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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Jun 27. 2024

혐오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에 나타난 혐오에 관하여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을 통해서 살펴본 혐오의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중이 된 며느리> 등과 같은 노랫말에서 나타난 생활화되고 구조화된 여성혐오다. 일상적으로 자행한 며느리에 대한 시집식구들의 혐오가 그것을 반증한다. 두 번째는 여성 스스로 혐오를 내면화한 흔적이다. <형님형님 사촌형님>에서 보이는 자기 비하의 표현이 그러하다. 세 번째, <진주낭군>, <첩의집에>에서 발견되는 여성의 여성혐오 즉, 예외적 여성으로 인정받고자 하면서 다른 여성을 타자화하는 경우다.


시집살이 노래에 나타나는 여성혐오는 사회 구조적으로 나타났고 그 구조 안에서 소극적 혹은 적극적으로 공모하거나 재생산하는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노랫말을 통해 나타나는 혐오는 부계 혈통 중심 사회의 내부 결속을 공고하게 한다. 남성 중심 가족주의를 견고하게 구축하는데 일조한다.



시아버님 죽었다고/춤을쳤더니 사랑방에

돗자리가 떨어지니/시아버님 생각나네

시어머님 죽었다고/활개를 쳤더니

보리밥에 물붜놓니/생각나네

시동생 죽었다고/좋아했더니

서방님을/바라보니 가련도하다



시어머니 죽었다구 좋다구 했더니/보리방아 물불응개 또 생각난다

시아버지 죽었다구 좋다했더니/왕골자리 다떨어징개 또 생각나네

시누님 죽었다구 좋다구 했더니/너물바구리 쳐다보니 또 생각나네

시동생 죽었다구 좋다했더니 /나무청을 쳐다보니 또 생각나네

서방님 죽었다구 좋다구했더니/아리묵 쳐다보니 또 생각난다



  ‘시집식구가가 죽었다고 좋아했더니 ~ 하니 생각난다’라는 관용구가 반복되면서 그들을 그리워하는 며느리의 심정이 나타나고 있다. 자신을 괴롭히던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시동생, 남편이 모두 사라지고 그들이 생각난다는 화자의 태도는 이미 어린 시절 며느리는 아니다. 죽은 이를 애도하며 떠올리는 생각과 감정의 변화를 전하는 여성은 이제 시집식구다. 갈등 관계가 아니라 이제 같은 편이 된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되어 자신이 겪었던 그 시집살이를 다시 대물림한다. 신체화한 여성혐오를 이양하게 된다. 그것이 가족윤리이자 당연한 통과의례인양 말이다.


  여성혐오를 대물림하게 되는 양상은 이미 <형님형님 사촌형님>과 같은 노래에서 살펴보았다. 시집살이를 겪어낸 시간 동안 흉측하게 혹은 기괴하게 변화하게 된 자기 신체에 대한 비하 하지만 그만큼 고생해야 겪어낼 수 있는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 다녀온 자들이 군대 모험담을 이야기하듯 시집살이를 겪은 자들은 시집살이의 혹독함을 이야기하면서 경험자로서의 무용담을 말하고 있다. 시집살이를 내면화하고 정당화한 결과다.


  “벙어리라 삼년되고/봉사되고 삼년되어/석삼년을 살고나니/머리털이 다시었단다”는 현실세계에서는 감정적 진실을 공유하면서 전승되지만 벙어리, 봉사로 대변되는 혐오 표현 즉 비정상이라 치부된 병자의 형색을 통해 언표화되는 자기혐오는 고된 과정을 통과한 주인공으로서의 자긍도 전한다. 노랫말의 말미에 자전적인 서사가 덧붙여지는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자기 비하와 탄식에 맞물리는 인고의 자긍이 자리한다.  <형님형님 사촌형님> 노랫말에 나타나는 자기혐오의 특징이다. 겪어낸 모진 시집살이를 자기혐오적 표현을 통해 전달하지만 그것은 부당함과 불합리함을 전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남성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자리를 획득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선언한다.


  여성혐오의 공모의 흔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노랫말 <진주낭군>과 <첩의집에>은 자신의 위상을 첩/기생과 구별함으로써 예외적인 여성이 되겠다는 욕망을 드러낸다. 기생과 첩은 남성의 쾌락만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들의 쾌락 현장을 목격한 처는 여성은 목을 매거나 양잿물을 마신다. 사회적으로 부여한 정숙한 여성의 삶보다는 함께 애정을 나누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죽은 자의 메시지를 노래를 부르는 자, 전하는 자는 다르게 반응하고 해석한다.


