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달콤한 꿀고구마를 고를 순 없으니까

스위트포테이토로 마음을 달래자

by 모든어제

곧 여섯살이 되는 너는, 글밥 많은 책들에 푹 빠졌지만, 스스로 책 읽기는 한 장을 넘기기 어려워 엄마를 애먹이곤 해. 자기 전에 책 너댓권을 들고 오면 오늘도 한 시간 내로 잠들기는 글렀다 싶어. 그 중에서도 네가 푹 빠져있는 '와글와글 숲속의 음식 가게' 책 시리즈는 당근에서 책 전집을 사던 중 사은품 처럼 끼워 받았는데, 안 받았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을 정도로 네가 좋아하는 책이야. 일러스트레이션도 예쁘고, 읽다보면 엄마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키게 되는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표현이 가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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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역시 '부엉이 뽀의 레스토랑' 이야기를 읽는데, 잠이 가득하던 네 눈이 순간 번쩍이더니 "엄마 나도 이거 만들고 싶어요." 라며 음식 하나를 손으로 짚었어. 팬을 들기에도 벅찬 아기 부엉이 뽀가 만드는 요리라니 너도 한 번 욕심이 났나봐. 다음날 오후를 어떻게 보낼 지 고민하던 참이었으니 엄마도 잘됐다 싶어서 선뜻 "그래, 그럼 우리 내일은 이 스위트포테이토를 만들어보자. 대신 이제 눈 꼭 감고 자기!"로 약속했지.



다음 날,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퍽퍽하고 맛 없는 고구마를 사버렸어.

3kg이나 담긴 봉지를 사왔는데 낭패지. 고구마를 요리하기 위해 깨끗이 닦고 꼭지를 잘라내는 순간, 단면을 보고 벌써 느껴버렸어. '이 고구마 진짜 맛 없겠다.' 호박고구마는 자른 순간 단면에 진한 주황색 동그란 띠가 보이는데 이 고구마는 단면 한 가득 미색의 살만 꽉꽉 차있는거야. 퍽퍽한 밤고구마. 당도라도 높았으면 했건만 단 맛은 커녕 고구마 냄새도 진하지 않아 한숨이 푹 나왔어.


오히려 잘됐다. 우리는 스위트포테이토를 만들거니까. 안 달콤한 이 스위트포테이토(고구마)를 진짜 스위트포테이토로 만들자. 살면서 매번 달콤한 꿀고구마를 고를 수는 없을테니, 너에게 퍽퍽한 고구마를 달콤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법을 알려줄게.


책에 나온 레시피는 단 세 문장.

'냄비에 고구마를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았어요. 껍질을 벗긴 고구마에 버터, 설탕, 달걀노른자와 생크림을 섞고, 다시 껍질 안에 볼록하게 담아 달걀노른자를 솔솔 발라주었지요. 오븐에 넣어 구우면 스위트포테이토 완성'


엄마가 너에게 잔소리를 섞어 전하는 레시피.

1. 깨끗이 씻어 낸 고구마의 양 끝을 1-2cm 잘라줘. 끝을 잘라내지 않고 고구마를 익히면 쉽게 껍질이 터져버리거든. 우리는 고구마 껍질을 그릇으로 사용할거라 고구마 껍질을 터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2. 고구마를 전자렌지에 넣고 3분, 뒤집어서 3분, 젓가락으로 찔러보았을 때 아직 익지 않았다면 다시 2분 정도 돌려줘. 이때 중요한 건 꼭 랩을 씌우거나 렌지 전용 뚜껑을 덮어줄 것. 고구마가 고루 촉촉하게 익히기 위한 일이야.

