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대왕 지도사례-무리 해체

by 이종대왕

1학기에는 별 탈 없던 학급 분위기가 2학기가 되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9~10월경부터 리더 격인 여학생 두 명을 중심으로 남학생들이 모여 교실 뒤편에서 세를 불리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처음엔 서너 명이었던 모임이 어느새 여덟아홉 명의 견고한 그룹이 되어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뒷공간을 점령했습니다.


리더 학생들의 거친 입담은 때로 저를 예민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무리를 해체할 명분이 없었기에 거슬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문제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대화 중 섞여 나오는 욕설이나 특정 학생에 대한 공개적인 뒷담화로 호된 꾸중을 들을 때도 있었죠. 하지만 이 친구들은 신기하게도 지적받은 문제만큼은 다시 반복하지 않았기에, 찝찝한 마음을 안고서도 '흐린 눈'으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신경 쓰였던 부분은 무리 중 한 명을 불러 상담하고 돌려보낼 때마다, 나머지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가 쑥덕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사안은 아니었기에 예의주시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중, 11월 중순 드디어 숨겨진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위기의 시작: 뒷담화와 신고자 색출


조별 활동 중 발생한 사소한 괴롭힘이 단체 톡방의 강한 비난으로 이어졌고, 이를 지켜보던 한 정의로운 여학생이 교사에게 제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며칠 뒤, 제보 학생의 학부모님으로부터 상담 요청이 왔습니다.

무리 아이들이 딸아이를 째려보는 등 불편한 기색을 내비쳐 걱정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안그래도 거슬렸던 무리, 그리고 이 사안으로 인해 저는 더욱 예민하게 이들을 관찰하였지만

역시나 위에서 언급한 소소한 문제들 정도만 가끔 일어날 뿐 큰 문제행동이 없었기에 답답한 마음만 안고

하루하루를 흐린눈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무리 중 한 남학생(C)이 저를 대상으로 입에 담기 힘든 천박한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제보를 받은 것입니다. 명백한 교권 침해 사안이었습니다. 평소 관계가 좋았던 학생이었기에 충격이 컸지만, 저는 이를 오히려 '확실한 내 편을 만들고 무리에 경각심을 줄 기회'로 삼기로 했습니다.


저는 C를 따로 불러 단호하게 훈육했습니다. "선생님은 너를 믿었기에 이번 한 번만 기회를 주겠다. 하지만

다시는 내 이야기를 뒤에서 언급하지 마라. 그리고 앞으로 무리 내에서 부적절한 대화가 나온다면 동조하지 말고 선생님에게 알려라."


드디어 찾은 '해체'의 명분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다음 날 점심시간에 무리의 핵심 인물들이 제보 학생이 들리도록 "누가 선생님한테 꼰질렀냐"라며 보복성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답답함도 잠시, 제 머릿속에는 번뜩이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드디어 명분을 잡았다.'


단순한 뒷담화를 넘어선 '보복성 협박'. 이는 무리 전체의 책임으로 물을 수 있는 심각한 학교폭력 사안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주차장의 눈을 치우며 아이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끊임없이 되뇌었습니다.


"너희가 나빠서가 아니라, 무리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거야"


등교한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 맞춤형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핵심 전략은 '학생 개인의 인성'을 공격하는 대신 '집단 역동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B에게: "너는 똑똑하고 자랑스러운 제자야. 하지만 이 무리에 휩쓸리면서 너도 모르게 변했어. 집단 속에 있으면 브레이크가 사라지거든. 이건 완벽한 학폭 사안이고 인생에 큰 오점이 될 수 있어. 선생님은 너를 보호하고 싶어."


"C야, 지난번 네가 저지른 심각한 교권 침해 사안에 대해 선생님이 얼마나 관대하게 너를 믿고 용서했는지 기억하니? 하지만 이번 일은 차원이 다른 문제야. 제보자를 색출하려 한 보복성 언행은 네 인생 전체를 놓고 봐도 정말 위험한 행동이란다. 이건 명백한 학교폭력 사안이고, 이미 여러 학부모님으로부터 강력한 항의 연락을 받은 상태야. 선생님이 보기에 넌 충분히 괜찮은 아이인데, 무리 속에 섞여 있다 보니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 같구나. 여럿이 모여 있다 보면 평소보다 들뜨고 힘이 세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이런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법이지."


리더 여학생들에게: "너희의 뛰어난 재능(기타, 글쓰기 등)이 이런 사소한 무리 활동 때문에 꽃피우기도 전에 꺾일까 봐 걱정된다. 너희는 특별한 아이들이니 남다른 길을 가야 해."


상담의 끝은 항상 같았습니다. "너희 개개인은 정말 괜찮은 애들이야. 하지만 무리가 생기면 '브레이크'가 고장 나고, 결국 너희 인생에 손해가 되는 일이 생겨. 그래서 선생님은 너희를 지키기 위해 이 무리를 해체할 수밖에 없어."



20년 차의 지혜: 탓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승리


결국 저는 학급 전체에 '쉬는 시간 3인 이상 집합 금지'라는 강력한 규칙을 선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원망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누구의 탓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 때문이야"라는 비난 대신 "무리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라고 규정하자, 아이들은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방관했던 전체 학생들에게도 공동의 책임을 일깨우며 사건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처음 무리가 형성될 때 미리 '조건부 허락'을 통한 판깔기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무리가 생기면 브레이크가 고장 나기 쉽다. 만약 선을 넘는 대화가 적발되면 그 즉시 해체하겠다." 이 한마디가 있었다면 과정이 조금 더 수월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저의 12월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아이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교실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 그것이 담임교사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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