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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교사의 첫 합창 무대, 부끄럽지만 잊지 못할 이야기

아이들과 함께한 두 달간의 합창 연습기

by 루비

순전히 졸업 연주회가 하고 싶어서 교대 심화전공을 음악교육과로 택했던 나. 하지만 어쩌다 보니 전공 악기를 독주 악기인 피아노를 택하는 바람에 관현악단도 들어가지 못했고, 그렇다고 합창단을 하지도 않았었다. 합창단은 중학교 1학년 시절 활동했던 게 전부였던 스물다섯의 나는,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합창단을 운영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전전해에 음악, 미술 평가 연구학교에서 음악 수업으로만 공개수업을 세 번 했던 나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겨우 3년 차 시절에 합창단을 운영하라는 지시가 한없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단원들은 어떻게 모을지, 발표회까지 날짜가 그리 길지도 않은데 연습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곡은 어떤 곡으로 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부딪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촌 오지나 다름없던 그 학교에서는 정보도 쉽게 구할 수 없어서 친구가 있던 포항에 놀러 갈 때 영풍문고에 가서 합창 관련 악보집을 세 권이나 구해왔다. 피아노를 전공했던 나는 여러 곡을 연주해 보고 제일 마음에 드는 곡을 두 개 골랐는데, ‘Let’s make peace’와 ‘아에이오우’였다. ‘아에이오우’는 발표곡이라기보다는 연습곡으로 많이 사용한다는 데, 2개월 만에 발표를 해야 했기 때문에 연습곡이자 발표곡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Let’s make peace’는 아리랑을 편곡한 곡인데 우리나라 민요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평화와 조화를 주제로 담고 있는 노랫말도 마음에 들어서 골랐다.


단원은 4~6학년 중에 희망하는 학생을 모집하였다. 음악 전담 교사 없이 담임선생님이 음악 수업을 했던 우리 학교 상황 상 사전에 담임선생님들께 가창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 중에 지원자를 뽑아서 보내달라고 했기 때문에 따로 오디션은 가지지 않았다. 피아노 반주자도 한 명 뽑고 그렇게 매주 2시간씩 두 달간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오후 2시까지 반 정도까지 우리 반 수업을 마치고 강당에 가서 한 시간씩 합창 연습을 하는 시간이 고되면서도 즐거웠다. 학생들은 수업은 하지 않고 합창만 하고 싶다고 해서 좋아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매주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발표날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1학년 부장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발표날 입을 무대의상을 고르고 대여하였다. 부장 선생님은 경력자 선생님답게 무대에서 돋보일만한 색의 의상을 추천해 주셨다. 흰색과 파란색이 섞인 투피스는 그날의 공연과도 아주 잘 어울리는 의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연습 기간으로 화음도 엉망이고 출중한 실력을 뽐낸 것은 아니지만, 의상을 통해 화룡점정을 찍을 수 있었다.


지휘를 따로 배운 적이 없어 리드미컬하게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진 못했지만, 두 곡을 연달아 공연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니 힘찬 박수 소리와 함께 음악 담당 장학사님이 엄지척을 해주셨다. 아쉽게 상은 타지 못했지만, 두 달 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소중한 추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한 장도 없이 눈에 보이는 남은 거라곤 대회 날 영상 한 편이 전부이지만, 스물다섯 살의 초여름은 영원히 마음속에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https://youtu.be/Ri8SiZYAkdE?si=5KfMrM3XMILV3YX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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