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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Jan 22. 2024

출산율 감소는 인문학적인 사유의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

서산부인과 글쓰기 대회 당선작

다음 글은 서산부인과 출산율 감소 대책 글쓰기 대회에서 3등에 당선된 글입니다.


출산율 감소는 결국 인문학적인 사유의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다.




  

우리나라 출산율 감소가 심각하다고 한다. 실제로 나 또한 올해 만 36세로 아직 미혼이고 당연히 출산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보다 생생하게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왜 이렇게 미혼률이 높은지 출산율 감소가 심각한지 20대와 30대 초중반을 관통하며 그 이유를 절절히 숙고해 볼 수 있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대책으로 육아휴직이나 부양 휴직, 보육시설 확충, 난임 시술 지원, 여성 인력 활용 촉진이라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근본부터 뿌리 뽑을 수 있는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건 어쩌면 인생과 삶에 관한 인문학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먼저 출산율 감소 대책을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하자면, 첫째, 잘못된 결혼 문화 개선, 둘째, 기본 소득 보장, 셋째, 일과 여가의 균형, 넷째, 성교육 확대를 들 수 있다. 그럼 하나씩 풀어보겠다.

 

첫째, 잘못된 결혼 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출산율 감소 이전에 미혼율도 높은데 그 이유로 결혼식의 허례허식, 계산적인 결혼 문화, 높은 집값 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결혼할 때가 되면 신랑·신부는 호텔 결혼식인지 하객은 얼마나 오는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지 신혼집은 어디에 구하는지 보여주기식 문화에 급급한 경우가 많다. 결혼 준비과정에서 계속해서 조건을 높이다 보면 어느새 결혼 비용은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가 넘어가기도 한다. 우리나라 취업 나이를 보면 여성은 이십 대 중반, 남자는 이십 대 후반에서 많으면 삼십 대 초반이 대부분인데 결혼할 나이를 생각하면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이는 자연스럽게 양가 부모의 재력에 의존하게 되고 상대방의 집안과 비용 지원 여부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것은 배우자를 고를 때, 사랑보다 조건을 따지기 쉽게 만들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현실적인 조건이 불리하면 헤어지는 사람들을 많이 양산한다. 이렇게 조건에 기댄 만남은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일지 몰라도, 부부간의 애정에 순수함이나 진정성이 끼어들기 힘들어 설사 가정을 꾸린다 해도 화목할 확률이 떨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지 않거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결혼생활이란 연애처럼 1~2년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인생 마라톤을 함께하는 여정이다. 그 과정에서 항상 웃는 날만, 행복한 날만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배우자의 어떤 작은 결점이나 실수, 모자란 부분에 쉽게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결혼생활에서 생긴 어려움이나 시련을 함께 애정을 갖고 극복하기보다 쉽게 도망치고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높은 이혼율이나 불륜 등의 사회 현상을 봐도 알 수 있다. 그것이 배우자의 집안이나 능력, 배경만 보면 안 되는 이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에 레이챌 맥 아담스 주연의 <어바웃 타임>이란 영화가 있다. 시간 여행자에 관한 영화인데 이 영화 속 결혼식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아닌 붉은색 실크 원피스를 입고 소수의 가족만 모여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결혼식, 하필 비바람이 불어서 옷이 젖고 머리카락이 휘날리지만, 그마저도 추억으로 만들 수 있는 행복한 결혼식처럼 보였다. 물론, 우리나라도 스몰 웨딩을 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결혼식보다 비용과 발품이 더 든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무조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요지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소박하더라도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결혼이 부부간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려면 결혼식마저도 주변 눈치를 보는 경쟁적인 분위기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사회의 전반적인 철학과 숙고의 문제다. 축의금 회수를 위해 사랑하는 남녀의 결혼이 집안 대 집안의 보여주기 문화로 전락해서는 안 되겠다. 서로가 사랑해서 하는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둘을 닮은 아이가 너무나 갖고 싶어지지 않을까란 생각이다.

 

둘째, 기본 소득의 보장이다. 앞서 말한 주장에 대해 그럼 누군가는 현실적인 부분을 어떻게 배제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살려면 누구나가 꼭대기에 오르고자 경쟁을 할 것이고 당연히 누구나가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기 위해, 또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난으로 전락할 것이 뻔히 보이는 사람하고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것도 대한민국의 슬픈 사회 분위기 중의 하나인데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외면하고 짐 덩어리로 생각하게 만든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게 아니라 민폐 덩어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혐오와 비난이 난무한다. 그들이 가난하고 실패한 건 무능력하고 게을러서라고 낙인을 찍고 무시하고 배척한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인간 대 인간적인 만남인 순수한 사랑과 애정이 싹트기 힘들다.

