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대상학생 진학 차별과 관련한 또 하나의 사례
장애학생 고입 차별과 관련한 사례를 하나만 더 소개할까 합니다.
앞의 재성이 사례(2020.10.31.글 "특성화고등학교로 가고 싶어요.")와 조금 비슷하면서도 다른 유형이기에 여기서 좀 더 논의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예전에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 완전통합 특수교육대상학생인 성우(가명)가 있었습니다.
완전통합 학생이란 지능이 우수하여 도움반에 내려오지 않고 통합반에서만 공부하되, 방과후교육비 지원 등 특수교육관련 지원 서비스만 제공받는 학생을 말합니다.
성우는 완전통합 학생이라 제가 담당하여 교육하는 것은 없었지만 비정기적인 학부모 면담과 학생 상담을 통해 통합학급에서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꾸준히 관찰하였습니다.
성우는 지적장애 3급이긴 하지만 경계선상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고 일상생활 기술이 우수하였습니다. 대화를 나눠 봐도 비장애학생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의사소통능력이 뛰어나고 친구들과도 별 문제없이 잘 어울려 지내는 학생이었습니다.
성우의 어머니는 평소에 성우의 교육과 미래 취업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1학년 때부터 성우의 진로에 대해 많은 자료 수집과 고심을 해 오셨습니다. 성우의 향후 진로에 관한 어머님의 관심과 정성은 대단하시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어느덧 성우는 3학년이 되었고, 어머님은 성우의 고등학교 입학에 관해서 성우에게 적합한 학교를 찾아주기 위해 스스로 무수히 많은 조사를 하셨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보통 지역 내에 있는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원하는데, 성우 어머님은 달랐습니다.
어머님은 성우의 취미와 적성을 바탕으로 1학기 때부터 성우가 전라북도 장수군에 위치한 마사고에 진학했으면 하는 뜻을 저와 통합반 담임선생님께 밝혔습니다.
집에서 장수까지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여름방학 때는 성우와 같이 마사고에 직접 찾아가셔서 면담까지 하고 오셨습니다.
저는 성우가 말을 좋아할 뿐 아니라 여기서 말 관련 전문적인 기술을 열심히 익힌다면 그나마 특색있는 곳으로의 취업의 기회가 확대되기 때문에 특수교육대상자 어머님으로써 탁월한 결정을 하신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장애학생 어머님들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취업이기 때문에, 기능이 뛰어나고 우수한 학생들은 적성에 맞으며 특성에 맞는 기술교육을 고등학교 때부터 받음으로써 다른 학생들보다 취업의 기회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우는 말을 좋아했기에 그냥 관내 일반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보다는 말 관련 전문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성우의 장래에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우는 특수학급 학생이 아닌 완전통합 학생이고 평소에도 장애가 있다고 느끼지 못했기에 비록 진학하게 되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지만 학교 생활 적응 면에서는 별 무리 없이 잘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진학 서류를 작성할 시기가 되어 마사고를 1지망으로 쓰려고 하자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경기도내 고등학교로 진학은 가능하여도 경기도를 벗어난 지역으로의 지원은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경기도 특수교육운영위원회가 특수교육대상자를 선정・배치할 때에는 도내 지역만 가능하지, 도 이외의 지역은 권한 밖의 일이라 학생을 배치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습니다. 분명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17조 3항에는 “교육감이 관할 구역 내에 거주하는 특수교육대상자를 다른 시ㆍ도에 소재하는 각급학교 등에 배치하고자 할 때에는 해당 시ㆍ도 교육감(국립학교의 경우에는 해당 학교의 장을 말한다)과 협의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4항에는 “제3항에 따라 특수교육대상자의 배치를 요구받은 교육감 또는 국립학교의 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럼 당연히 이 규정에 근거해 특수교육대상자가 다른 시・도로 진학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해당 시・도 교육감과 협의를 해야 하고 해당 시・도 교육감은 진학 요구에 응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협의는커녕 아예 지원조차도 못한다고 하니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학생들의 인권과 교육권을 보장해야 할 도교육청에서 최소한 법 규정에 제시된 대로 이행은 못할지언정 오히려 지원할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 행위입니다.
저는 도교육청과 전라북도 교육청에 똑같이 민원을 제기하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경기도에서는 이러한 선례가 없고 권한도 없다고 하였으며, 전북 교육청 역시 성우의 주소지가 전북이 아니기에 경기도에서 먼저 요청을 해오지 않은 상태에서 임의로 도내 고등학교로 배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다른 방법이 있나 알아보기 위해 마사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지만 입학전형에도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은 아예 없었습니다.
