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놀 이종원 Sep 17. 2016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오르한의 슬픈 사연

터키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터키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285개의 방과 43개 홀을 황금으로 치장했다고 하는데 금 14톤과 은 40톤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19세기 쇠락을 길을 걸었던 오스만 제국은 옛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본 따 돌마바흐체 궁전을 짓게 된다. 그러나 이 궁전이 발목을 잡아 국가 재정이 힘들어졌고 1차 세계대전 때 패전국이 되어 결국 케말에 의해 왕정은 전복된다. 

5개의 바다를 다스렸던 오스만제국. 제국은 황태자 오르한의 슬픈 사연으로 종말을 맺는다. 


쿠데타를 성공한 국부 케말은 1924년 술탄 가족의 추방 명령을 내린다. 남자는 50년, 여자는 28년 동안 귀국 금지 명령을 내린다.

술탄이 되었다면 대제국을 통치했을 오르한은 15세 때 졸지에 브라질로 건너가게 되었고 신분을 숨긴 채 농사꾼, 공장의 인부로 연명했으며 이집트에서는 택시기사까지 했다고 한다. 신분이 탈로 날까 봐 유랑을 거듭했으며 나라를 망친 죄책감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추방된 황태자 오르한은 얼마나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겠는가, 드디어 추방된 지  50년이 되자 고국에 돌아갈 생각에 꿈에 부풀었지만 당시 정정이 불안했던 군사정권은 그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탄원서 제출해 1992년 꿈에 그리던 고국 방문 허락을 받았다. 그것도 5박 6일 짧은 일정. 

83세 노구를 이끌고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자 땅에 엎드려 입을 맞추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고국을 떠난 지 68년이 지난 지난 후였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돌마바흐체 궁전을 찾았다.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자신의 궁전이었지만 스스로 입장권을 끊고 들어갔다고 한다. 자신이 머물렀던 방에 들어가 침대를 어루만지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차량만 다니는 보스포루스 다리를 홀로 건너게 해달라고 정부에 간청했다. 어린 시절 보트놀이를 했던 추억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다리 중간쯤 걸었을 때 먼발치에서 궁전을 바라보며 그는 대성통곡을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터키 국민들은 비운의 황태자와 함께 눈물을 흘렸고 그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여생을 터키에서 보내십시요.” 그의 귀로를 막아섰다.


그러나 그는 그 제안을 일언지하 거절했다 

“평생 조국에 세금 한 푼 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 땅에 살 자격이 있겠습니까. ” 

5박 6일 짧은 일정을 마치고 프랑스로 떠났고 그 후 매일 공항 라운지에서 터키 커피인 카흐베를 마시며 고국을 오가는 비행기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1년 후 그는 17평 작은 아파트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대제국 황태자의 쓸쓸한 죽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빅벤의 의미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