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 살펴보기
한 학기를 마치며 우리 반 학생들에게 구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내가 올해 맡은 학급은 1~6학년이 섞여 있는 복식학급이다. 저학년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어 고학년 학생들에게만 설문을 실시했다. 그러자 반응도 제각각이다. 어떤 문항에는 ‘없음’이라고 적거나 아예 응답을 하지 않은 학생도 있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에 ‘게임을 한 것’이라고 적은 학생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에 정성을 들여 감사를 표현한 학생도 있었다. 개개인의 경험과 특성이 담겨 있는 응답에도 마음이 여린 나는 무덤덤해질 수가 없다. 좀 더 욕심이 생기고 어떻게 하면 모든 학생이 학년말에 선생님을 좋은 기억으로 추억하고 헤어질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 학생들이 정말 좋아하는 선생님은 유능하고 재미있고 정의롭고 공평한 선생님이다. 온갖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인 것 같지만 사실 쉽지 않은 길이다. ‘유능하다’, ‘재미있다’, ‘정의롭다’, ‘공평하다’의 개념 정의도 사람의 기준에 따라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일수록 자신의 기준과 잣대로 선생님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고 객관적이기보다 지극히 주관적일 때가 많다. 그래서 진짜 인기 많은 선생님은 절대적으로 좋은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상대적으로 그 학생들과 소위 케미가 잘 맞는 선생님일 경우가 많다.
사회의 축소판인 작은 교실에서 담임교사는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뉴스 댓글란도 매일같이 대통령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뉘어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담임교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강인한 카리스마로 모든 학생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유능한 리더로 존경을 받는다면 선생님으로서 최고의 기쁨일 것이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라는 그림책이 있다. 야누시 코르착의 『마치우시 왕 1세』를 원작으로 각색한 이야기이다. 한 나라에서 늙은 왕이 죽고 10살 된 아들 ‘마치우시’가 왕이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왕이 즉위하자마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여기저기 부서에서 장관들이 힘들다고 아우성을 내뱉기도 한다. 그 가운데에서 어린 왕 ‘마치우시’는 어찌할지를 몰라 조바심을 낸다.
마치우시가 “왕은 왜 있어요?”라고 묻자 주변에서 대답한다. 왕은 왕관이나 쓰라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나라 국민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있다고. 그러려면 여러 가지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왕은 세심하게 의견을 듣고 국민들의 요구를 들어주려 하지만 이내 큰 혼란에 빠진다.
독재자 왕은 물러나라
마치우시 왕은 미쳤다
장관들, 외국으로 보석을 빼돌리다
로 된 헤드라인이 신문기사를 장식한다. 이렇게 이야기는 끝마친다.
뭔가 씁쓸한 맛을 떨칠 수 없었다. 개혁이, 진심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제 각각의 요구를 모두 만족하는 완벽한 정책과 이상이란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리더가 된다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 편 이야기 속에서 ‘마치우시’왕의 정책은 실패했지만, 국민들을 존중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와 개혁이 언젠가는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실패는 단지 실패가 아니라 작은 성공의 경험일 뿐이라는 말처럼.
실제로 처음 몇 년간은 행복한 학급을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슬럼프에 빠지며 학급 운영이 엉망이 된 해도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한 해는 반 학생들과 정말 최고로 행복한 순간을 맛보며 웃으며 헤어졌지만 실패로 끝난 한 해는 마지막까지 난파선에서 구명정을 찾아 헤매듯 죽을 힘을 다해 애썼던 것 같다. 그런데 되돌아생각해보면 그 와중에서도 나를 지지해주는 학생들이 있었다. 내가 일부 고약한 학생들로 인해 지쳐 힘들어할 때조차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주었던 학생들. 나를 사랑과 격려로 응원해주었던 학생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내가 할 일은 바로 그런 학생들이 계속해서 안전하고 평안한 분위기의 교실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나와 케미가 잘 맞지 않았던 학생들까지도 마음을 사로잡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일 것이다.
내가 학생에게 들었던 말 중에 아직도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선생님은 제 꿈을 이뤄주셨어요.”
손톱을 자주 물어뜯어서 어머니가 걱정하셨던 귀여운 1학년 꼬마였다. 현장체험학습으로 간 동물원에서 처음 본 코끼리가 너무 좋아서 내게 감사의 표현을 한 것이다. 순진무구한 1학년 학생의 대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순간만큼은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걸 보면 꽤 내 마음을 흔들었던 것 같다.
꼭 이런 말들이 아니어도, 학생들과 함께 기쁜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아이들도 내게 감사로 보답해주는 행복한 학급을 운영하는 일. 그리하여 세상의 갈등과 혐오를 줄이는 일에 일조하는 일. 그것은 아마도 교사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보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