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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Che Apr 08. 2022

다크나이트: 형식미

영화는 거울이다(12-3편): 촬영/ 편집/ 특수효과/연기 

2)형식미

  최종 시나리오는 사실상 영화 연출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아무리 시나리오가 완성도 있다하더라도 실제 촬영과 후반작업에서 형식미를 결정하는 테크닉의 연출이 따라주지 못하면 그 작품의 완성도는 보장할 수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미학적인 기준은 철저히 사실주의에 입각한 영상 구현에 있었기에 촬영, 장르(범죄 액션 스릴러) 연출, 편집, 사운드, 연기연출 등 모든 형식미를 갖춰가는 과정에서 과장을 최대한 배제하고 리얼하면서도 나름의 스타일과 개성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데 집중하였다.

① 촬영

물론, <다크 나이트>는 블록버스터영화가 가져야 할 가장 큰 미덕인 스펙터클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데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다.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충격의 첫째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아이맥스(IMAX) 카메라로 촬영한 놀라운 이미지다. 아이맥스는 35mm 필름으로 찍은 화면에 비해 훨씬 뛰어난 해상도와 선명도, 채도를 가지고 있지만, 35mm 카메라에 비해 훨씬 크고 무겁고 불편한 탓에 주로 정적인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사용돼왔다. <다크 나이트>에선 최경량 아이맥스 카메라인 MSM을 사용하였는데, 조커가 은행을 터는 첫 시퀀스를 비롯해 홍콩에서 펼쳐지는 액션 신, 배트맨과 조커의 추격신, 최후의 대결 등 6개 장면 등에서 30분 분량 정도 사용되었다. <메멘토> 이후 놀란과 콤비로 작업을 계속한 촬영감독 월리 파이스터(Wally Pfister)는 감독의 의도에 맞게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 팀 버튼이 <배트맨>에서 고담시를 거의 인위적인 세트로 SF적인 느낌을 구현하고자 했다면, 놀란은 세트를 최소화하고 실제 시카고 도시나 홍콩의 빌딩가를 찾아가 현장감을 살리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다크 나이트>는 로케이션 촬영이 많았고, 결과적으로 영화의 리얼리티가 훨씬 잘 살게 되었다. 

그렇다고 사실감을 강화하기 위해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처럼 핸드 헬드 같은 카메라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다소 철학적인 주제를 장중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로 만드는 데 잘 어울리는 유연한 크레인이나 달리 및 스태디 캠 등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클로즈업과 롱 숏 등의 화면 사이즈 선택은 대부분 인물의 심리 표현과 극적인 효과에 따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떤 특정 사이즈를 선호하기 보다는 한 장면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거기에 맞는 적절한 사이즈와 카메라 움직임을 선택하고 있다. 촬영 톤은 배트맨의 주요활동 무대가 밤인 까닭에 전반적으로 다소 어둡다. 특히 화려한 색상은 대부분 배제되고, 흑백이 주로 강조된다. 그런 색체의 대비는 결과적으로 영화의 주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② 액션 스릴러 연출 -총격폭파차량 추격격투 액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1편 <배트맨 비긴스>보다 더 많은 흥분 거리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스펙타클한 장면 촬영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액션 스릴러에서는 전체적인 드라마트루기도 중요하지만 액션과 스릴 있는 장면을 얼마나 스펙타클하게 보여주고 잘 연출하느냐가 그 장르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현대 액션 스릴러 시리즈 영화 붐을 일으킨 인디아나 존스 1편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Raiders of the Lost Ark, 1981)를 만들 때, 제작자 조지 루카스는 감독 스필버그에게 상세한 세부지침을 얘기해주었다고 한다. 그 중에 영화 전체에서 인디아나 존스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6개 정도는 있어야 하는 한다는 중요한 지침이 있었다. 루카스는 말한다. “이 작품은 시리즈를 한 곳에 모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죠. 기본적으로는 액션장면만 편집한 느낌을 주어야 했지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서로 중첩되거나 연결됨으로써 팽팽한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의 내러티브 기본원칙은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이었다. 기존 영화와 차별된 점은 보다 자극적이면서 스펙타클 하다는 것이다. 

