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나

by 루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나보다 어린 동생과 시소를 타고 놀았었다. 그때 그 아이는 나보고 “언니는 참 개구쟁이 같아.”라고 말했었다. 그때 난, 그 이야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점차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로 변해갔다. 그냥 학교 선생님들이 너무 무서웠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선생님들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조용하고 성실한 모범생으로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남동생과 마을 꼬맹이들과 노는 게 즐거웠다. 동생과 자전거를 타고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일, 가을이면 밤을 주우러 다니는 일, 마을 친구들과 사방치기를 하거나 불장난을 하는 일(어른들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지만)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여학생들은 고무줄놀이도 즐겨했는데 나는 고무줄놀이는 정말 잘하지 못해서(학창 시절 체육을 정말 못했다ㅠㅠ) 언제나 빠져있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종종 정기적으로 엄마 손을 잡고 남동생과 의정부시장에 자주 갔다. 우리 마을에 의정부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에 2대 다녔던 것 같다. (지금은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면 수시로 지하철을 타고 총 30분 만에 갈 수 있다.) 우린 의정부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먹을 것도 사고 보세 옷 가게에 가서 엄마가 예쁜 옷도 잔뜩 사줬다. 또한 시장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포장마차다. 거기서 엄마와 남동생과 떡볶이와 튀김을 먹는 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 시절, 길거리에서는 설거지할 수가 없어서 그릇을 비닐로 감싸서 음식을 내어주는 걸 난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었다.


그렇게 시장을 다니다가 하루는 인파가 너무 많아서 사람에 떠밀려 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엄마가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알고 보니 내가 손 잡고 있던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하마터면 엄마와 헤어지고 길을 잃을 뻔한 순간이었는데 정말 십년감수했다.


집에서 내 동생과 나는 마당에서 흙 놀이를 하거나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부루마블을 하거나 레고를 가지고 놀거나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학원을 한 군데만 다녀서 그런지 그땐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잠자리에 들기까지 시간이 정말 많았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도 명절 때가 되면 마을에서 행사를 크게 열고 경품을 걸고 윷놀이 같은 것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요새는 그런 문화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그래도 며칠 전엔 마을에서 가래떡을 해서 나눠주기도 했다.

지금은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모교로 돌아가서 근무해보고 싶다. 모교에 들어서는 순간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 같다. 그곳에서 소설 <창가의 토토>에서 보았던 도모에 학교를 꼭 실현해보고 싶다. 토토같이 귀여운 나의 후배들을 사랑스럽고 영민한 아이로 키워내는 일... 내가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하듯 소중하고 예쁜 어린이들의 그 시절 추억과 행복을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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