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여자가 되는 법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1590년대 초반에 쓰인 작품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개구쟁이라 말을 듣던 나는 어느새 얌전한 아이로 자랐는데 문득 이 희곡이 생각나서 읽고 싶어졌다. 학창 시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좋아했는데 이 작품도 나름 유쾌하고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가 젊은 나이일 때 쓰던 작품이고 또한 그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어서인지 다소 현대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더러 있었다. 가령 극 중 말괄량이로 나오는 카트리나의 폭력적인 언행이나 카트리나보다 더한 폭력적인 카트리나의 남편이 된 페트루치오의 길들이기 작전이나 가부장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주제의식 등이다. 게다가 페트루치오가 소문난 망나니인 카트리나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하는 건 오직 카트리나가 부유한 집안의 딸이어서 지참금이 두둑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길들여지며 순종적으로 변모하는 카트리나의 모습에 유쾌한 웃음이 나긴 하지만 현대 여성으로서 읽기에는 씁쓸한 면도 있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1999년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그런 면에서 현대 시대에 맞게 재각색된 훨씬 세련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 원작보다 이 영화의 스토리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극 중 원작의 카트리나 역으로 나오는 캣은 똑부러지고 여성주체적이고 연애에는 관심 없어 모두가 기피하는 여학생이다. 반면 원작처럼 그녀의 여동생은 인기만점이고 아버지는 언니가 먼저 연애를 하지 않으면 여동생의 연애를 허락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녀의 여동생 비앙카를 사랑하는 카메론은 패트릭을 매수해 그가 비앙카의 언니인 카트리나와 데이트를 하도록 만든 후 비앙카와의 데이트를 꿈꾼다.
그렇게 해서 캣과 패트릭이 데이트를 하게 되고 소문과는 다른 서로의 진면모를 알게 되고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다. 원작에서는 페트루치오와 카트리나가 정말로 사랑에 빠진 것인지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남편이 명령하면 아내는 순종해야 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패트릭이 캣을 위해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Can’t take my eyes off you 노래를 불러주고 사랑을 얻기 위해 낭만적으로 노력하는 장면들이 하이틴 로맨스 영화의 정점처럼 느껴졌다. 왈가닥이고 고집 세고 자기주장 강했던 캣도 패트릭과 데이트를 하면서 좀 더 여성스러워지고 마지막에 패트릭에 대한 사랑을 숨길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시를 읊는 장면에서는 보는 나까지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원작은 워낙 시대적, 문화적 차이가 크다 보니 다소 이해가 안 가는 장면도 있었지만 각색된 영화는 주인공 캣(원작의 카트리나)의 주체적인 면모와 사랑의 깊어지는 과정을 부각했단 점에서 좀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게다가 <다크 나이트>의 고(故) 히스레저와 <500일의 썸머>의 조셉 고든 레빗의 풋풋한 시절을 보게 되어서 무척 신선하고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원작과 영화를 함께 본 독자(시청자)로서 나는 원작의 카트리나의 순종하는 마음과 영화 속 캣의 당당하고 솔직하면서도 주체적인 모습을 잘 절충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의 카트리나는 실제로 괴팍한 여성이었지만 남편의 더한 기행으로 길들여지는 이야기라면, 영화 속 캣은 야무지고 당찬 여성이 남성중심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처럼 느껴졌다. 그런 캣을 발견하고 보석처럼 빛을 내도록 돕는 건 연인으로 발전한 패트릭이다. 결국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한 여자가 남자의 애정과 사랑으로 더욱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하는 이야기다. 원작과 영화를 함께 보기를 추천한다.
https://youtu.be/hU-cFzhWxIU?si=EFU9tf-ZKdKeOXD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