<다크 나이트> 역시 기본적으론 그런 루카스식 원칙을 따르고 있다. 액션 스릴이 강한 블록버스터 장르답기 위해선 당연히 강렬한 격투 액션과 차량 액션, 그리고 서스펜스 스릴 장면들이 필요한데, 그런 장면에서도 ‘실제 세계의 규모를 재현’하기를 원했던 놀란 감독의 의도가 관철되었다. 이 작품에서 액션은 크게 총격(3신), 폭파(3신), 차량 추격(1신), 격투(3신)등 네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도입부 은행 터는 총격 및 폭파액션으로부터 시작해 마지막 조커를 잡을 때 벌어지는 총격 및 격투 액션까지 10분에서 20분 단위로 이뤄진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조커가 벌인 게임으로 인한 서스펜스 스릴이 넘치는 장면들이 들어간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절벽 끝에 매달린 배트맨(또는 고담시)’이라는 컨셉으로 장르의 공식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영화 속에서 단 1신 나오는 차량 추격신은 영화 중반부(영화 시작 1시간 17분쯤 지날 때)에 나오는데, 모두 6분밖에 안되지만 매우 역동적이고 리얼하게 표현되었다. 대형 블록버스터일수록 CG 비중이 막대하게 높은 최근의 경향과 정반대로 놀란 감독은 스턴트맨과 특수효과 전문가가 만들어낸 아날로그 액션을 원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그 시카고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는 라 살 스트리트에서 촬영한 자동차 추격신이다. 그중에서도 특수효과 슈퍼바이저 크리스 코보울드의 노력 끝에 완성된 바퀴 18개가 달린 길이 12m의 대형 트레일러가 수직으로 뒤집히는 신은 한마디로 압권이다. 그 장면은 CGI나 세트가 아닌 빌딩가에서 실제 트레일러를 뒤집어 촬영했다고 한다. 그 신의 연출이 현장을 중심으로 이뤄지긴 했지만, 결국은 특수효과와 컴퓨터 그래픽(CGI), 그리고 세트장에서 미니어쳐를 이용한 촬영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예를 들면 <프렌치 커넥션>처럼 찍고 싶었다던 추격전에서 배트모빌과 대형 쓰레기차가 충돌하는 장면은 도저히 도심에서 찍을 수 없어 영국 로우워커 세트장에서 미니어쳐 거리 배경으로 3/1 크기의 모형차를 만들어 촬영했다. 그리고 도심 경찰 헬기가 조커 일당에 의해 추락하는 장면은 추락하기 전은 실제 헬기를 촬영하고, 헬기가 줄에 걸려 추락하는 장면은 CGI로, 도로위에서 구르며 폭발하는 장면은 낡은 헬기를 이용하는 식으로 CGI와 실사, 그리고 특수효과를 적절히 혼합해서 완성했다. 

격투 액션은 본 시리즈나 007 최근 시리즈처럼 최신 유행을 따르고 있다. 즉 과장되기 않고 사실감 넘치는 싸움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신 자신만의 개성을 위해 놀란은 <배트맨 비긴스>부터 특별한 무술을 도입하였다. 즉 보다 거칠고 투박한 액션을 실전처럼 보여주기 위해‘케이시(Keysi)’라는 새로운 무술을 통해 액션동작을 연출한 것이다. 대담성과 폭력성을 강조하고자 한 놀란은 그 케이시라는 무술이 배트맨의 새롭고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는 데 최적의 수단이었다고 말한다. 

