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종영한 <닥터 슬럼프>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보았다. 전교 1,2등을 다투던 고교 동창생이 서른이 넘어 인생이 망해버린 후 재회하는 이야기다. 박신혜, 박형식 주연으로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전교과 전교 1등을 한 적도 없지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인생에 어느 날 까만 정지화면이 생긴 것은 비슷하게 느껴져서 공감이 갔다. 그래서 열심히 드라마를 챙겨봤다. 이 드라마의 슬로건은 '망한 인생 심폐소생기'였다. 그래서 내 브런치북 제목은 '내 인생 심폐소생기'로 지어봤다.
아홉수나 삼재라는 말처럼 나도 스물아홉에 온갖 악재란 악재는 다 겪었다. 직장에서는 불운을 겪어 휴직했고,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정신과에 찾아갔고, 가고자 했던 유럽여행도 취소했다. 결국 하루종일 집안에 처박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그리고는 매일 내 인생이 어쩌다 이리됐는지 자책하며 우울감에 빠져 크나큰 상실감을 겪었다.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인생의 처절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고진감래,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길고 긴 터널에서 박차고 나와 지금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예전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작가로서 새 인생을 시작했고, 하루하루가 참 재미나다는 걸 여실히 알차게 느끼고 있다. 공모전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하고 시인으로 등단하고 동화책을 출간하고 대학원을 수료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인생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 모든 여정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내 인생을 곤두박질로 처박게 한 것도 사람들이었지만 나를 다시 소생시킨 것도 사람들이었다. 세상엔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더 많다. 나는 여전히 트라우마로 신음하고 있지만 그래도 점차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알아가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그리고 내가 겪은 유익한 경험들, 선물 같은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오해를 많이 받아서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오해란 건 결국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오해하는 순간조차도 이해하고 싶어 진다. 정말로 내가 철저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땐 정말로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더 많이 애틋해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힘든 것 같고 나만 억울한 것 같고 지루한 일상의 연속인 것 같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덤덤히 받아들이는 순간,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재미나게 요리할 수 있을까 궁리하게 된다. 후회되던 과거에 작별을 고하고 앞으로의 인생은 신나는 일로 가득 채우고 싶어 진다. 설사 또다시 고통이나 좌절, 시련을 겪는다고 해도 당당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득 채운 기분이다.
나는 내가 겪었던 불운이 단지 불운이었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 당시 불운을 겪지 않았다면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 나보다 약하거나 소외된 자들에 대한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지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생이 불운을 주는 건,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갖게 해 주기 위한 신이 주신 선물일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 당장 고통 속에 허우적 대는 사람들에겐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분명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듯 불운은 또 다른 기회일 수도 있다. 나는 이제 내 모든 과거와 불행과 시련들을 재료 삼아 내 인생을 더욱 재미나게 살아가고 싶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바람이 불면 옷을 여미고 해가 쨍쨍하면 햇살을 내리쬐면 되는 것이다. 날씨에 따라 옷차림이 달라지듯, 인생의 날씨에 맞춰 그때그때 유연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