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퇴근 후,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음악을 틀고 유유히 학교를 미끄러져 나갔다. 속도를 내서 빠르게 다른 차를 앞질렀다.
지나가다 보이는 현수막이 눈에 띈다. ‘농악전수학교’. 6학년 때 풍물반에 몸담은 적이 있다. 국립국악원에서 사물놀이를 할 때는 희열에 젖었었다. 굿거리장단과 자진모리장단이 빠르게 휘몰아친다. 지금 다시 해도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상상이 잘 가질 않는다.
그녀는 아침에 출퇴근시간이 길면 외로움이 증가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왕복 20분이니 참 평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출퇴근길에 로드킬 당하는 동물을 종종 보아서 충격에 휩싸이곤 한다. 마구잡이로 산을 깎아서 도로를 건설하고 등산로를 개방하고 예산절감을 이유로 생태통로를 마련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라고 한다. 동물들의 사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면서도 놀라곤 한다. 사람과 동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도록 행정적•정책적으로 좀 더 신경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저녁을 무엇을 먹을까 생각 중이다.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너편 반찬가게로 가본다. 멸치볶음, 여러 종류의 김치들, 콩자반 같은 것들이 보인다.
‘깻잎이나 장조림을 먹고 싶었는데...’
돌아서 나가려는데 할머니가 “살 만한 게 없나 보지.”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제 마음을 딱 맞추셨네요.’
다른 반찬가게로 가볼까 하다가 편의점에 들어간다. 냉동고에 냉동피자가 1+2에 13,000원이다. 마트에선 얼마였지? 생각해 보다가 마트로 가본다. 그러다 생각이 바뀌어서 메추리알 조림을 산다. ‘메추리알 조림을 해 먹으려고 했었는데 조금 더 비싸지만 이미 조림까지 다 되어있잖아. 이거 완전 편리한데.’ 그렇게 그녀는 메추리알 조림 완제품과 김을 골라서 계산한다.
업무는 AI가, 빨래는 세탁기가, 청소는 청소기가, 요리는 밀키트가... 참 편한 세상이다.
지나가다 카페 앞에 보이는 ‘옛날토스트’ 포스터. 음. 야채가 듬뿍 들어간 게 다이어트에도 딱이네. 하면서 유자차와 함께 주문 후 자리에 앉는다. 가끔은 이렇게 외식도 좋은 거지. 문득 아침에 들은 ‘아침밥은 먹고 왔어?’란 말에 기분이 나빠진다. ‘제 밥은 제가 잘 챙겨 먹어요.’
음... 밀키트에 레토르트 식품에 반찬가게에 요즘처럼 편리한 시대에 직장 다니면서 요리까지 12첩 반상으로 해 먹어야 하나요? 게다가 전 ‘김밥’을 너무나 좋아한다구요. 닭가슴살 김밥을 해 먹을 때도 있지만 매일 아침에 새로 한 김밥을 사 먹는 것도 정말 좋아요.
이렇게 혼자 머릿속으로 뒤늦은 대답을 하다가 다시 차에 타서 집을 향해 운전한다. 서둘러 가지 않으면 지하주차장은 차를 댈 수가 없다.
그래도 오늘 하루도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괴롭히는 대마왕 같은 건 없으니, 이미 과거에 예방주사를 톡톡히 맞았으니 앞으론 잘 헤쳐나가겠지 하며 그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