편집

<다크 나이트>는 구체적인 비주얼로 보여주는 총격이나 격투 및 차량추격 액션 외에도 심리적인 서스펜스 스릴이 있는 장면이 핵심 요소에 배치되어 있다. 즉 조커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4번의 게임들은 대부분 그런 효과를 갖는다. 그런데 그런 장면들은 대부분 교차 편집에 의해 극적효과를 극대화한다. 즉 배트맨이 가면을 벗고 자수하지 않으면 시민들을 한 사람씩 죽이겠다라든가, 변호사가 1시간 내에 죽지 않으면 병원이 폭발 된다는가, 레이첼과 하비 덴트 중 누구를 살릴 것이냐, 그리고 자기 배가 살려면 상대 배를 폭파하라고 한다든가 하는 이 모든 게임은 특별한 액션 장면 없이도 희생자 양측과 그리고 위기를 구하려는 배트맨과 경찰들, 그리고 악당 조커 일당을 빠르게 교차해 보여줌으로서 서스펜스 스릴효과가 살아난다. 그러기에 이 영화의 숏의 수는 전통적인 액션영화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비교적 많은 편이다. 대신 놀란 감독은 오히려 특수촬영에 의한 액션 신의 경우 과도한 편집을 하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리얼리티를 주려고 애쓴다. 예를 들면 추격신에서 트레일러가 시내 도로에서 뒤집어 지는 신은 일반적인 액션영화라면 특수효과를 감추기 위해 다양한 각도로 여러 숏을 분절해서 보여주었겠지만, 이 작품에선 실제 트레일러를 뒤집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단 두 숏에 의해 보여준다. 당연히 그 효과는 매우 크다. 그리고 이전 영화에서 일관되게 플래쉬 백을 위한 편집을 사용해왔던 놀란은 <다크 나이트>에서만큼은 거의 서사적인 편집을 사용한다. 유일한 플래쉬 백은 영화 후반에 하비 덴트가 동전을 보며 죽은 레이첼을 회상하는 인서트의 짧은 컷 하나-사실상 없어도 무방했을 것 같은 숏-가 유일하다. 그리고 앞 상황을 미리 보여주는 플래쉬 포워드(flash forward) 장면으로는 영화 라스트 신에서 고든이 죽은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장례식 연설을 하는 장면이 하나가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액션영화가 그렇듯이 이 작품도 숨 돌릴 틈 없는 액션과 스릴로 인해 한 시퀀스가 끝나고 공간을 설명하는 롱 숏 외에는 거의 쉬는 타임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시리즈>와 달리 인물들의 감정 신에서는 최대한 숏을 길게 간 덕분에 안정감 있는 편집이라고 볼 수 있다.  


사운드 및 의상소품

이 영화의 음악은 <배트맨 비긴스>에서부터 팀을 이뤘던 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맡고 있다. 기본적인 음악의 톤은 전편을 따르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부터 처음 등장하는 메인 적대 캐릭터(Antagonist)인 조커를 위한 테마음악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 감독은 조커가 등장할 때 자극적이고 듣기 불편한 음악을 원했고, 한스 짐머는 사전에 수많은 데모음악을 작곡해서 감독에게 들려준 끝에 현재의 음악을 만들었다. 첼로 현을 이용해 면도날로 긁는 듯한 한 음을 사용한 그 음악은 약간 날이 선 불쾌감을 자아내는 분위기로 조커가 등장하기 직전에 그를 예고하듯이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한다. 조커의 캐릭터를 매우 효과적으로 청각화 시키고, <다크 나이트>의 개성을 잘 살려준 음악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 성격상 분장이나 의상은 21세기의 분위기에 맞추고자 애쓴 감독의 노력 끝에 이전 <배트맨>시리즈보다 훨씬 세련되어 보인다. 실제로 배트맨 의상이나 분장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놀란 감독은 배트맨 슈트가 단순히 일회적인 의상이 아니라 현실성과 기능성이 동시에 충족될 수 있는 옷감과 재질, 그리고 현대적이길 원했다. 그래서 최첨단 기술과 재질을 사용하여 수 십 번의 테스트를 거친 후, 마침내 <배트맨 비긴스>보다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배트맨 슈트를 개발했던 것이다. 그런 슈트의 진화에 대한 감독의 생각은 영화 속의브루스 웨인의 대사를 통해 언급될 정도다. 

