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P 여자

라벨을 넘어서 이해하기

by 루비


유튜브에서 ‘HSP’에 관한 영상을 봤다. 그리고 얼마 후에 친구가 넌 “HSP 같아.”라고 했다. 그리고 나도 그런 것 같았다. 내 동생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아닌 것 같다. 참 이상하지. 그래서 부모님은 우리 남매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HSP는 Highly Sensitive Person의 약자로 매우 예민한 사람을 뜻한다. 인구의 15~20%에 해당한다고 한다.


나는 소리에 예민하다. 나는 특히 인스타그램에서 음악을 넣은 게시물은 바로 음악을 꺼버린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악이 나오면 견디기 힘들다. 차라리 백색소음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지하철 같은 데서 누군가가 신발을 잘못 끌어서 ‘삑’ 소리를 내면 심각한 스트레스와 통증을 함께 느낀다. 정말 그런 순간이 잦을 때마다 너무 고통스럽고 제발 신발을 이상하게 끌지 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 모르지만 기차역에서 KTX가 들어오는 순간도 견디기 힘들다. 정말 그 굉음을 매주 겪어야 한다니 사실 스트레스가 심하다.


나는 그리고 편식이 심하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챗gpt말로는 HSP는 감각을 잘 느껴서 음식의 맛, 질감, 향에도 강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나물 종류를 먹으면 헛구역질을 할 것 같아서 공포스럽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이 그건 그냥 편식일 뿐이야라며 무시해서 상처를 받았다. 물론 편식이 맞긴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내 몸 자체가 강하게 거부하는 데 있다. 회도 잘 못 먹고, 너무 신 음식도 못 먹고, 못 먹는 음식이 정말 많다.


그래서 후각도 예민할 것만 같은데 사실 그건 내가 비염이 있어서 잘은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입으로 숨 쉬지 말고 코로 숨 쉬라고 해도 잘 안된다. 이건 유전적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사람들과 있으면 정말 기운이 금방 없어진다. 너무 접촉을 안 해도 문제지만 한 2, 30분 같이 있으면 이제 그만 대화하고 도망치고 싶어진다. 함께 있으면 정말 기운이 쏙 빠진다. 나는 혼자 있는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물론 주야장천 혼자만 있으면 외롭겠지만, 간간이 연결되고 따로 또 같이 다시 따로 있는 순간이 정말 좋다.


나는 상처를 잘 받는 것 같다. 사실 머리로는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이미 바사삭 무너져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래부터 그랬다기보다 여러 트라우마를 거치며 심각해진 것 같다. 나는 원래 무던한 성격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걱정되긴 하지만, 워낙 나쁜 상황에 많이 처해서 미리 대비한다는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난 그런데 이런저런 라벨 붙이기가 너무 싫다. 나는 이런 사람 같아, 너는 이런 사람 같아. 이런 말들이 싫다.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에 질식할 것 같다. 어떤 라벨이나 분류 없이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배려하면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다. 자기만 옳다는 아집에 빠져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배척하면 그게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진짜 똑똑한 사람은 전문가 자격증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도 아니고, 산전수전 다 겪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성불이 되는 것이다.


이번 글도 결국은 HSP에 대한 논의로 시작하였지만, 결론은, 서로 나 잘났다고 똑똑한 척하지 말고, 그저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세상의 불화가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