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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불어 사는 사회 Feb 10. 2021

영호의 꿈은 이루어진다.

장애학생 취업 사례

영호(가명)를 처음 만났을 땐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체격도 좋고 키가 커서 아주 듬직한 친구였지요. 

영호는 도움반 맏형이자 오빠로서 항상 동생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도와주었습니다. 

힘든 일이나 궂은 일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자진해서 하려고 했습니다. 

자기를 희생할 줄 알고 말도 잘 듣는 착한 영호가 전 너무 좋았습니다.


그 당시 우리 반에는 휠체어 타는 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휠체어에 앉아 지내다보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조용히 혼자 있을 때가 많았는데, 

영호가 도움반에 있을 땐 항상 이 동생 옆에 앉아 얘기도 해 주고 놀아주고 그랬습니다. 

영호는 동생들과도 잘 어울리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챙겨주었고, 또한 체격에 맞지 않게 애교(?)가 풍부해서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선생님들이 좋아했지요. 

    

영호의 가정 형편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은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백화점에서 파트 타임으로 근무하시고, 주민센터에서 보조금을 지원받아 생활하고 계셨습니다. 

영호에겐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매일 엄마가 안 계셔도 둘이서 같이 저녁을 해 먹으며 씩씩하게 생활하였습니다. 

영호는 똑똑해서 방과 후에도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치료센터에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잘 다녔지요.


영호가 수업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활동은 제과제빵이었습니다. 

그 당시 학교 근처에 있는 장애인 보호작업장으로 제과제빵 교육을 나갔었는데 제일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이 곳은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로서 빵을 팔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예비 사회적 기업입니다. 


우리처럼 제과제빵 교육을 받으러 오는 학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운영은 장애인이 주축이 되어 빵과 과자를 만들고 이를 공공기관 등에 납품하여 수익을 올리는 곳이지요. 

장애인 보호작업장을 다니면서 더 많은 장애 학생들이 졸업 후 이 곳에 취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영호는 중학교를 잘 졸업하였고 인근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되었구요. 영호가 중학교 졸업할 때 전 무척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동생들 역시 살뜰히 챙겨준 영호의 졸업을 매우 아쉬워했습니다. 

저는 동생들한테 “이제 내년부터 여러분들도 차례로 고등학교에 가면 영호를 또 만나게 될 테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졸업식날 영호네 가족이랑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점심도 같이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영호와 가족의 앞날을 축복해주었습니다.


고등학교 가서도 영호는 제게 틈틈이 연락을 하였고 고등학교에서의 생활과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영호는 제가 “선생님들은 좋니?”, “힘든 거 없니?”라고 물어보면 항상 “선생님들 다 좋아요.”, “힘든거 없어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어쩔 땐 자주 전화할 때도 있었고 어쩔 땐 몇 달 만에 전화할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전화를 못 받을 때도 많았고 금방 끊을 때도 많아 가끔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늦게 들어와서 밥을 제대로 못 챙겨먹을까 봐 걱정했는데, 영호는 동생과 함께 냉장고에 엄마가 해 놓으신 반찬이 있다며 “잘 꺼내 먹으니 걱정말아요.”라며 항상 씩씩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영호네 가족은 중간에 한번 이사 갔을 뿐,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영호의 생활 패턴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습니다. 


영호가 한 가지 아쉬워하는 점이 있었다면 고등학교에서는 자체 직업교육실이 잘 되어 있어서 더 이상 장애인 보호작업장으로 직업교육을 나가지 않고 학교 직업교육실에서 제과제빵을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하는 제과제빵 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거워하였지만, 가끔 보호작업장 선생님이 보고 싶고 그때의 분위기가 생각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영호가 졸업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내 시간만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우리 학생들 시간도 참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중학교 졸업한 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또 고등학교를 졸업하다니... 

영호는 자신의 졸업식 날짜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 저는 확답은 하지 않고 시간되면 간다고만 대답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졸업식 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조그만 꽃다발을 들고 오랜만에 영호가 졸업하는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졸업생들은 대강당에 모여 졸업식을 하고 있었고 학부모님들은 각 반에 있는 텔레비전을 통해 졸업식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복도에서 도움반 교실을 들여다보니 중학교 졸업할 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님과 동생이 와 있었습니다.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서 인사드리자, 어머님은 3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바로 저를 알아보셨습니다. 

  

“어머 선생님...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 영호가 졸업한다고 그래서, 마침 시간이 되길래 왔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셨지요?”     


저는 영호가 이렇게 건실하게 잘 자라 주어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동생은 3년 사이에 저보다 키가 더 커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쑥쑥 자라는구나’를 새삼 느꼈습니다. 


어머님이 졸업앨범을 가지고 계시길래 우리는 졸업앨범을 보면서 즐거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특수선생님하고도 얘기하니 ‘영호가 고등학교 생활도 참 성실히 잘 했구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 중학교 때의 여러 추억들도 생각났습니다. 

그런 추억들을 꺼내며 우리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졸업 후 영호의 진로가 궁금했습니다. 

어머님께 여쭤보니 어머님은 영호가 특수학교 전공과에 지원했는데 떨어져서 취업자리 알아보다가, 마침 중학교 때 다녔던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채용 공고가 났길래 지원하셨다고 했습니다. 

