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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설 Jul 17. 2020

<팡파레>, 이런 장르영화.

이 자극적인 난장에 이토록 자극적이기만 한 결말이라니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아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돈구 감독의 전작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극단적인 상황과 강렬한 감정을 다룬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지만 항상 우선순위에서는 밀렸거든요. 그래서 <팡파레>만큼은,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 때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도중 들었던 생각은 '이런 류의 영화가 한국에서, 그것도 독립씬에서 나왔네'였습니다. 결국 이 영화에 대한 리뷰는 오락영화로서의 <팡파레>의 만듦새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팡파레>는 시종일관 자극적인 재미를 주겠다는 목표 하나에 전념하는 영화니까요.


장르명을 붙이기도 애매합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인물들이 잡혀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쏘우> 같은 '밀실 스릴러'로 분류하긴 힘들 것 같고. 그럼에도 이런 류의 장르는 외국영화에서 흔히 보아왔습니다. 한 장소에 우연찮게 모여든 인물들이 겪는 난장이라는 측면에서, 멀게는 <아이덴티티>, 비교적 최근에는 <그린 룸>이나 <헤이트풀8>가 떠오릅니다. 장소 세팅만 놓고 보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팡파레>를 추리 장르로 분류하긴 어렵겠죠. 어쨌든 <팡파레>는 기존에 많이 봐왔으나 한국영화에서 접하기는 힘들었던 장르의 오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지만 아주 독창적이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한국적인 느낌을 크게 살린 작품도 아닙니다. 이러한 한계는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겁니다.


<팡파레>에서 우수한 지점은 (결말과 관련된 부분들을 제외한) 각본입니다. 영화에서 각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넓게는 플롯과 구조, 좁게는 캐릭터와 대사를 따져볼 수 있을 텐데, 이 영화의 각본은 단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본기가 갖춰져 있습니다. 예컨대 이 영화는 한정된 장소에서 다섯 명의 인물들끼리 난장을 벌인다는 기본 설정에 어쨌거나 충실합니다. 설정만 가지고 출발해놓고는 그 설정에 걸맞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후반부에 들어서는 그 설정조차 내던져버리는 <#살아있다>와는 차이가 크죠. 장소는 '음레코즈'에 고정되어 있고, 드라마와 서스펜스, 그리고 유머가 캐릭터로부터 비롯됩니다.


캐릭터들도 개성이 잘 구분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가장 문제가 되는 인물은 J인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더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유머의 비중이 의외로 많습니다. 굳이 재자면 좋은 유머와 ('평범한'이 아니라) 나쁜 유머의 비율이 5:2 정도 되는데, 이만큼 성공적인 유머의 비율이 높은 영화를 만나기가 쉽지는 않다고 생각해요(영화관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들 꽤 자주 웃으시더라구요). "비달사순 같이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라는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싶은 유머에서 출발한 것 치고 중후반부의 유머들은 괜찮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백선생 캐릭터와 그의 대사들은 훌륭합니다. 영화 <팡파레>의 성취에는 백선생이라는 캐릭터와, 이 캐릭터를 연기한 박세준 배우가 포함될 거예요.


물론 기계적으로 서스펜스를 자아내기 위해서(까놓고 말하자면, 시나리오 분량과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서) 들어간 '경찰관 장면'처럼 플롯에 해를 끼치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 장면은 사실상 없었어야 됩니다. 이 장면에서 경찰들은 하는 일이 없고(남경이 화장실에서 피를 발견하는 장면은 그에 해당하는 결과가 없습니다), 경찰들의 압박-희태의 횡설수설로 구성된 초반부는 그 허술한 대화의 느낌 때문에 서스펜스를 제대로 자아내지 못합니다. J가 등장함으로써 희태와 소위 '연극'을 하는 부분은 유머로서도 제기능을 못하고 문제해결 면에서 봐도 터무니없습니다. 또 모든 사태가 수습될 즈음에 J가 하는 "와앙!"은 얼마나 뜨악한가요. 결국 이 장면의 기능은 돌발적인 서스펜스의 삽입과 J 캐릭터에 대한 힌트 제공, 이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텐데, 전자와 후자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역시, J에 대해서는 뒤에서 이야기해보지요.


촬영과 편집이 도드라지는 영화는 아닙니다만 이 부분의 연출도 안정적이었다고 봅니다. 특히 조명의 활용이 인상적이고,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를 잘 살린 프레임 구성이 돋보이는 쇼트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인물의 단독샷에서 인물을 잡고 남는 공간을 크게 둠으로써 그를 시각적으로 고립시킨다든지, 바닥을 화면 하단 절반 가까이 잡아서 헤드룸을 줄이고 이를 통해 인물들을 포위하는 느낌을 준다든지 하는 촬영은 이 영화의 컨셉과 잘 맞습니다.


