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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 Jan 20. 2022

덜어내고자 하는 일상#5

만석

 오늘 하루는 정신없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수시생 환영회라도 있던 모양인지 손님들이 한 팀, 두 팀 들어오며 번잡하다 어느새 가게가 만석이 됐다. 이곳을 처음 시작했을 땐 일상적으로 보던 모습이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이전처럼 일을 도와주는 친구들 없이 혼자서 음료를 만들고 설명을 해주고 게임 진행을 도와주느라 진땀 뺐지만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감각이 전신에 스며들었다.


또한 내가 이 보드게임 카페를 개업한 이유, 이곳을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는 이유. 모든 것들이 되새겨지며 새로 피어났다.


청각 장애가 있는 나도 보드게임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며 어울릴 수 있었다. 내가 보드게임으로 얻은 커뮤니케이션의 감동을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보드게임 카페를 개업했다.


첫 1년은 내가 원한 대로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를 나눌 수 있던 재밌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코로나가 도래했다.


북적북적하며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은 어느새 나 혼자 자리를 지키며 적막만이 가득한 공간이 됐다. 그리고 올해는 내가 사랑했던 이곳을 감옥처럼 여기며 글을 이어가고자 했다.


그런 지금 오랜만에 카페가 사람들로 만석인 상황이라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은 듯 잠시나마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사실 최근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을 지키며 글을 써 나가겠다고 결심한지 한 달이 채 안 됐지만 현실은 나를 인자하게 기다려주지 않고 채권자처럼 계속해 보채 왔다.


월마다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 점점 희미해져가는 왼 눈과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청력. 뜻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몸까지. 주어진 환경에 대한 압박감이 심하니 점점 ‘지금 이래도 되나?’라는 불안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덕분에 불안이 상당수 가셨다.


“저 일학년 때 처음으로 오고 오랜만에 왔는데 후배들도 데려와 보고 게임도 여전히 재밌고 좋네요.”


재작년 새내기가 된 손님이 처음으로 학교에 와서 사람들하고 친해진 이 공간에서 어느새 후배들을 데려와 자신이 느꼈던 재미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단 이 테이블뿐만이 아닌 다른 테이블에서도 비슷했다. 어색했던 목소리와 눈들이 어느새 게임을 통해 웃으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추구했지만 잠시 잊고 있던 가치들.


오늘 다시금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를 되새기며 적어도 올 한 해는, 내 몸이 버텨줄 때까지만이라도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 이곳을 지켜야겠다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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