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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Jun 10. 2024

혐오가 일상이라니

- 시집살이 노래와 여성혐오(1)-

                                                                                                                                                                                                                                                                                                                                                                                                                                                                                             

시집살이 노래의 대표적인 유형 가운데 하나인 <중이 된 며느리> 유형은 남성 권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어떻게 여성의 위치가 제한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남성 가족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혐오의 메커니즘이 가족 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는 텍스트다. 가족 내에서 그를 통제하고 제한하며 억압 혹은 차별하는 양상은 며느리를 대하는 시집식구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나타난다.


(가)

불거치라 더운날에/이거치라 지슨밭을

한골매고 두골매도/다른 점슴 다나와도

이내점슴 안나오네/집이라고 돌아가니

시오마시 하신말삼/어지왔는 미늘아가

아리왔는 미늘아가/밭이라고 매러가서

밭이라고 매러가서/및골이나 매고왓노

불거치라 더운날에/미거치라 지슨밭을

한골매고 두골매도/다른점슴 다나와도

이내점슴 안나오네/점슴찾아 왔읍니다

시어마시 하신말삼/어라요년 물렀거라

그거라서 일이라고/점슴찾고 낮을찾나

시아바시 썩나서민/어지왔는 미늘아가

아리왔는 미늘아가/밭이라고 매러가서

및골이나 매고 왔노/불거치라 더운날에

미거치라 지슨밭을/한골매고 두골매도

다른점슴 다나와도/이내점슴 안나오게

점슴찾아 왔나니다/어라요년 물렀거라

그거라사 일이라고/점슴찾고 낮을찾나


(나)

시아버지호령이 대단하니/시아버지호령 끝에 세수하고

아침진지 드시옵소서/이렇게애원을 하였더니

에라요년 방자할년/곤한잠을 왜깨웠나

안방문을 열뜨리고/시근시근 시어머니

어서인나 세수하고/아침진지를 드십시오

에라요년 방자할년/곤한잠을 왜깨웠나

왯대밑에 개살구는/개살시누

어서인나 세수하고/아침진지 드십시오

에라요년 방자한년/곤한잠을 왜깨웠나


(가)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뜨거운 햇볕이 작열하는 여름, 반나절 이상 며느리는 밭을 매고 있지만 점심이 나오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점심을 먹으라고 권하지 않는다. 결국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며느리는 집을 들어선다. 그러나 시어머니 얼마나 밭을 매고 왔냐며 그 정도 일을 하고 점심을 찾느냐며 호통을 친다. 시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심 다 나와도 내 점심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며느리에서 그것도 일이라고 했냐며 호통을 칠 뿐이다.


(나)를 살펴보면 평소 시아버지를 두려워하던 며느리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세수하고 아침진지 드시라 애원을 하지만 “에라 요년 방자할년 곤한 잠을 왜 깨웠냐”며 크게 꾸짖고 호통한다. 시아버지의 호통에 이어 시어머니, 시누이 역시 동일하게 아침을 권하는 며느리를 나무라고 조롱한다.


(가)와 (나)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시집식구는 상전이고 며느리는 그 반대편이 위치한다. 며느리가 배고픔을 호소하거나 애원하는 처지는 시집식구들에게는 관심 밖에 있다. 오로지 얼마나 일을 하고 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아침잠을 깨우는 미운 대상일 뿐이다. 이러한 시집식구들의 태도는 함께 밥을 먹거나 대면하기 불쾌한 상대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유추하게 한다. 같은 유형의 다른 각편 가운데는 그 집 머슴까지도 며느리를 무시한다.


노랫말의 진행을 통해 며느리의 처지를 짐작할 수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반나절 동안 밭을 매고 들어온 며느리에게 점심을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어라 요년 물렀거라”라고 말하는 시집식구의 말과 행동은 비정하다. 아니 비인간적이다. 노랫말은 이러한 비상식적인 차별과 폭력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가족 내의 불쾌, 불편, 싫음의 대상으로 차별되고 구별되고 있는 며느리의 모습을 전한다. 일상적으로 며느리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현장이다. 함께 밥을 먹을 수 없고 그가 차린 밥상도 받을 수 없다는 식이다.


노래 채록 현장에서 창자들은 노래는 참말이라는 말을 한다. 노래 현장의 창자 인식이 그러하다면 노래 속 정황으로 현실의 며느리 위치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노래대로라면 며느리는 가족 내에서 온갖 불만을 쏟아낼 수 있는 혐오의 대상이다.




참고자료


이정아,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에 나타난 여성혐오와 그 의미, 우리문학 60, 우리문학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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