3. 잘 익은 고구마를 반 갈라서 뜨거울 때 속을 파내는 거야. 껍질을 얇게 남기려는 욕심은 금물! 우리는 껍질을 그릇처럼 쓸거니까 껍질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0.3~0.5cm 겉껍질을 의도적으로 남긴다는 기분으로 속을 파줘. 뜨거운 고구마를 손으로 쥐고, 숟가락으로 속을 파내자면 오두방정을 떨게 되지만 뜨거울 때 해야 고구마를 으깨기도, 설탕과 버터를 녹이기에도 좋아. 물론 어린 너는 여기까지 엄마를 빤히 바라볼 뿐이지. 언젠간 너도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으로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껍질을 벗기겠지? 엄마는 그 누군가가 그저 좋은 사람이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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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구마를 커다란 볼에 모아, 매셔 또는 국자로 고구마를 꾹꾹 눌러줘. 굵은 체에 걸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질감이 될테지만 아직 다섯살인 너와 함께 요리할 때는 효율성도 생각해야지. 우리는 너의 고사리 같은 손을 빌어 국자로 꾹꾹 으깨줄거야. 그리고 아직 고구마가 뜨거울 때 버터를 넣어줘. 엄마 생각에는 작은 고구마 기준 버터 1 작은 숟갈이 적당할 것 같아. 고구마 몇 개에 버터 몇 g이라는 기준은 적당하지 않아. 고구마는 너의 주먹만한 것도, 아빠 발만한 것도 있으니 갯수를 기준으로 삼기엔 어림 없지. 중간 중간 간을 보며 추가해줘.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부리면 고구마가 아니라 버터를 떠먹는 기분이 날지도 몰라.

5. 그리고 설탕, 소금을 넣자. 이 역시 간을 보면서. 우리는 맛 없는 고구마를 사버려서 설탕을 한참 넣어주었어. 만약 고구마가 맹맛이라면 꿀을 추가해주는 것도 좋아.

6. 이제 고구마가 어느정도 식었다면 우유와 날계란 노른자를 넣어 농도를 묽게 만들어주면 돼. 책에선 생크림을 넣어주었지만 버터에 우유만으로도 충분해. 고구마가 너무 뜨거우면 계란이 익어버려 뜨거운 김이 날아간 뒤 넣어야 하니 꼭 기억해. 날계란, 우유를 넣었을 때 반죽이 줄줄 흘러내리는 느낌이 되어선 안돼. 들어올렸을 때, 뚝뚝 덩어리져 떨어지는 정도의 농도를 만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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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제 다시 고구마 껍질에 담아서 구워줄거야. 담을 땐 살짝 봉긋하게 올라올 정도로, 고봉밥 담듯이 담아주는거야. 그리고 앞서 넣고 남은 계란 노른자를 풀어 살짝 발라주고 180-190도로 예열된 오븐에 담아 15분에서 20분 정도 구워줘. 엄마는 항상 10분 후 확인해서 5분을 더 돌릴지, 7분~10분을 더 돌릴지 결정해. 감이 안온다고? 그렇다면 오븐 앞에 서서 지루한 책을 하나 들고 한장 읽고, 한 번 들여다보고, 한장 읽고, 한 번 들어다보며 윗 부분이 노릇하게 바뀌는 때를 잡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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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언젠가 경험하고 알게 되겠지? 다섯살 아이와 함께 요리한다는 건 포기해야 할 것도 많고, 엄청난 인내와 예민한 주의를 동반한다는 것을.

완성된 스위트포테이토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다 결국 오븐 접시에 손가락 끝을 데인 너를 안아들고 '내가 이걸 왜 해서' 백 번도 넘게 되뇌었지만, 너의 손가락을 식혀주는 차가운 물에 이 기억도 흘려 보내고 나는 또 너와 함께 새로운 경험을 기약하겠지. 요리하는 내내 보이는 너의 초롱초롱한 눈빛, 그리고 완성된 결과물 앞에서 발을 동동 거리며 한 입을 기다리는 너의 오물거리는 입술이 너무 예뻐서.


눈물이 아직 그렁그렁한 채로 "이제 먹어봐도 돼요?'라도 묻는 너의 입 속에 한참을 불어 식힌 스위트포테이토를 넣어주었어. 싱긋 웃으며 "엄마, 이거 진-짜 맛있다!"를 연신 외치는 너를 보니 허탈하게 웃음이 나온다.


이번에 우리가 그런 것처럼 네가 항상 맛있는 고구마만 고르지는 못할거야. 맛도 없고, 퍽퍽하고, 돈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하품을 살 때도 있겠지. 그럴 때, '내가 이걸 왜'라는 후회나 자책 따위는 얼른 흘려보내고 네 앞에 놓인 고구마를 달콤하고 부드럽게 바꿔줘. 너의 의지와 행동으로. 단순 고구마 뿐만이 아니라 너의 앞에 놓인 모든 고구마 같은 일에 대해 적용될 이야기라는 건 아마 30년쯤 뒤, 내 나이가 된 너는 이해할 수 있겠지?


잔소리가 더 많은 스위트포테이토 레시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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