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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우 Nov 28. 2018

인 디 아일 : 은은하게 오래가는 향수같은 영화.

영화의 일등공신은 '지게차'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은 과묵하다. 말은 없고 비밀은 많다. 항상 굳게 입을 닫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깊은 어둠과 옅은 희망이 공존한다. 말이 없는 건 주인공 뿐만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제각각 상처라는 비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대화법은 특별하다. 인물들은 최소한의 대사만 내뱉으며 눈빛과 피부, 그 사이를 오가는 정감으로 대화한다. 그 정적이 클래식한 음악과 가장 중요한 모티프로 사용되는 기계 소음과 섞이며 영화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짙은 여운은 눈이 아닌 귀로 들어온다.


 크리스티안은 정착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대형마트에 새로 들어온 크리스티안은 어딘가 뒤틀린 느낌을 지닌 외모를 지녔다. 온몸에는 문신들로 차 있고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는다. 하지만 관객은 크리스티안이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의 진면모를 알게 된다. 그는 성실히 일하고 성실히 배우고 성실히 사랑한다.


 가장 처음 만나는 사람은 브루노라는 직장 상사이다. 아버지뻘의 브루노는 크리스티안에게 따뜻하게 직장 일을 알려준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둘의 관계에 심어진 코드를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브루노는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던 시기를 겪은 아버지 세대, 크리스티안은 현재 독일의 젊은층을 의미한다. 크리스티안은 브루노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지식과 지혜를 흡수한다. 둘의 연대가 가득한 <인 디 아일>은 언뜻 버디 무비 장르로 느껴진다. 

 두번째로 만나는 이는 마리온이다. 크리스티안은 마리온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는 유부녀이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코드. 하지만 영화는 이 관계에 대해 희비극의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저 그 둘을 얽고 있는 애틋한 감정에 집중할 뿐.


 영화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크리스티안도 마리온도 아닌 브루노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시기를 관통한 인물이다. 통일 이후 광활한 대지를 내달리던 대형 트럭기사 브루노는 대형마트 지게차를 운반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리고 수직과 수평만이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도상 속에서 과거의 향수를 회상하며 우울해한다. 브루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다. 브루노가 크리스티안을 가르친 또다른 동기는 죽음에 대한 준비었을 것이다. 브루노의 사후에 그의 집을 방문한 크리스티안은 텅 비어있는 서랍장을 발견한다. 항상 마트의 어른으로써 타인을 챙겼던 브루노의 내면은 쓸쓸함이 가득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물'은 지게차다. 진중권 교수는 시네마톡에서 이 영화의 주연상은 '지게차'가 받아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 차가운 철재 금속 프레임과 유압 프레스로 움직이는 딱딱한 기계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매게체로 은유된다. 특히나 부드러운 움직임과 함께 영화관을 공명하는 지이잉 - 하는 기계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관객은 마리온이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그 소리를 바다소리와 동일시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은은하게 오래가는 향수같은 영화였다. 그렇다할 사건과 플롯이 없어 지루하긴 했지만 그 정적인 장면장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연대의 온기는 꽤나 오랜 시간 마음 속에 남을 것 같다. 쓸쓸함이 가득한 고독의 겨울 계절에 한 번 감상해보길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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