 

마이클 샌델이 그의 저서에서 주장하듯 사회에서 성공한다는 것이 꼭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만 달려있지 않다.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 출신지가 강남 3구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기사만 봐도 우리나라에서 소위 최상위층이라는 대학에 입학하려면 출신지, 부모의 재력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암암리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류할 때 상대방이 어디 사는지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인지를 따져 묻고 대략적으로 그의 부유함과 사회적 지위 정도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전문적이거나 소위 사회적 인식이 좋은 직업을 갖고 있으면 당연히 으레 집안도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반대면 가차 없이 차별하고 따돌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헬조선이라는 말이 자조적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정말 날 때부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거나 부모의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평생 아등바등 입에 풀칠하기 위해 애쓰며 혐오와 비난을 감수하며 살아야 할까.

 

누군가는 출발점이 다른 것조차 개인이 타고난 능력이고 경쟁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회에 해만 끼친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행복한 복지국가로 알려진 북유럽의 스웨덴도 1900년대 초반만 해도 계층 간 불평등이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를 중심으로 개혁과 협상을 반복하면서 보수세력의 양보를 발판 삼아 지금의 복지제도를 갖추었다고 한다. 맹목적으로 경쟁의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는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본 소득의 보장은 어쩌면 앞으로 우리나라가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19세기 미국의 남북전쟁이 배경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인 <작은 아씨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는 자신들도 전쟁과 파산으로 어려운 처지인데 더 어려운 이웃집에 크리스마스 음식을 나눠주고 인정을 베푸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지켜본 또 다른 부유한 이웃은 다시 이 네 자매의 가족에게 근사한 음식을 대접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분위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봤다. 서로 돕고 돕는 연대의 도미노가 확산되는 따스한 분위기 말이다. 기본 소득 보장제도가 마련된다면 그 속도가 더 빨라질 것 같다. 그렇다면 배우자를 결정하는데 경제적인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적어지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부부가 많이 생기지 않을까. 그럼 자연스럽게 출산율도 올라갈 것이다. 자기 처지 비관으로 인한 강력 범죄가 줄어들면서 안전한 사회 환경은 덤이다.

 

셋째, 일과 여가의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최장 노동시간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육아를 할 시간을 보장받지 못해 아이를 여러 보육기관을 전전하며 키우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교육부에서는 내년도부터 전국적으로 늘봄학교 정책을 확대한다고도 한다. 늘봄학교란 원하는 초등학생 자녀를 저녁 늦게까지 돌봐주는 것으로 지금의 돌봄 교실을 확대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교사들은 그럼 교사들의 자녀는 누가 키우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악순환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직장인이 조직 문화에 부적응하고 정리해고 후 뉴질랜드로 가서 행복하게 산다는 기사를 보고 한때 이민을 꿈꾸기도 했었다. 그곳에서는 주당 30시간 일하면 풀타임이고 금요일에는 3시에 퇴근한다고 했다. 초과근무수당은 급여의 1.5배라고 한다.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열악한 한국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고 존중해준다고 한다. 모든 걸 버리고 떠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라 꿈으로만 그치고 잊어버렸지만, 한국에 부적응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게 어서 여러 가지 기업 문화라든지 직장 문화가 근로자를 단순히 조직의 부품으로써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존중해 주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가끔 우리나라는 일과 여가마저 획일화되어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두가 의사와 같은 전문직이 되기를 꿈꾸는 나라, 대부분 사람의 취미가 골프 아니면 와인에 부동산 투자에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나라. 자연도 생태계 다양성을 이루어야 생물의 적응력과 생존력이 올라간다고 하는데 하물며 인간사회는 어떤가. 모두가 근사해 보이는 또는 물질적 부가 보장되는 직업만을 추구하고 취미생활을 한다면 우리나라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오로지 직장에 헌신하는 것이 최고인 사회, 여가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공멸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일과 여가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또한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이나 배타적인 태도가 줄어들고 각자의 직업을 존중하고 직업 안정성 및 여가 시간의 보장 등 복지제도가 확충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도 타파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뿐만 아니라 가정 안에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의 매니저가 되어 모든 것을 관리해 주는 이른바 헬리콥터맘 같은 현상이 줄어들어야 한다. 부모의 여가생활도 중요하지만, 자녀의 여가생활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이며 악순환으로도 보이는데 자녀의 꿈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부모가 늘었으면 좋겠다. 의사가 고소득이 보장된다고 해서, 모두가 영어가 중요하다고 해서 한 가지 길로 자녀를 이끌면 변화하는 사회에 대처하기 어렵고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살리기도 힘들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일, 적성에 맞는 일은 누가 뭐래도 진로를 개척하고 꿈을 키워나갈 수 있다. 설사 여건이 열악하다고 해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에서 언급한 기본보장제도가 보장되면 더욱 안정적일 것이다. 모두가 전문직, 대기업, 공무원을 꿈꾸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공급이 넘쳐날수록 수요를 원하는 입장에서는 더 나은 여건을 개선할 의지가 줄어든다. 출산과 동시에 경력이 단절되거나 육아가 커리어에 걸림돌이 된다면 누가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려고 하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사회 전반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성교육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솔직하게 나는 학창 시절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간신히 기억나는 건 성교육이 남녀의 사랑과 임신, 순결 캔디 같은 서약 차원에서 일회적인 교육으로 머물렀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자신의 몸에 대한 사랑과 건강 관리, 철학적인 사유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사랑과 임신, 출산뿐만 아니라 성 정체성, 이성에 대한 존중, 가치관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유연애와 프리섹스, 성매매가 판을 치지만 이러한 점들이 더욱더 사랑과 결혼, 연애, 출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누군가는 고리타분한 유교 시절로 돌아가자는 거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열녀문을 만들고 청나라에 끌려갔던 여자들을 화냥년이라고 낙인찍고 정절을 요구하며 자결까지 요구한 비상식적인 조선시대의 유교문화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지금도 연애 시절엔 자유롭게 즐기다가 결혼이라는 문제가 걸리면 여성에게만 과도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이상하고도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다. 이 또한 윤리와 가치관의 부재에서 나오는 갈등이라 생각된다.

