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뚱냥이가 털을 고르며 골골거리는 소리가 방안에 퍼진다. 뚱냥이가 있어서 외롭지 않다. 나는 사실 지독한 외로움에 사무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오늘 책에서 인상 깊은 문장을 읽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느꼈을 때만이 외로움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친구이든 부모님이든 형제이든 낯 모르는 사람이든, 사람끼리만이 통하는 따뜻한 정을 받았을 땐 더 큰 외로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 <몽실언니>, 권정생
권정생 작가의 <몽실언니>에 적힌 문장이다. 읽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가닿지 않을 때 우리는 외로움을 지독히 느끼는 것 같다. 사랑의 상실, 그것은 우리를 지독히 외롭게 한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떤 감정도 못 느낀다면 외롭지도 않겠지. 다시 말해서 외로움을 느낀다는 건, 우리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아주 팔팔.
물론 영국에는 외로움부처 장관도 있다는데 외로움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외로움은 매일 담배를 15개비 피우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해롭다고 한다. 내가 처음 정신과치료를 받게 된 것도 지독할 정도로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고 방황하고 뼈가 시릴 정도로 외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외로움? 그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인생 최초의 외로움이란 언제 느꼈을까? 내가 기억하는 건, 중학생 때 체험학습을 갈 때 둘씩 짝을 지어 앉는데 아무도 나와 앉길 원하지 않을 때였던 것 같다. 그 후로도 짝을 지어 하는 활동은 나한테 공포심을 부추기곤 한다. 그래서 사교적인 활동은 피하곤 하는데, 다른 사람이 볼 땐, 책임감이 없어 보일 때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냥 너무 두려운 것일 뿐인데...
그러고 보면 사랑하는 사이에는 오해도 자주 발생한다. 이 소통불능이 외로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설명하며 설명할수록, 해명하면 해명할수록 더한 늪에 빠지는 기분... 그리고 결론 내린다. 아, 이 사람하고는 안 맞아!
하지만 누군가와는 외로움 자체가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마치 뚱냥이와 있으면 외로움을 모르듯이...
사랑하지만 사랑의 반대인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는 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도 나를 많이 사랑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깐 사랑은 외로움을 유발하기도 해서, 차라리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일종의 공허함과 허무함이고 우리는 진짜 사랑을 하게 되면 아주아주 충만하고 행복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뚱냥아, 사랑해.
지금 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나의 아킬레스건은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너무 사랑을 정리하는 것도,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쉬운 애라는 거다.
하지만, 이 순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이 사랑을 더는 쉽게 끝내고 싶지 않다는 거다.
지난날처럼 쉽게 오해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지루하더라도 다시 그와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이번 사랑은 결코 지난 사랑과 같지 않을 수 있을까?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준영의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