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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무늬 수트를 입은 고양이

“쳇! 제법 어른스러워졌네”

대전시 중구 중교로 29-2 꼬씨꼬씨 갤러리 (황태국이 유명한 동원식당 골목안)


지난해 여름.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입 짧은 야옹이들 소리가 서까래 위쪽에서 들려왔다.

새로 부임한 관장의 허락도 없이 엄마 고양이가 지붕 위 숨겨진 장소에서 야옹이들을 생산했나 보다.

이제 막 태어난 녀석들은 가끔씩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서로 싸우기도 했고,

어느 날은 담장 위로 줄지어 이동하기도 했다.

모두 세 마리였다.


갓 태어난 그 녀석들과 다름없이

나 역시 처음 해보는 갤러리 살림살이가 여러모로 녹록지 않았으므로

약간의 분투가 필요했고, 그렇게 애를 쓸수록

녀석들은 점점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갤러리의 일상은 빠르게,

혹은 느리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천천히 흘러갔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을 보냈고.

겨울을 지나 봄 언저리까지 왔다.


다소간의 세월이 흐르고 나니

내 나름의 안정감이 생겼고 그제야 잊고 있던 녀석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햇살이 좋은 어느 날.

갤러리 지붕 위에 갈색 얼룩무늬 수트를 입은 녀석이  등장했다. 

나는 녀석을 곰. 곰. 히 살펴보았다.

녀석도 나를 곰. 곰. 히 살피는 듯했다.

점잖게 앉아 있는 폼이 제법 어른스러웠다.


고물고물 하게 몰려다니던 어린 티는 모두 벗겨져 있었다.

하지만 제아무리 점잖은 체하며 앉아 있어도

녀석의 뽀시래기 시절을 모두 알고 있는 나로서는

“쳇! 제법  어른스러워졌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분명히 나 혼자 내뱉은 말인데 그 순간 뒤통수가 따가웠다.


가지런히 앞발을 세우고 지붕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녀석이 나를 보며 똑같은 말을 내뱉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 맞다! 나도 너처럼 그사이 애송이 티는 벗은 것 같긴 하다. "


그나저나 나는 살면서 고양이랑 친구 한적 한 번도 없는데

어쩌다 우리가 한 지붕을 나누며 살게 되었으니 인사라도 하며 지낼까?

자네 생각은 어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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