분장 역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특히 투 페이스의 분장은 이전의 배트맨 3편인 <배트맨 포에버>(1995)과 비교해 보면 명백한 차이가 난다. 그 작품에선 배트맨과 대결하는 주요 악당인 투 페이스(토미 리 존스)는 시종일관 반쪽 얼굴을 화상 입은 채 다니는데, 그 모습은 그냥 실제 얼굴에 인위적인 특수 분장만으로 적당히 칠한 티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에 비해 <다크 나이트>에선 보다 특수 분장 기술에다 비주얼 이펙트를 적절히 가미해서 매우 실감나게 화상 입은 반쪽 얼굴을 표현하였다. 

배트맨이 타고 다니는 배트카 역시 이전 시리즈에 비해 훨씬 업그레이드된 소품이다. <배트맨 비긴스>의 시나리오 단계부터 디자이너를 고용해 수시로 감독과 합심해 고안한 배트카의 제작 핵심은 사실 디자인 못지않게 실제로 배트맨이 타고 달릴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조립한 뒤 많은 테스트와 주행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연기 -조커와 배트맨

  시나리오 상에서 아무리 캐릭터가 잘 표현되었더라도 실제 그 역할의 배우가 얼마나 뛰어난 연기로 구현해 내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다크 나이트>에서 연기자들은 대부분 자기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낸다. 하비 덴트/투 페이스의 아론 에크하트나 악역에서 정의로운 고든 서장 역으로 변신한 게리 올드만, 그리고 배트맨의 충복들인 알프레드와 폭스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 모건 프리건, 그리고 레이첼 역의 메기 질렌홀(1편의 케이티 홈즈 보다 매력은 덜했지만), 그들 모두 각자의 역할을 무난히 잘해내고 있다. 

  하지만 배트맨과 조커 중심으로 이끌어지는 이 영화에서 단연 빛나는 배우는 그 선악을 대표하는 크리스천 베일과 히스 레저다. 특히 조커 역의 히스 레저는 독보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사실 감독이 조커 역을 캐스팅하려고 할 때만 해도 1989년 <배트맨>에서 이미 조커를 뛰어나게 연기한 잭 니콜슨을 극복할 수 없다고 여겨 많은 배우들이 고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선택된 히스 레저는 관록 있는 명배우 잭 니콜슨을 훨씬 능가한다. 이제 고인이 되었지만, <다크 나이트>가 기획될 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한 히스 레저는 조커 역을 맡기 위해 태어난 배우가 아닐까 할 정도다. 일부 광팬들은 히스 레저만큼 잘하는 조커를 찾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후 제작될 배트맨 시리즈에서 다시는 조커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히스 레저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조커의 심리, 내면, 목소리들을 철저히 연구하였고, 조커에 관한 생각과 느낌을 담은 일기까지 적을 정도로 캐릭터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는 조커 역할에 대해 ‘그동안 내가 해왔던 역할 중 가장 재미있었고 자유로웠다’로 말했다. 조커는 초기에 만들어진 원작 캐릭터와 외형적으로 비슷하게 재현하는 것에 집중하여 분장했다. 흰 분칠에 얼룩진 붉은 립스틱, 검은색 샤도우를 바른 다크 써클의 표현 등이 기괴하고 음산한 느낌을 잘 재현함으로써 조커는 만화적이거나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인물로서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인물 연출로 주인공인 배트맨 보다 훨씬 앞서가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말처럼 조커의 분장은 배우자신을 가리고 철저히 조커로 탄생할 수 있는 가면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었다. 그가 사후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지만, 사실상 남우주연상을 받았어야 했다.

