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기만을 멈추기 위해 마신 우울 한모금

1. 사색과 새벽의 관계

by 근근

새벽이 되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무거워진다. 설명할 만한 이유는 없다. 창밖은 조용하고, 방 안의 공기도 낮보다 약간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낮 동안에는 해야 할 일들이 생각을 대신해주지만, 새벽에는 그렇지 않다. 눌려 있던 생각들이 제각각의 속도로 떠오른다. 마치 오래 잠겨 있던 물건들이 물 위로 올라왔다가 다시 가라앉는 것처럼.


나와 당신은 오늘 하루도 몇 가지를 지키며 살았다.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애썼고, 특별히 미워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굳이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무도 보지 않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조심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마모되었다. 큰 상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하루였다.


이렇게까지 지켜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당신은 왜 계속 대답을 하고 있나. 방은 조용한데 머릿속은 그렇지가 않다. 이미 끝난 말들과 끝내 하지 않은 말들, 괜찮다고 넘겨버린 순간들이 비슷한 무게로 쌓인다. 어느 하나만 골라 덜어낼 수는 없어 보인다.


이미 가라앉아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정확히 말하면 떠오른다기보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천천히 내려간다. 당신은 강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 아니다. 무너지기 싫어서 계속 같은 자세를 유지해온 사람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이유 없이 피곤해진다. 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멈춘다고 감정이 정리되거나 생각이 정돈되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나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새벽의 우울은 당신을 끌어당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당신이 아직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지, 생각보다 깊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시키기 위해 잠깐 들렀다 가는 방문객에 가깝다. 모든 것이 의미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이 감정만큼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무게와 공허함,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은 전부 당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괜찮아질 필요는 없다. 나아져야 한다는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그냥 우울 속에 잠시 머물며 스스로를 바라보고,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감정을 조심스럽게 확인해본다.


새벽은 특별한 결론을 주지 않는다. 살 이유를 설명해주지도 않고, 반대로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부추기지도 않는다. 다만 이 감각을 끝까지 외면한 채 살아도 되는지를 여전히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