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 속성 과외
산후조리원 속성 과외
병원에서 2박 3일, 산후조리원에서 9박 10일을 보냈다. 산후조리원은 출산 후 몸을 회복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마치 단기속성 학원처럼 아이를 돌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들을 알려주는 곳이기도 했다. 산후조리원 입실 교육에서는 간단한 시설 안내와 모유 유축하는 법, 수유 자세, 그리고 모자동실을 대비해 기저귀 갈아주는 법과 속싸개 싸는 법을 배웠다. 신생아실 선생님께서 아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와 직접 실습하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이때 아이가 눈 뜬 모습을 처음 보았다. 처음 마주하는 까만 눈동자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버둥거리는 아이를 안고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가장 큰 난관은 응가를 처리해줄 때였다. 새 기저귀를 미리 아이의 엉덩이 밑에 깔아 두고, 차고 있던 기저귀를 연다. 앞에서 뒤를 향하는 방향으로 물티슈를 이용해 가볍게 닦아낸 후, 화장실에 가서 적당한 온도로 세면대의 물을 맞춰놓고 아이를 데려와야 한다. 아이를 안는 방법이 제일 큰 문제였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아기의 목 뒤로 왼팔을 깊숙이 넣고, 왼손으로 아이의 왼발을 잡고 오른손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받쳐 들어야 했다. 아이를 그냥 안는 것도 어렵고 어색했던 생후 3일 차, 누르면 녹아버릴 것만 같은 연한 살을 어떻게 그런 복잡한 자세로 잡아야 할지 눈앞이 막막했다. 실제상황도 아니고 신생아실 선생님과 함께 있는 연습이었음에도 아이를 안고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2-3분 동안 머릿속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산후 식은땀도 심하던 때라 입실 교육이 끝나고 아이가 신생아실로 돌아갈 때는 온몸이 흠뻑 젖어 바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아이를 씻기면서 생길 수 있는 일
며칠 뒤에는 기저귀, 분유 등 몇 가지 선물 꾸러미와 함께 퇴실 교육을 받았다. 퇴실 교육은 크게 이론과 실전 편으로 나뉘었다. 아이가 열이 날 때 해야 하는 일, 유축 모유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법은 A4용지 한 장으로 정리된 안내문으로 배웠다. 모유 타는 법, 목욕시키는 법은 그 자리에서 바로 실습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아이를 목욕시키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 비누거품으로 미끌거리는 아이를 어떻게 안아 들어야 할까, 혹시나 아이를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무수한 걱정들은 무서운 상상으로 번졌다. 아이를 씻기면서 생길 수 있는 온갖 사고들이 그려졌다. 그리고 목욕 실습을 하는 시간, 아이를 씻기면서 생길 수 있는 하나의 사고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목욕 실습 장소에는 큰 세면대와 아기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세면대 옆에는 새하얀 목욕수건 한 장이 깔려있었다. 목욕은 예상했던 것처럼 난감하고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아이를 럭비공처럼 옆구리에 끼고 안아 세수를 시키는 것부터가 난제였다. 아기는 인형이 아니었다. 팔 안쪽과 옆구리에서 꾸물거리는 아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이가 조금만 움찔해도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자가 검열을 해야 했다.
혹시나 아이가 추울까 아이의 얼굴을 닦고 머리를 감기고 난 뒤에야 옷을 벗겼다. 탯줄이 빨리 떨어진 편이라 목욕하기 수월할 거라는 신생아실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에도 나는 배냇저고리에서 아이의 팔을 빼는 것부터 손이 벌벌 떨렸다. 아이의 머리를 감기면서, 아이의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경우 중이염이 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에 이미 머릿속으로는 내 실수로 아이에게 중이염이 생기고 열이 펄펄 끓는 상상의 끝까지 다녀온 터였다. 왼손의 엄지와 중지로 아이의 목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아이의 몸을 씻겼다. 문제는 아이의 몸은 평면, 단면이 아니라는 것. 게다가 아이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아이의 몸 뒷부분을 닦기 위해 움직이는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울 때는 '제발'이라는 말이 주문 외듯 나왔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여차저차 아이를 씻긴 뒤 세면대 옆의 새하얀 수건 위에 아이를 눕혀놓을 때 사고는 일어났다.
최대한 빠르게 물기를 제거해야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수건 양 옆의 날개를 가운데로 포개어 아이를 토닥일 때, 갑자기 '풉' 당황스러운 소리와 함께 수건에 노란 물이 들었다. 아이는 수건 한가운데에서 응가를 하고 있었다.
제가 죄송합니다.
"아가야, 아가야!"
수건 안의 아이를 어쩌지도 못하고 발 동동 구르며 쳐다보는 내게 선생님은 시원하게 웃으시며, 세면대 안에서 싸지 않아 다행이라 이야기하셨다. 나를 위로하려 하신 이야기이겠지만 종종 세면대에서 용변을 보는 아이들도 많다며 다시 한번 아이를 씻기도록 도와주셨다. 난감하고 당황스러웠지만 나도 같이 웃으며 한번 더 아이를 씻겨 다시 수건 위에 눕혔다. 그리고 아이는 다시 한번 수건 위에서 응가를 했다.
세면대에서 응가를 하는 아이는 있어도 이렇게 수건 위에서 두 번이나 응가를 하는 아이는 없었던 게 분명하다. 이번엔 선생님도 당황하시며 얼른 다시 한번 씻기고 기저귀 먼저 채우라 하셨다. 나 역시 아이를 씻기며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생각할 때에 이런 사고는 예상 범주에 없었다. 이때는 당황해서 아이를 어떻게 씻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씻고 나오자마자 기저귀부터 채우고 수건으로 아이 몸의 물기를 닦아냈다. 로션 바르는 법과 옷 입히는 법을 배우고 목욕 실습장에서 나왔다. 나오는 길에 연신 선생님께 인사드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내가 의도적으로 잘못한 일은 아니지만, 물론 아이의 잘못도 아니지만 결론적으로는 신생아실 선생님들께 불편함을 드리게 되었다. 내가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은 내 생에 처음이었고 죄송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운이 쭉 빠진 채로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털썩 몸을 던졌다.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아이가 저지른 사건 현장에 손도 못 대고 동동거렸던 내 모습이 우스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고를 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범생이었다. 사고를 친 적이 없으니 수습할 일도 없었다. 오히려 남이 저지른 사고를 뒷수습해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다른 이의 뒷수습을 하는 것은 내 의도나 실수가 개입되지 않았기에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저 빠르고 확실하게 상황을 정리하면 되었다. 하지만 내 아이의 실례는 경우가 달랐다. 아이가 의도적으로 한 일도, 큰 잘못도 아니지만 이로 인해 불편함을 겪을 이들에게는 내가 죄인이 되는 듯했다. 난 항상 '내 잘못'이 없기에 당당할 수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내가 죄송한 상황이 생겨났고 아마 앞으로는 이런 일들을 아주 많이 마주칠 것 같았다.
아이가 잘잘못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아이가 나쁜 일, 고의로 한 일이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미안함을 표해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아이가 말을 배우고, 미안함과 죄송함에 대한 감정을 이해하고 진심을 전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아이가 마음도 말씨도 바르고 고운 사람으로 자랄 때까지 예측할 수 없는 그 모든 사고에 대해 "제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