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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어제 Aug 23. 2021

아이에게 냄새가 난다.

아기 냄새는 베이비로션 향이 아니다.

 나는 아이를 잘 보는 편이었다.


 사 남매의 첫째인 아빠와 삼 남매의 첫째인 엄마 사이에 첫째 딸로 태어나면서 나는 두 돌이 갓 지났을 때부터 '언니'가 되었다. 유치원을 다닐 때에 친척 어른들이 어린 동생들 사이에서 우뚝 서있는 나를 보며 '다 컸다' 하기에 나는 정말 그때 내가 다 큰 줄 알았다. 열 살이 되기 전 이미 친동생 하나, 사촌동생이 셋이었고 그 이후로도 동생들은 계속 태어났다. 삼촌들은 나에게 만 원짜리 한 두장을 쥐어주며 동생들 데리고 간식 사 먹고, 남은 돈은 용돈 하라며 한쪽 눈을 찡긋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중 큰 조카에게 아이 넷을 맡기고 어른들은 한두 시간의 자유시간을 얻었던 것 같다. 아직도 동생들을 데리고 슈퍼에 가던 길이 생각난다. 지금 내 걸음으로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길이지만 열 살 아이가 천천히 걷는 아이, 뛰어가는 아이, 손을 잡으려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엔 험난하고 멀었다. 각자 원하는 과자를 하나씩 쥐고 슈퍼 바로 앞의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의 과자를 뜯어주고 장난감을 조립해주다 내 과자는 봉지도 뜯지 못한 채 집으로 들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엄마, 아빠의 절친한 사촌 지간까지 포함하면 내 동생 외에 지금 내가 '친척 동생'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열네 명이다. 나와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동생들은 나를 고모, 이모 등의 호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언니라 부르지 않으면 잡기 놀이를 안 하겠다는 엄포를 놓아야 비로소 왕언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았고, 처음 보는 아이라도 두세 시간 정도는 혼자서 놀아줄 수 있었다. 내가 아이를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겐 냄새가 난다.

 아이를 잘 본다는 나의 자신만만함을 꺾어놓은 것은 나의 아이였다. 내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아이를 모른다. 여름에 태어난 아이가 지금 더운지 추운지, 잘 때 등을 대고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내 뱃속에서 열 달을 품었고, 절반은 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아이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완전하게 새로운 인격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새로운 인격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인간관계이며, 이 인간관계는 쉬이 끊을 수없는 절대적인 관계이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꿈에도 몰랐다.


 내가 몰랐던 것은 또 하나 있었다. 아이에게 냄새가 난다는 것. 아기 냄새라고 하면 베이비 로션, 베이비파우더의 냄새를 떠올렸다. 은은한 비누향과 따뜻한 코튼의 느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나는 냄새는 사실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달콤하고 끈적한 분유 냄새와 시큼한 아기의 토 냄새, 때로는 아기한테서 이런 냄새가 날 수 있나 싶은 기저귀 냄새가 모두 모여 아이의 냄새를 만든다. 그동안 내가 이 냄새를 몰랐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아이의 목덜미에 깊게 코를 박고 냄새를 들이 맡을 일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동생들이었지만 아이를 '봐준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냄새를 이토록 깊이 들이마신 일이 있었을까. 아이를 안고 있으면 너무 예쁘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꽉 끌어안고 싶지만, 혹여나 이 여린 아이가 어디 다치치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이를 세게 끌어안는 대신 내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며 아이를 안고 있는 팔과 입술에 온 힘을 잠깐 실었다 뺀다. 그리고 아이의 목덜미에 코를 묻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잘 게워내는 우리 아이에게서 아까 먹은 젖 냄새와 수시로 게워내는 토 냄새가 엉겨있다. 다른 사람의 침 냄새라면 질색을 했을 텐데 아이에게서 나는 축축한 침 냄새는 달큰하게까지 느껴진다. 몇 해 전 감기를 심하게 앓은 이후 냄새를 못 맡는 엄마도 아이를 안고 있으면 '내가 다른 냄새는 못 맡아도 우리 아가 냄새는 알겠다'며 특유의 시큼한 아이 냄새는 바로 느껴진다고 한다.


 출산 휴가가 길어지며 잠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다. 무엇보다 딱 맞는 옷을 입고 맘에 드는 가방과 구두를 골라 밖에 나가 일하던 나의 모습이 가장 그립다. 아직 임신 중 불어난 체중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친구들과 연락할 만하면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 '응애-'하고 운다. 잔 것 같지 않은 선잠을 자고 일어나면 어제와 또 다른, 조금 더 큰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그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그립고 아쉬웠던 생각은 모두 뒤로 한 채, 밤새 마른 입술이 터지는 줄도 모르고 씨익 웃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이의 냄새를 들이마신다. 아이의 냄새는 곧 다른 냄새로 바뀔 것이다. 이유식을 시작하면 또 다른 음식 냄새와 땀냄새가 뒤엉키겠지. 더 자라면 엄마가 자신의 목에 코를 묻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날도 올 것이다. 맡을 수 있을 때 실컷 맡아둬야지. 이 시큼하고 달큰한 너의 냄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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