조금 의아한 장면도 있습니다. 초반부에 J와 희태가, 그리고 쎈과 강태가 대화하는 두 장면은 모두 설정쇼트 없이 인물들의 (미디엄) 클로즈업으로만 연결됩니다. 그 결과 관객 입장에서는 인물의 위치와 시선 방향에 혼란이 생기죠. J-희태 씬에서는 두 사람이 앉은 위치가 처음에 완전히 오도되고, 쎈-강태 씬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시선이 맞지 않습니다(모든 인물들의 프레임 내 위치도 불안정합니다). 이런 촬영과 편집의 의도는 명확해 보입니다. 각자 오월동주 하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대치 중인 두 인물을 한 프레임에 담아내지 않고 시선조차 제대로 매치되지 않도록 했겠죠. 이 장면들 이전에 나왔던, 희태가 자수하겠다고 하자 형인 강태가 욕을 섞어가며 그를 압박하는 쇼트는, 그 위협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두 인물을 한 프레임에 포착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 두 장면의 의도는 더욱 뚜렷해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두 장면의 혼란스러움이 탁월한 연출의 결과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습니다.


오히려 <팡파레>의 단점은 음악과 연기입니다. 이 영화에는 음악이 꽤 자주, 미묘하게 깔립니다. 그리고 이 음악들은 살짝 코믹하거나, 긴장감 넘치는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하죠. 저는 이 '정확함'이 장면들을 평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음악이 정확한 타이밍에 전달해야 하는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함으로써, 그 장면의 느낌을 (연출자가 관객에게 주고자 의도한) 한 가지로 좁혔다는 거죠. 이 말을 뒤집으면 이 영화에서 몇몇 장면들은 음악이 깔리지 않아도 충분히 분위기를 살릴 만큼 잘 연출되었다는 뜻도 됩니다. 음악이 귀에 거슬린다거나 삽입이 미숙했다는 것이 아니라 과용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네요.


<팡파레>에서 개별적인 연기들은 좋습니다. 애초에 영화의 스토리가 그렇고 영화가 캐릭터에게 요구하는 바가 그렇기 때문에 연기가 양식화될 수밖에 없는데 이 영화의 배우들은 그렇게 요구된 스타일의 연기를 잘 해냅니다. 하지만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영화를 끌어가는 동력의 거의 전부일 때, 앙상블 연기가 종종 삐걱거리는 건 큰 결함입니다. 아마도 이건, 각자 양식화된 연기를 준비한 상황에서 연기 디렉션이 그 배우들의 에너지와 개성 차를 장면에 맞게 평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예를 들어 백선생이 처음 등장해서 쎈과 대화하는 모습을 측면에서 잡은 긴 쇼트는 캐릭터들 간 힘의 변화 양상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긴장감과 유머를 동반해 잘 잡아냅니다(이 영화에서 손에 꼽히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박세준 배우와 이승원 배우 각자의 연기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두 배우의 합은 잘 맞지 않아서 배우들이 따로 놀고 있다는 인상을 주죠. <팡파레>에는 이런 미끄러지는 연기가 관객을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특히 초반부 강태와 희태 사이에서) 많습니다.


그리고 박종환 배우는 미스캐스팅입니다. 박종환 배우가 연기를 얼마나 잘 또는 성실하게 했건 간에(강태의 시체 앞에서 나지막이 독백하다가 폭발하는 장면의 연기는, 그 장면의 불필요함과 별개로 뛰어납니다), 희태 역에 박종환 배우는 그리 잘 맞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박종환 배우 특유의 나긋나긋한 느낌과 희태의 유약한 면이 연결된다고 이돈구 감독이 보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박종환 배우는 액션이 커지고 초조함을 더 표현했을 뿐 다른 작품들과 크게 차이가 나는 연기를 선보이지는 않았는데, 희태라는 루저에게는 조금 다른 결이 덧붙여졌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입니다. <밤치기>에서 처음 이름을 알게 되고 작년에 <얼굴들>과 <생일>을 연이어 보면서 참 좋다고 느꼈던 배우인데, 올해는 <초미의 관심사>에 이어 <팡파레>까지 안타까움이 조금 생기네요(<초미의 관심사>에서 박종환 배우의 연기는 뭐 문제가 아니었습니다만, 그 캐릭터 때문에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민망해졌던 걸 생각하면 좋은 기억은 아니군요). 박종환 배우는 남연우 감독/배우와 붙으면 안 되나 봅니다. 허허.


