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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론 – 정의의 이익

by 루비

『국가론』 전체가 아닌 1권만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후 권을 읽고 다시 이 글을 돌아보며 보완해볼 생각입니다.





정의란 강자의 이익일까? 약자의 이익일까? 플라톤의 국가론 1장에서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누는 트라시마코스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말한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문답법으로 반박하며 약자의 이익이라고 결론짓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그가 말한 요지는 이렇다. 만약 정의가 강자의 이익이라고 해도, 그 또한 완벽할 순 없기에 약자를 위한 입법을 할 수도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기도 한다. 또한, 강자만을 위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게 되면,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치자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의사가 환자를 위해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해 치료를 한다면 그의 의술의 목적은 어디에 두어야하는가? 그러므로 참된 의사는 약자인 환자의 이익을 도모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정의를 지키는 자와 정의를 지키지 못하는 자, 누가 더 행복할까란 질문에 대해서도 정의를 지키는 자가 더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의로운 자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모든 면에서 현명하고 뛰어난 자이다. 지혜든 덕이든 뛰어나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선인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러한 자는 훌륭한 정신을 가지고 있기에 행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를 종합하면 진정한 통치자는 강자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의 행복과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이고, 이런 자들이 모여서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들이 결국엔 모든 약자의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할 수 있다. 서로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한다면, 아귀다툼이 될 것이고 모두가 손해를 볼 것이지만, 조금씩 스스로가 손해를 보고 약자를 위해 일한다면 결국 모두가 이익을 볼 것이다. 이것은 마치 천국에서는 긴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해 서로를 먹여주지만 지옥에서는 서로가 자기가 먹기 위해 싸운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러므로 결국 지혜로운 자, 덕이 있는 자는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의 유능함과 지혜를 약한 자를 위해 쓰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국가론 1권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약자도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는 강자일 수 있고, 자신의 강함을 약자를 위해 쓰는 자라면 선한 자라고 할 수 있다.(이 문장은 순전히 저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소피스트와 같은 궤변론자들은 이를 반대로 해석하기에 이를 잘 판단하고 분석해서 현명한 처신을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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