 

0세대 페미니스트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은 자유연애를 주장하다가 가족에게까지 버림받고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진보적인 사상과 시대를 앞서나간 진취성은 인정할 만하나 자유연애나 불륜은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기만이고 상처를 주는 행위이다. 더 나아가 자신까지 상처 입혔다. 그런데 직장인 SNS나 알음알음 들려오는 소문, 또는 인터넷 뉴스를 보면 그런 경우가 꽤 많이 목격된다. 이것들이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 많은 불안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말로 출산율을 높이고 서로 사랑하는 화목한 가정을 늘려 행복한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연애와 결혼의 기반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성적 매력이나 호기심에 의해 서로의 몸을 탐하고 한낱 유희거리로 즐기다 질리면 헤어지고 연애와 결혼을 따로 생각하는 야만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것은 상대를 학대하는 행위이고 인격을 말살하는 행위다. 서로 즐겼다고, 나도 이용했다고 허세를 부려봤자, 이미 자신의 영혼에 대한 파괴이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면 왜 여자들은 결혼 전 연애를 숨기려고 하는 걸까? 왜 남자들은 여자의 과거에 집착할까? 결혼 배우자는 평생의 인연에 대한 서약이며 소중한 사람과의 몸과 마음의 합일이다. 그러한 부분을 이미 연애 시절에 뺏긴다면 결혼생활이 불행해지고 출산율이 떨어지고 설사 출산하고 자녀를 양육한다고 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불행한 결혼생활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여자에게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다.

 

남자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아 2:3)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아 6:10)? 


위 성경 말씀처럼 결혼 배우자로서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소중히 여겨야 결혼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서로 사랑하며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출산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혼전순결을 유지하거나 성관계를 미룰수록 결혼 만족도가 높았다는 미국 코넬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므로 학창 시절부터 수박 겉핥기식 성교육이 아니라 자기 몸에 대한 소중함, 진정한 사랑, 이성에 대한 이해 등 건전한 가치관을 지닌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교육이 개선·확대되어야 한다.


이상으로 출산율 감소 대책 네 가지를 알아봤다. 잘못된 결혼 문화를 개선하고 기본소득제를 보장하고 일과 여가의 균형을 이루고 바람직한 성교육이 확대된다면 출산율 확대에 기여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주장해 본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내가 주변에서 목격한 것, 경험한 것, 조사한 자료들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나 한 사람의 의견에서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토론과 교류를 통해 의견을 상호보완해 나간다면 좋은 대책이 강구될 것이라 믿는다. 부디 우리나라 출산율이 상승하여 각 가정에 행복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사진출처: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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