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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훈 Nov 25. 2020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라고 자주 말하면 정말 그렇게 될까. 파란만장보다는 천신만고의 삶을 살아오면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의 가훈 '고진감래'는 어쩐지 '고진'까지도 채 못 쓰고 붓을 내려놓은 듯 삶을 휘감은 고생은 끝날 줄을 몰랐다. 호시절 내게 찾아온 기회란 기회는 전부 낮은 자존감과 기분에 이끌려 뻥 차버렸고, 세상천지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나에게만 유독 엄격한 탓에 잘 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준 미달, 수준 이하로 평가했다. 도전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을 품어내기엔 한없이 작고 미약했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일 텐데.


 내게 주어진 일들에는 늘 부단히 열심을 다했다. 일이면 일, 운동이면 운동에 늘 전력을 다하고 심지어 취미 생활과 인간관계에까지 미련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여유시간이 생기면 쉬기보다 이 시간에 뭘 할지부터 고민했다.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이왕 하는 거 잘하면 좋은 거니까. 무얼 하든 우선 열심히 하고 보는 이런 성향은 다양한 일과 사람을 만나고, 지나쳐온 그동안의 경험 속에서 최고는 아니어도 욕은 먹지 않도록 해주었다. 


 어느 토론 모임에서 나는 '선택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에 대한 데이터(경험)가 쌓여 다음 선택을 점점 잘 할 수 있게 된다. 선택은 우리를 훈련시킨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유독 나의 선택지는 점점 다양해지고 결정은 더 어려워져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서서 길을 잃어버린 어린 아이처럼 좌절하기 십상이었다. 결국, 매번 누군가가 '좋다더라' 한 것들을 쫓거나 리스크가 적은 것들을 골랐다. 참 웃긴 게, 나름대로 신중히 고심 끝에 선택한 결과는 대개 많은 후회들을 남겼는데,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라는 식으로 냅다 결정해버린 일들은 역설적이게도 큰 성취감과 함께 내 남은 여생에 연료가 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된 것이 없는 지금의 나의 인생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방송국 놈이 되겠다며 밤새는 줄 모르고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영상을 만들며 지내던 20대의 내가, 시꺼먼 커피를 생수처럼 마시며 일을 하리라고는 노스트라다무스도 예상 못 했을 것이다. 백이면 백 예상을 빗나가는 내 인생은 어쩐지 사람 사는 맛이 난다. 그 와중 다행인 건 지금껏 공부하고 경험했던 수많은 것들이 지금의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 정도. 여전히 여러 종류의 고생들은 앞다퉈 내게 덤벼들지만, 요놈들을 하나씩 헤쳐나가는 것도 참 재미지다. 


 아직 오지 않은 많은 날들에는 맑은 날만 있지는 않을 것을 나는 안다. 지금까지의 삶이 그랬든 엄청난 태풍이 올지, 폭우가 내릴지, 어떤 사건 사고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들도 나중에 돌아보면 재미있다고 여길만한 경험을 남겨주고는 곧 지나갈 것이다. 온몸이 멍투성이지만, 가끔 재미난 일들이 생기는 인생. 


그래서 왠지 나는 내 인생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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