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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ie Aug 25. 2016

깨달음의 시작

2-1 But why me?

    홍콩을 경유해서 인도로 가는 길에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 홍콩 공항에 5시간 머물러야 했다. 다행히도 옛날에 마음공부와 명상을 처음 접했을 때 함께 했던 언니들이 이번 인도 여행에도 동행해서 그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우린 각자 목적의식과 수만 가지의 질문들을 안고 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의문들과 One World Academy의 가르침을 통해 얻으려는 모든 것은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결혼을 한 지 4년 차가 된 언니는 남편과의 관계가 중점이었고, 둘의 관계는 집안뿐 아니라 일터에서도 이루어져야 했기에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나 스스로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너지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고, 앞으로 2주간 이별을 고해야 할 생맥주 한잔을 마시며 인도에 가서 던질 질문들을 복습했다.

    우여곡절 끝에 첸나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1시를 향하고 있었다. 녹초가 된 상태로 겨우 짐을 찾아 일행을 위해 미리 준비된 버스 앞자리에 몸을 실었다. 앞자리에 앉아야 멀미를 덜 할 것 같아서였다. 완전한 오산이었다.

    아스팔트가 제대로 깔린 건지 안 깔린 건지 잘 모르겠고 불빛도 많지 않은 2차선 도로를 막 달렸다. 말 그래도 막. 막! 말이 2차선 도로지 내가 타고 있던 버스던, 버스 뒤에 있는 차던, 심지어 반대 방향에서 돌진해오는 차조차 "차선"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추월이 하고 싶을 땐 어느 때나 역방향 차선으로 갔다가 반대방향 차가 보일 때 즈음이야 아슬아슬한 기술로 본래 방향 차선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나는 플로리다주 올랜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장 무섭다는 롤러코스터를 가장 앞자리에서 탄 여잔데, 그때에도 느끼지 못한 식은땀과 생명의 위협을 한 번에 느끼고 있었다. 어떤 차던 보일 때마다 버스 운전기사는 클랙스를 울리는 바람에 30분 정도를 달렸을 때엔 귀조차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피곤해서 잠이 들 줄 알았는데 도저히 편히 잠들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1시간 후 캠퍼스 근방에 도착하니 비로소 평화로움이 살짝 느껴지긴 했지만 이미 충분히 인도를 경험한 후였다.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도착한 당일은 수업이 없어서 충분히 잘 수 있었고 9시에 아침을 먹기 위해 기상했다. 룸메이트 언니는 나보다 9살 많았는데 나처럼 밝은 편이라 지내기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그 후 2주 동안 최고의 룸메이트였다.

    9시 즈음 캠퍼스에 돌아다니는 골프카트를 타고 숙소부터 다이닝 홀까지 갔다. 다이닝 홀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있고 우리가 언제 뛰어들어도 우릴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기대했던 채식 레시피는 훌륭하지 않았다. Macrobiotic식단은 어떤 동물성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건데, 아침에 계란이 없으면 안 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좀 별로였다. 계란을 대신할 무언가도 없어서 더더욱.. 그나마 곡물빵에 오가닉 땅콩버터가 있어 배를 채웠다.

    그제야 내가 이곳에 2주 동안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제야 "왜 내가.. 내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그 관계들을 회복하기 위해 희생하며 이런 발걸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WHY ME?"라고 신에게 외치듯 바닷가 앞에 편히 뉜 부처상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속 썩이는 아들놈을 더 이해해주기 위해 이곳에 두 번이나 왔다간 엄마가 떠올랐다. 똑같이 잘못한 것 같은데 인도에 왔다는 이유로 내가 더 문제인 것처럼 되어버린 게 억울했다. 내 주변 사람들도 다 올바르게 살고 있는건 아닌데 내가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달라지기 위해 인도에 왔다는게 쪽팔리고 억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매 맞을 생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 매달릴 때 이런 기분이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이 죄 많은 인간들아. 니들 때문에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죽어야겠냐. 나는 뭔 죄냐. 아이고 억울해."

    희생이라는 생각 그리고 억울함이 밀어닥쳤고 과연 저 넓은 바다와 "나마스떼" 외치는 저 인도 선생님들이 "why me?"라는 질문에 얼마나 명쾌한 대답을 줄지 의문이 들었고 그렇게 첫째 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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