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과제로 쓴 상상의 편지입니다.
어느새 내가 여든이 되었네. 내 마음은 아직도 소녀 같은데. 내 얼굴엔 주름이 패이고 손에는 검버섯이 가득하지. 그래도 허리만은 꼿꼿하고 정정해서 아직도 젊게 사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
내가 살아온 날들의 절반을 살던 시절, 그러니까 마흔의 나이에 난 참 많이 힘들었어. 그뿐만이 아니지. 마흔의 절반인 스무 살 때부터 내내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왔어. 그래서 청춘의 세월을 대부분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보냈지.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이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깐 희미해지긴 하더라.
마흔이 되면서 나는 조금 더 다듬어지고 길이 명확해지더군. 동화 공모전에 동화가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오디오북이 아닌 종이로 된 동화책을 출간하고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어. 그리고 동화 선집도 출간하고 본격적으로 동화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지. 학교에서도 온갖 정치질과 협잡에서 괴롭힘 당한 것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과거에 나를 괴롭혔던 교사들이 설자리를 잃었지. 사과의 연락을 해왔지만 나는 받아주지 않았어. 늘 막내였던 나로서는 선배란 작자들이 그랬다는 것, 그것도 한동안 자신들의 악행을 감추기 위해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단 사실은 절대로 용서하기 힘들었지.
그리고 1년간 휴직을 택했어.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내 남편과 6개월간 세계여행을 떠났어. 우리가 이미 갔던 여행지를 다시 둘러보고 남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북유럽과 동유럽, 아프리카까지 두루 다녔지. 80일간의 세계일주란 소설처럼 스펙터클 하진 않지만, 우리는 안전하고 평온하게 세상을 구경했어. 여행은 참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어. 서른 살에 그랬던 것처럼. 여행 에세이를 써보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어. 한때는 여행작가가 꿈이기도 했지만, 나는 무언가 이야기를 창작하고 인물을 창조해 내는 것에 더 매력을 느꼈거든. 물론 여행 에세이는 브런치에 꾸준히 올리긴 했지.
부모님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서 단독주택을 새로 지었어. 그리고 텃밭을 확장하고 꽃을 가꾸었지. 마치 우리 집은 버몬트 주의 타샤튜더의 정원 같았어. 그처럼 엄청 크진 않지만 소박하고 4계절이 뚜렷하게 아름다웠지.
나는 마흔 하나에 결혼해서 마흔둘에 아이를 낳았어. 그 아이들은 커서 애니메이터, 소설가, 피아노 연주가가 되었지. 우리 가족은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크리스마스 자선 봉사를 하곤 해. 각자의 재능을 살려서 어려운 어린이를 돕곤 해.
아직까지 만나는 제자들이 있어. 나는 예순둘에 정년퇴직하고 꾸준히 글벗책방을 운영해오고 있어. 제자들은 이 책방에서 만나. 우리는 소소하게 문학을 이야기하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며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공유하지. 어느덧 내 제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해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네.
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도 40년이 다 되어가. 나도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네. 그럼 동생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사실, 나는 어쩌면 동생이 내 아들로 환생한 건 아닌가란 생각을 할 때가 있곤 했어. 동생의 목에 있던 상처가 내 아들이 태어난 후에도 희미하게 남아있었거든. 하지만 우리는 신이 아니니 다 알 수 없지. 증명할 수도 없고. 그냥 부여잡은 희망일 뿐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죽고 나면 모든 게 명확해지겠지. 그래서 난 죽음이 두렵지 않아.
부모님도 10년 전에 차례차례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남편과 자식들, 제자들이 전부야. 친구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지. 난 이제 이렇게 풍성하게 가꿔온 내 삶에 여한이 없어. 내가 창작한 동화들, 나와 함께 성장해 온 제자들. 그리고 나의 아이들.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해.
마지막으로 주 하느님께 감사의 경배를 올리고자 하네. 지금까지 내 삶의 모든 슬픔과 고통, 사랑, 축복은 모두 그분이 함께하셨네. 여기까지 살아오게 해 주셔서, 내 삶을 이렇게 풍성하게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