특별전형이라도 있으면 지원을 할 수 있겠지만, 없는 상황에서는 비장애학생들과 똑같이 일반 입학시험을 거쳐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저는 마사고에도 전화하여 우리 학생들에 대한 공정한 기회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문의하였지만, 담당자는 마사고가 사립학교라 “그런 전형은 두지 않고 있다.”고만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전북 교육청에서 배치를 하면 받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학교가 먼저 선제적으로 받아줄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1차적 문제는 경기도교육청이 기존 관례에 따라 도 이외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고, 2차적 문제는 마사고 역시 입학전형에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이 없다는데 있었습니다.
비장애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에 얼마든지 지원을 하거나 시험을 쳐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도교육청은 법을 위반하면서 우리 학생들이 도내 고등학교로만 진학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경기도 이외 지역에는 지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비장애학생들과 동일하게 공정한 기회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법에 규정된대로 경기도교육청은 전북교육청과 협의를 해야 한다고 항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우는 이제 11월에 있을 마사고 일반학생 전형으로 밖에 응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우의 지능과 생활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특수교육대상학생이라 성적이 낮은데 비장애학생들과 동일하게 경쟁하여 붙을 확률이 사실 얼마나 되겠습니까?
지원하면 떨어질 것이 거의 확실한데 일반학생 전형으로만 지원하라고 얘기하는 것은 장애라는 이유로 우리 학생들의 입학을 차별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전 그동안 어머님이 성우의 장래와 진학을 위해서 들이신 노력과 시간, 비용이 모두 물거품이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성우의 진학에 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 화가 났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 교장선생님은 손수 도교육청과 마사고에 전화를 걸어주셨습니다.
비록 바뀐 건 없었지만 그래도 신경써주심에 매우 감사했습니다.
전 성우가 특수교육대상자로서 마사고에 지원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특수교육법상 장애학생 차별이라 판단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올렸습니다.
특수교육법 제17조 3항에 따라 적어도 타 시・도에 지원하는 특수교육대상자가 있으면 해당 교육감과 협의를 통해 배치를 결정해야 하는데 협의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도교육청의 행위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마사고에서 전국단위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이 없다면, 적어도 전라북도 교육청 특수교육운영위원회는 성우의 능력과 정도, 담임 의견, 특수교사 의견, 학부모 의견, 학생 면담 등을 통해 이 학생을 마사고에 배치할 수 있는지 적어도 위원회를 열어야 하고, 위원회를 열기 위해서는 당연히 고입 특수교육대상자 선정/배치 서류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단지 주소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경기도교육청에서 먼저 협의 제안이 없었다는 이유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은 역시 소극적 행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권위에 진정하여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6개월은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11월이 되었고 성우는 결국 일반학생 전형으로 마사고에 응시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과 같이 시험 보러 가는 날, 저는 성우에게 결과를 떠나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순수한 성우가 면접위원들께 진심을 보이면 꼭 붙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며칠 후 교장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마사고에서 방금 전화가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성우가 붙었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성우가 마사고에 합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성우가 성적은 낮았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열정, 하려고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해 인성 점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성우의 진정성과 열정, 그리고 어머님의 간절함이 통했던 것입니다.
12월이 되어 인권위에서도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성우 문제는 잘 해결되었냐고 물으시길래 다행히 잘 해결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진정은 자동적으로 취하되었습니다.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계속 진정이 진행되어 결론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당사자의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진정처리도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싱글벙글하는 성우의 모습을 보고 담임선생님과 저도 같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졸업하고 나서도 성우가 새로운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과 학교 생활을 잘 할 거라 믿었습니다.
마사고에 입학한 성우는 예상대로 씩씩하게 별 어려움 없이 학교에 잘 다닌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힘들어 할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말을 좋아했기에 매시간 즐거워하며 수업을 듣는다고 하였습니다. 성우의 앞날에 영광이 가득하기를 바래봅니다.
전 교육의 평등 차원에서 우리 학생들도 전국의 모든 학교에 지원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입학시켜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입학할 수 있게 지원할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 시・도에 지원한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타 시・도 교육감과 협의한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먼저 협의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입학 및 지원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나라 특수교육이 많이 발전한 것은 맞지만 아직 제도적・인권 개선 측면에서는 ‘갈 길이 멀구나’를 느꼈습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의 융통성 없는 사고방식과 기존의 관례를 유지하려는 태도, 틀에 짜여 진 제도 등은 하루 빨리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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