.




참고문헌

김정민, 『담을 넘은 아이』, 비룡소, 2019.

이란, 현은자, 이현정, 「전래동화 그림책에 나타난 가난 모티프의 인성 교육적 함의」,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016.

최문선, 「그림(Grimm) 동화의 여성상 연구: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tvN Insight,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능력주의의 단점과 불평등 문제의 해답」, YouTub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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