  억울한 죽음은 안타까움과 동정을 자아내지만 첩의 정은 잠시 한순간이고 처의 정은 영원하다는 남편의 탄식이 덧붙여지면서 비록 죽었으나 처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위로를 건넨다. 죽은 자의 욕망과는 상관없는 남은 자들의 욕망이다. 이것이 여성혐오의 공모다. 첩과 겨루는 처보다는 처/큰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면서 여성혐오가 정당화된다.


  <첩의집에>에 등장하는 여성은 남편을 두고 경쟁관계에 있는 첩만을 혐오하는 것으로 여성혐오를 정당화한다. 첩을 대하는 처의 시선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언표화하면서 동시에 큰어머니를 극진히 대접하는 첩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렇게 한다. 노랫말 속 욕망은 대체 누구를 위한 시선이자 욕망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집살이 노래는 차별과 배제, 억압의 현장을 실감 나게 재현함으로 그 부당함에 저항하게 만드는 노래지만 동시에 여성의 여성혐오를 적극적으로 공모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여성의 자기혐오, 첩과 기생을 처와 구별되는 ‘예외적 여성 되기’가 그러하다.


  시집살이 노래를 통해 나타나는 여성혐오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지배담론이 내면화되는 동시에 그 지배담론이 자기 욕망이 되고 이것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가족, 내 가족과 다른 가족, 가족 대 사회로 확장되면서 다면화나간다.


  시집살이 노래는 전통사회의 문예물로 태어나 여성공동체에서 향유되고 전승되었다. 노랫말에는 다변화된 여성의식과 욕망이 담겨 있다.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에 나타나는 여성혐오를 살펴보는 일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객관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시집살이를 살아낸 여성은 뿌리 깊게 여성혐오를 내면화하고 있다. 말 그대로 감염된 욕망을 재생산하고 강화해 나갈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전략적인 생존의 길을 선택한 결과다. 모진 시집살이를 경험한 여성이 모진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말은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을 통해 포착되는 여성혐오의 실상과 그 흔적을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서 자존을 원했던 여성적 삶의 한계와 만나게 된다. 저항하고 고발하고자 했지만 생존하기 위해 순응하고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한계 말이다.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에는 혐오에 저항하는 목소리만큼이나 여성혐오를 내면화하고 공모 혹은 재생산한 흔적이 나타난다. 혐오는 그것을 표현하기 이전 혐오감 혹은 혐오화의 전략이다. 시집살이 노래 노랫말에는 가부장 사회에서 보편화되었던 여성혐오에 대한 여성의 대응방식이 나타난다. 혐오를 거부하지만 생존을 위해 혐오를 내면화하고 더 나아가 재생산하는 양상이 바로 그러하다. 인정받기 위해 순응하고 내면화했고 더 나아가 ‘예외적 여성’이 되기 위해 여성혐오를 공모할 수밖에 없었다.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은 지배담론이 공고하게 만든 여성혐오와 이에 대응하는 여성의 다양한 생존전략이 나타난다. 생존하기 위해 저항했고 살아남기 위해 내면화했다고 노랫말은 증언한다. 시집가는 순간부터 불안정하게 흔들렸던 여성의 존재론적 한계를 전하고 있다. 불안과 공포로 동요했던 그들의 목소리에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공고하게 구조화된 여성혐오의 세계 안에서도 자유롭기를 꿈꾸고 저항했던 시집살이 노래는 그래서 각별하다. 그들이 노래한 언어 속에 여성혐오가 각인되어 있지만 그러함에도 그 중층적 관계와 한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몸짓은 강렬했다.


  지금 여기의 현재적 인권 감수성으로 전통사회 언표적 의미를 재해석하는 일은 텍스트가 함의한 바를 왜곡하는 일일 수 있다. 전통사회의 여성혐오 양상을 통해 현재 우리 의식 속에 남아 있는 여성혐오와도 만나게 된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원적 구도가 아닌 누구나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삶의 지향은 시집살이 노래를 통해서 잘 나타나고 있었다. 이것이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에 나타나는 여성혐오를 우리가 사는 세상과 견주어 바라보아야 할 이유이다.





이 글은 필자기 2018년 우리문학 60집에 게재한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에 나타난 여성혐오와 그 의미>를 브런치에 게시하기 위해 재편집 및 수정하여 게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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