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갇힌 두 마리 짐승같이, 아이와의 케이지 매치cage match
그렇다면 저는 어쩌다 제주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잠깐 남편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남편은 2년에 걸친 승진 시험 공부를 직장 생활과 힘들게 병행했습니다. 아침 별이 빛날 무렵 나가 저녁 별이 떠오를 때 귀가하는 남편 앞에서 힘들다는 말을 삼켰습니다. 승진하면 남편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인 반면, 내조와 살림, 육아는 태가 안나는 터라 억울한 마음은 조금 있었지만 일단 남편의 승진이 급선무였습니다. 사실 어디 가도 자랑할만큼 성실하고 가정적인 내 남편이니까요.
그사이 아이가 18개월이 되고 저는 미술교육기관에서 사회 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살림과 재테크, 육아... 어린이집 등원과 출퇴근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이어졌고 어느새 자라난 손발톱을 깎아내기 급급할만큼 바쁜 하루 일과가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남편이 드디어 승진했습니다. 남편의 직장은 승진하면 몇년간 다른 지역에서 반드시 근무해야 했는데요, 하루를 마친 부부는 침대에 누워 어느 지역으로 갈 지를 고민했습니다. 경기도가 가까우려나? 경상도? 강원도? 우리 부부는 아무 연고가 없는 제주도로 가기로 큰 결심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저는 다른 지방에 갈 때 무심코 ‘출국한다’고 표현할만큼 수도에서의 삶에 익숙했습니다. 번화가에 위치한 대학을 다녔고요, 삼성역 트레이드타워에서 근무했지요. 30년이 넘게 살면서 서울 말고 다른 곳에서 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어항 속의 물고기가 딱 그 크기만큼 세상을 인식하는 것처럼요.
워킹맘 독박육아로 인해 적잖이 지쳐 있던 저는 굳은 사고를 깨트리고픈 마음 반, 푸른 자연환경으로부터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습니다. 다행히 남편과 저는 뜻이 맞았고, 우리 부부는 아무 연고가 없는 제주도에서 살아보자며 큰 결심을 했습니다. 이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2019년 3월 1일 오후 6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인생으로 날아갔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앙드레 말로의 말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 기간제 모집에 합격하여 미술관 학예연구과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품기 갖게 된 전공을 살리고 싶다는 꿈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서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저는 제주에 살면서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섬 생활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에 산다고 해서 육아가 고단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 승진해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육아는 계속됩니다. 더군다나 저희 아이는 4살, 5살이라는 폭풍 성장기를 맞아 나날이 질문이 늘어나며 머리가 똑똑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종류의 고단함이 추가되었다는 말입니다. 여기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에 대해 써두었던 짧은 글이 있어 가져왔습니다. 당시 저의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글이에요. 쓸 때는 힘들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네요. 역시 기록은 기억을 지배합니다.
언제나 사고는 찰나이다.
아이가 눈병에 걸려 어린이집을 못 보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교통사고 버금가는 큰 사고가 확실하다.
우리는 우리에 갇힌 두 마리 짐승같이 케이지 매치(cage match)를 벌이고 있다. 사랑하는 딸내미의 방해공작으로 인해 두 문장을 쓰는데 15분쯤 걸렸다. 누워서 글을 쓰는데 엄마 위에 올라타서 팔꿈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까르르 웃으면서.
아이는 한 시도 내 옆을 떠나지 않고, 하루종일 떼를 쓴다. 밖이 깜깜하고 몹시 추운데, 붕붕카를 타겠다고 하질 않나. 칼바람에도 목도리는 하기 싫으신데 이유는 본인은 핑크요정이고 요정은 목도리를 두르지 않기 때문이라나.
아아, 방금은 목욕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트모양 거품 만들어주겠다고 꼬셔봐도 소용이 없다. 기분을 풀어주지 않으면 화장실에 안들어가고 완강히 버티기 때문에 어떻게든 설득해 오늘의 마지막 미션을 끝내야 한다. 하트도 안 먹히는데 무슨 카드를 내민담?
지금 잠깐 핸드폰으로 글쓰는 사이에, 혼자 뒹굴다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콩 박았다.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다. 5살인데도. 이만하면 많이 키웠다고들 하는데도..!
아빠가 뽀로로 주스로 간신히 회유에 성공해 목욕탕에 들어갔다. 씻고 나와 1초만에 잠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육아퇴근 이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사람이 하루에 지니는 집중력과 의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탈곡기에 들어갔다 나온 듯 멘탈이 바스라진 나는, 새로운 태양이 뜨기 전까지 구겨진 종잇장처럼 몸을 옹송그리고 마지막 남은 주의력을 짜내 글을 쓴다. 이윽고 의식이 희미해지며 잠이 나를 재촉한다.
안녕 나, 수고했어 오늘도.
이 모든 힘듦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나란히 누워 엄마 얼굴을 말랑한 손으로 감싸고 사뭇 진지한 눈빛을 보내는 수지를 볼 때면 항상 떠오르는 속삭임이 있다.
‘너는 나의 종교’
이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 남들에 뒤지지 않지만, '엄마인생 걱정대회'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세계 1등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도,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더 들어도 경험을 쌓을 곳이 있을까?
벌써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철학 잡지 <뉴 필로소퍼>에서는 부모란 근본적으로 타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자유로운 개인의 상태와 대치된다고 합니다. 문학평론가 시릴 코널리는 '좋은 예술가가 되는데 복도에 있는 유모차보다 악랄한 적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퇴근 후 카페로 직행해 자기계발에 집중하는 미혼 여성들이 부러울 때면 함께 근무했던 미술교육기관 대표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수은쌤이 지닌 자원도 수은쌤의 능력이에요. 수은쌤이 시간이 없다면, 그것 또한 수은쌤의 실력이에요.' 현실을 직시해야 할 순간입니다.
가진 것이 모자라 큰 원을 그리며 멀리 돌아왔음을 인정합니다. 어차피 출발이 늦은 마라톤입니다. 왠지 모를 억울함을 버리고 평생 친구인 딸과 더불어 성장하는 법을 배우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서로의 삶에 느슨하게 연대하며, 함께 책을 읽고 미술을 마주하겠습니다. 30대 초중반이니 평균에 비해 조금 늦었으나, 느려도 성실한 거북이의 인생을 앞으로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미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