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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May 23. 2024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

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무리카미 하루키 소설

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고, 그리 예쁜 소녀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다. 하지만 그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는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길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놀랐잖아,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이야. 네가 믿지 않을지는 몰라도,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라 말이야”라고 소년은 소녀에게 말한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인걸.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상하고 있던 그대로야. 마치 꿈만 같아”라고 소녀는 소년에게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p.26   

  

서정적이면서 푸르른 녹음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청춘의 사랑 이야기 같은 이 소설은, 그러나 빛바랜 지난 추억의 사진처럼 아련하게 끝나고 만다. 마냥 행복할 수 있었던 그들에게는 ‘사소한 의심’이 피어올랐고 서로가 정말 운명인지 시험하려 들었고 결국엔 헤어졌고, 그 후 75퍼센트나 85퍼센트의 연애를 거쳤고 다시 만났을 땐 이제 그들도 더 이상 예전의 싱그러운 연인이 아니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픈 이야기였다. 매우 짧은 표제작이다. 


결국 지나친 욕심과 의심이 불러온 참사인 걸까? 현재가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하면 그것이 정말 내 것이 맞는지 불안과 의심이 고개를 들고,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망쳐버리는 어리석은 연인들...     


하지만 또 한 편 순도 100퍼센트의 연인이 만난다는 건 많은 불상사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한 곳이 아니고 온갖 시기와 질투, 음해, 루머, 거짓이 판을 치는 곳인데 어찌 순도 100퍼센트의 연인이 행복을 차지하는 걸 가만두고 보겠는가... 순도 100퍼센트를 유지하기 위해서 처음의 사랑이 퇴색되는 슬픔을 겪었지만 그들은 결국 또 다른 순도 100퍼센트의 인연을 만나리라 믿는다! 어느새 5월도 끝나간다. 4월의 맑은 아침뿐만 아니라 6월의 맑은 아침에도 그런 연인들은 행복을 지어갈 것만 같다.



그런데 순도 100퍼센트의 연인이란 건 어떤 걸까? 이 짧은 소설에서는 그리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저 서로 질리지도 않고 계속 대화를 나누고 함께하는 것이 꿈만 같은 상황이라고 말한다. 문득 지브리 애니 <귀를 기울이면>의 연인이 떠올랐다. 바이올린 장인과 소설가가 되고 싶은 서로의 꿈과 성장을 응원했던 두 소년, 소녀의 이야기. 순도 100퍼센트란 어떤 이기심이나 이해타산이 들어가지 않은 서로에 대한 무한한 응원과 지지, 애정을 보여줄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함께이므로 인해 더 나아지고 발전해 가고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상처럼 "안녕하세요. 당신은 나에게 100퍼센트의 여자(또는 남자)입니다."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런데 분명 그렇게 느껴지는 이상형은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사람, 설사 조금 부족한 모습, 단점이 보이더라도 다 포용해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샘솟는 사람. 그런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순도 100퍼센트의 연인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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