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우아함이란 무엇일까?

- ‘팡’하고 터지는 지적 통찰의 매력,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

by 루비
따라서 이 모든 걸 잊으면 안 된다. 우린 늙을 것이고, 그건 아름답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유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지금, 무엇이든 건설해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온 힘을 다해. 매일 자신을 초월하고, 하루하루를 불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양로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에베레스트 산에 한 발씩 오르면, 그 한 발 한 발이 조금은 영원한 것이 된다.
미래는 살아 있는 자들의 진정한 계획들로 현재를 건설하는 데 쓰이는 것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jpg 뮈리엘 바르베리 장편소설



지적인 교양서로 손색없는 책. 주인공 르네의 지적인 자부심에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한편 그 밑바닥에 깔린 가정사의 아픔이 안타깝다. 아파트 수위라는 낮은 지위로 인하여 자신의 출중한 교양도 숨겨야만 하는 일상이 블랙코미디를 연상시킨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신분제도가 공고한 것도 아님에도, 이 책의 배경이 된 프랑스 파리나, 마찬가지로 우리 대한민국이나 보이지 않는 신분제도는 존재한다.


나는 한번도 우리집이 가난하다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 부모님은 친구들이 다 부러워할 정도로 어린 내게 미미의 집이나 인어공주 인형, 레고 등 풍족하게 사주셨고 10살이 되던 생일날에는 내가 울고불고 떼쓰자 피아노도 사주셨다. 아직도 기억난다. 영창 피아노사에서 화물차에 피아노를 싣고 오는 모습을 맨발이라도 달려 나갈 기세로 따라붙었던 어린 마음이.. 고등학생 때는 어린왕자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문학을 향유하는 즐거움과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쁨을 누렸으며, 대학생 때는 피아노 동호회를 다니며 뉴에이지 음악부터 슈베르트 음악까지 선율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참 잔인하고 경우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단지 내가 도시 교외에 산다는 이유로, 부모님 직업이 뽀대나지 않는 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예의 없이 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 스스로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다. 오히려 그런 거에 개의치 않고 의식하지 않는 나를 허세쯤으로 몰고 갔고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 위에도 적었지만 한국사회는 겉으로만 위선 떨며 모든 사람의 수평적 평등을 외치지 정작 그 속살을 파고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 의식이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자살을 기도했던 부잣집 둘째딸 팔로마는 부자들의 허영과 위선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침묵 또는 조롱으로 그들과 격리시킨다. 이런 팔로마와 르네가 친자매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건 당연지사이다. 물질주의와 지적 교만에 사로잡힌 사람들 틈에서 이렇게 순수하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일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좋아하는 르네를 알아본 일본인 오즈씨는 르네에게 “당신하고 있으면 지루하지 않아요.”라고 고백한다. 마음이 연결된다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함께 있을 때 대화가 통하고 즐거운 것. 좋아하는 책, 음악, 그림 등을 공유하고 함께 여행 다닐 수 있는 사이, 그런 사람을 꿈꿔본다.


한편, 결말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뭔가 씁쓸한 기운이 나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한 번 읽었던 책은 웬만해선 다시 안 읽는 나에겐 꼭 다시 읽어봐야 할 가치 있는 책으로 남게 되었다. 두고두고 소장할 책, 고슴도치의 우아함. 지적인 충만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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