특수선생님은 영호가 전공과에 붙을 줄 알았는데 아쉽게 떨어졌다며 매우 아쉬워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영호가 복지관보다는 장애인 보호작업장에 꼭 붙었으면 좋겠지만 경쟁이 치열해서 붙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영호가 중학교 때부터 빵 만들기를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걸 알았기에 장애인 보호작업장에 꼭 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졸업식날이 장애인 보호작업장 면접보는 날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오후에 영호가 면접보러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비록 장애인 보호작업장에 다니지 않았지만, 중학교 때 워낙 열심히 참여했기에 저는 “영호가 워낙 성실하고 선생님들이 다 좋아하시니 꼭 붙을 거예요.”라고 어머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통합반에서의 졸업식이 다 끝나고 영호가 도움반에 내려왔습니다. 

영호는 별로 놀라지도 않으면서 “어 샘 왔네요? 저 보고 싶어서 온 거 다 알아요 샘.” 이라고 말하길래, “아니 어머님 보고 싶어서 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웃었지만 영호만 “에이 거짓말 마요 샘.”이라고 말했습니다. 

중학교 때보다 한 뼘은 더 자란 영호에게 졸업을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이따가 장애인 보호작업장 면접 잘 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선생님들과 사진도 찍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12시가 되었습니다. 

영호는 면접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관계로 점심식사는 같이 하지 못하고, 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꿋꿋하게 혼자서도 생활을 잘하는 영호가 정말 잘 되기를 바랬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영호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영호가 붙으면 좋겠는데 잘 될지... 만약 안 되면 복지관 일자리라도 구할 수 있을지... 복지관 프로그램은 자비 부담도 있는데 어머님이 경제적으로 괜찮을지... 등등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3년이 넘었지만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지도해주신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저도 영호 졸업하고 학교를 먼 곳으로 옮겨 장애인 보호작업장에 다니지 못했지만, 가끔 학교 교직원 연수 때 그곳에서 만든 빵이 간식으로 나올 때는 반가웠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장애인 보호작업장 선생님께 한번 연락드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써 3년이 지났지만 오랜만에 안부 인사 드릴 겸 장애인 보호작업장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는 근처 중학교 있을 때 제과제빵 교육 나갔던 이진식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다름이 아니라 오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어서 영호 얼굴 보러 오전에 갔다왔는데요, 마침 오늘 작업장에 면접 본다는 얘길 듣고 이렇게 메시지 보내봅니다. 

 착하고 성실한 영호가 가정도 어려운데 특수학교 전공과도 떨어지고 그냥 개인적으로 영호가 안타깝기도 하고 잘 됐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렇게라도 메시지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더 착하고 일 잘하고 가정이 어려운 학생이 있으면 당연히 그 학생을 뽑으셔야겠지요.

 영호 뿐 아니라 우리 장애 학생들 모두가 졸업하고 갈 곳이 별로 없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이 답장이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영호가 어머니와 함께 면접보러 오긴 했는데요 제가 주문량이 많아서 직접 보진 못하고 원장님과 면담을 하고 갔습니다. 근데 원장님 말씀이 영호가 숫자 계산이 너무 안 되는 관계로 잠시 대기해보자고 말씀을 하시네요.

 저도 영호가 어떤 친구인지 잘 알고 있고 원장님이 물어보시길래 착하고 성실한 친구라고 말씀은 드렸습니다. 제가 채용 담당이 아니라서 일단은 뭐라고 말씀 드릴 수가 없네요.”   



 

흔히 말하는 인사청탁(?)은 아니었지만 안부 인사를 가장해 간접적으로 살짝 압력(?)을 넣은 것 같아 문자 보내고 사실 후회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이렇게 답장까지 해 주시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후 다음과 같이 문자가 왔습니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영호가 작업장에 다니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릴려구요. 3월부터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성격이 좋고 사회성이 좋으니까 원장님도 좋게 보신 것 같아요. 객관적인 점수에 의해 영호가 뽑혔습니다. 이렇게 좋은 소식 드리게 되어 저도 마음이 조금 편안하네요.”      




영호의 합격 소식이었습니다!!! 

영호의 합격 소식을 듣고 기뻤지만, 한편으론 선생님께 그동안 마음의 부담을 드린 것 같아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영호가 붙어서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다른 친구가 안 된 거라 그 학생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그냥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착하고 성실한 영호가 정규직으로 붙었다는 사실에 전 하루종일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비록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일도 많이 못나가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든 나가서 일할 수 있으니, 직업이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요.

영호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졸업 후 갈 곳이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비장애 학생들도 취업이 어려운데 우리 학생들의 취업처는 더욱 한정되어 있습니다. 

일자리가 있어도 단순하거나 한시적인 일거리가 많아 생계는 평생 부모님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우리 학생들이 졸업 후에 갈 곳이 더욱 많아지면 정말 좋겠습니다.



덧붙임) 영호가 다니는 곳은 윙장애인보호작업장입니다. 방부제 안넣고 건강한 재료로 빵과 과자를 만들지요.관심있으신 분들은 주문해 드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http://www.gpw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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