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해서 스러져버린 사내

<인간실격>의 요조

by 루비



책 <인간실격> 표지

음침한 얼굴, 섬뜩한 분위기의 한 사내가 있다. 미남인듯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얼굴. 그런 주인공의 기이한 분위기를 따라 책을 쭉 읽어내려갔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따라가다보면 그 분위기가 곧 그의 내면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다소 심사가 뒤틀린 부분이 있었다. 이를 테면 이런 부분이다.



p.16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중략...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보였습니다.


p.19 늘 인간에 대한 공포에 떨고 전율하고 또 인간으로서의 제 언동에 전혀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고뇌는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상자에 담아두고 그 우울함과 긴장감을 숨기고 또 숨긴 채 그저 천진난만한 낙천가인 척 가장하면서, 저는 익살스럽고 약간은 별난 아이로 점차 완성되어 갔습니다.


p23. 거의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이다가 전지전능한 어떤 사람한테 간파당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죽기보다 더한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 '존경받는다'는 상태에 대한 제 정의였습니다.



그의 내면의 생각들이 이해가 될 듯 하다가도 너무 심오해서 그 자신의 생각 그대로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별난 면이 많아 보인다. 게다가 익살꾼으로 보이는 모습을 너무나 좋아하는 내면과 외피가 다른 그의 어린시절의 모습들. 하녀와 머슴한테 순결을 잃었을 때 자신의 대처에 대한 생각에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p.25 아버지한테 호소해도, 어머니한테 호소해도, 순경한테 호소해도, 정부에 호소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의 논리에 져버리는 게 고작 아닐까.


p.43 '청춘의 감격'이라든가 '젊은이의 긍지'라든가 하는 말은 듣기만 해도 닭살이 돋았고, '고교생의 기개'라느니 하는 것은 도저히 좇아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이렇게 염세적이고 비관적으로만 생각할까? 그런데 일견 수긍가는 부분도 있다. 아버지의 연설을 뒤에서는 욕하지만 앞에서는 칭찬하는 아버지의 친구들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어딘가 우리네 일상과도 닮아있다. 요조는 지독하게도 순수한 사내가 아니었을까? 인간의 불신, 신뢰를 이야기하며 대체 그 인간들틈에서 어떻게 사는게 현명한 처사이냐고 삶을 관통하는 내내 자신에게 묻고 있었던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불안의 고통속에서 그는 그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아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낸 듯 보인다. 익살꾼을 자처한 것이 그 한 방법이었고.


우리는 얼마만큼 인간의 기준치에 도달하고 있을까? 혹은 우리도 인간 실격은 아닐까? 세상의 잣대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 걸까? 인간으로 바로 선 그 기준이란 게 얼마나 정당한 걸까?


차라리 그 또한 인간이었다고, 선이든 악이든, 이상을 추구하든, 타락한 모습을 보였든, 그들에겐 그것이 세상을 향한 몸부림이었다고 이해하고 포용해주고 싶다. 끌어안아 주고 싶다. 작가 그 자신으로 대변되는 주인공이 죽음으로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 자신에게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허나, 우리는 안다. 이 책을 읽고 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런 허망한/가엾은 죽음을 막기 위해 세상을 좀 더 진실되고 아름다운 곳으로 바꿀 책임이 있다는 것을. 비록 삐뚤어지고 한없이 생각많은, 염세적인 사람도 삶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안정된 곳을 만들어나가야한다고. 매우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실격이라고 스스로 파괴적인 아우성을 내치는 주인공같은 가엾은 영혼들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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