이제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 이야기해볼 차례입니다. 음레코즈 사장과 강태만 일찍이 퇴장하고, 네 인물은 후반부까지 남아서 아등바등하다가 결국 J에 의해 '끔살 엔딩'을 맞습니다. 이 부분이 개연성이 없는가, 저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르영화로서 판단오류였다고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비단 모두가 죽는 결말이 허무해서가 아닙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짜릿함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러나 이 결말은, 이 영화가 앞선 80여 분 동안 몰두해왔던 토대를 손쉽게 허물어뜨린다는 점에서 문제가 큽니다.


이돈구 감독이 결말을 이렇게 구성한 건 아마도 캐릭터에 관련된 일종의 반전을 선사함으로써 의아함을 주고(혹은 영화 내내 쌓여오던 의아함을 해소하고), 이어지는 총격 장면들로 통쾌함과 짜릿함을 제공하기 위해서였겠죠. 그런데 이 영화가 이야기를 전개해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여기서 살인사건이 벌어진 이상 그냥 빠져나갈 수는 없다'는 제약에 있었습니다.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애초에 시작을 안 했겠죠. 희태와 강태가 음레코즈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게 되니까요. 누가 언제 누구를 죽일지 모르는 상황으로 점차 상황이 악화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죽인 사람이 손쉽게 퇴장권을 얻지는 못합니다. 만약 또 다른 살인이 생긴다면 이는 오히려 더 큰 제약이 부과됨을 의미하죠. 관객들은 캐릭터들이 다 죽을지, 아니면 다 살아서 나올지, 일부만 빠져나온다면 그 일부는 누구일지 시종 궁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핵심적으로는, 빠져나온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를 궁금해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 살아서 나가되 그 인물이 어떻게 체포되지 않고 이 난장에서 벗어날지 그 기발한 (이 영화만의) 아이디어를 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모두가 몰살당하는 파국을 볼 마음의 준비도 얼마든지 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게 J가 살인청부업자였기 때문에 애초에 법따위 중요하지 않다, 가 돼버리면 곤란합니다. 이야기 내적으로 개연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영화의 재미를 지탱하고 있던 기반을 초월해버리는 꼴이니까요. <팡파레>의 결말이 허무하다면 그것은 모든 인물들이 죽어서도, 갑자기 J가 폭주를 해서도 아니고 이 결말로 인해 러닝타임 내내 지속돼왔던 영화의 종결방식에 대한 호기심이 통째로 무용해졌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부조리한 난장이었기 때문에 이런 부조리한 결말이 반드시 이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앞선 부조리함의 연장선 혹은 클라이맥스 아니냐, 라고 누군가 반박할지도 모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건, <팡파레>는 그런 식으로 '인생의 부조리함' 같은 걸 저변에 깔아둔 영화가 아니라는 겁니다(예술 장르로서의 '부조리극'과 작품 형태로서의 부조리한 극은 다릅니다). 저는 <팡파레>가 의미부여나 해석을 요구하는 텍스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J 캐릭터의 활용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인물을 규정 짓는 가장 커다란 특징을 숨겨놓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려 하니, 이 캐릭터를 계속 놀려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배우의 연기도 평평해지는데, 요구된 역할을 잘 해내긴 했어도 J가 임화영 배우의 가장 탁월한 연기를 담은 캐릭터가 되진 못할 겁니다(인상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죠). 앞서 언급한 '경찰관 장면'을 포함해, J를 그냥 놀려만 둘 수 없으므로 삽입한 장면들, 예를 들어 살려달라고 울던 게 알고 보니 우는 척이었다, 등은 오히려 결말을 제외하면 이 인물이 이 극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확인시킬 뿐입니다. <팡파레>는 J를 주인공으로 삼(고 싶어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음레코즈 바깥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은 J가 단독으로 등장하는 오프닝과 엔딩 외에 없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J에서 시작해서 J로 끝납니다. 그러나 J가 극에 반드시 필요했는가, 질문하게 된다는 것은, 이 영화가 어떤 면에서는 크게 실패하고 말았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팡파레>에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팡파레>는 그 요란하고 자극적인 재미를 목표로 삼은 영화이고, 또 저는 그런 자극적인 걸 좋아해서요. 이미 스포일러투성이인 글을 써놓고 '시체훼손 장면이 꽤나 적나라하게 나오니 잔인한 걸 못 보시는 분들은 피하세요' 같은 말을 하는 건 넌센스겠죠. 이제 이돈구 감독의 전작들을 조금 더 우선적으로 챙겨볼 수 있겠습니다. 구미가 당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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