  물론 배트맨과 백만장자 브루스 웨인의 두 캐릭터를 연기한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도 이전의 배트맨들에 비해 훌륭하지만, 상대적으로 조커에 비해 약해 보인다. 그건 초인처럼 연기해야 하는 슈퍼히어로 주인공들이 갖는 한계일 것이다. 그마나 내적인 갈등이 잘 묘사된 배트맨의 캐릭터와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 덕분에 조커와 균형 있게 맞설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전 배트맨 주인공들과 달리 그는 그냥 브루스 웨인일 때와 배트맨일 때 각각 목소리 톤을 달리한다. 특히 그는 많은 액션 신을 스스로 직접 소화하며 감독의 의도대로 리얼리티에 최선을 다한 모습이 눈에 띈다. 크리스천 베일의 명연기가 빛나지 못한 것은 상대적으로 너무 뛰어난 히스 레저의 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다크 나이트>의 성공 요인을 연출적 관점에서 내용과 형식 전반에 걸쳐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느낀 것은 이 작품의 엄청난 대중성과 그 미학적인 성취는 단지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한 감독의 재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랜 역사를 거친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 전통과 액션 스릴러의 진화된 기술력이 정점에 이른 시점에 놀란 감독의 뛰어난 영화적 스타일과 극적으로 조화를 이뤘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본다. 우리 한국영화 입장에서 볼 땐 특히 그들의 자본력이 절대적으로 부럽다. 거대한 제작비가 없다면 아예 그런 작품 자체를 기획하기 힘들지만, 사실 자본만 있다면 그러한 할리우드의 기술력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많은 CGI와 특수효과가 들어간 우리 한국영화 <괴물>이나 <태극기 휘날리며>, <해운대>등과 같은 대작 영화도 할리우드 기술력을 일부 사서 크게 성공시킨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자본이 있다 해도 시나리오와 캐릭터에 대한 연구가 보다 심화되지 않는다면 <다크 나이트>같은 영화를 만들기는 어렵다. 할리우드가 자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런 영화를 쉽게 만들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크 나이트>의 가장 큰 가치는 막강한 비주얼보다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강렬한 주제의식을 대형 블록버스터에서 구현시켰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어느 매체보다 영향력이 큰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선악을 논하고 동시대의 모순된 영웅주의를 비판하며 동시대에 나름의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는 데는 점에서 대단한 진보인 것이다. 자본 이데올로기가 극대화되는 시대에 한 거대한 부를 가진 남자가 세상에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자기 재산을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한다는 설정도 너무 매력적이다.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그렇게 했는데도 정의를 이루긴 커녕 더 큰 악을 불러들이고, 오히려 지나치게 정의 콤플렉스에 빠져 불법을 마다않고 행동하는 바람에 그 자신 역시 악인이 되어가는 스토리가 슈퍼 파워를 가진 동시대의 미국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은 현대 미국의 자화상이자, <시민 케인>의 케인이나 <대부>시리즈의 마이클 콜레오네처럼 거대한 권력의 덧없음에 관한 우화이다. 그리고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는 슈퍼파워를 가진 미국과 그 적대적인 세력들에 관한 풍자다. 크리스천 베일의 말처럼 ‘무법 상태에서 누군가 나서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준다는 의미에서는 배트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배트맨을 필요하다는 것 자체는 이미 그 사회가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크 나이트>는 비록 미국 영웅주의에 대한 심도 깊은 반성이 있는 영화이면서도 전통적인 서부영화의 영웅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영화 후반에 배트맨이 고든 가족을 구해주고 떠날 때, 고든의 어린 아들이 ‘배트맨!’하고 안타깝게 부르는 장면은 서부영화의 걸작인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셰인>(1953)에서 주인공 셰인이 악당들을 물리치고 홀연히 말을 타고 떠나자 농부 아들이 ‘셰인! 돌아와요!’하고 외치는 라스트 신을 떠올리게 한다. <다크 나이트>는 하비 덴트처럼 다분히 이중적이다. 반영웅적이면서 영웅적이고, 반미국적이면서 미국적이고, 상업영화이면서 동시에 예술영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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